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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감# 공감칼럼# 공익변호사

고백

저는 공감을 사랑했습니다. 공감에 입사한 이래 하루도 감사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공감에 입사하기 전 로펌에 근무했습니다. 대개는 제 관심 밖의 일을 했고 더러는 원치 않는 일을 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이 배웠지만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3년 동안 일을 해 빚을 갚은 그 순간부터 다른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돈에 젬병이었고 무모했습니다.

13년 전 운 좋게 공감에 입사했고, 그전까지 공감이 하지 않았던 ‘취약노동’ 분야를 개척해 활동했습니다. 입사하기 전까지 공감은 ‘이주’ 노동 영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여성 노동, 청소년 노동, 중고령 노동, 비정규직까지, 나중에는 손배가압류, 직장 갑질, 산업안전까지 확대해 일을 벌였습니다. 급여는 1/4 토막 났지만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축복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렇게 이주노동자, 아파트경비노동자, 요양보호사, 가사노동자, 청소년 아르바이트생, 비정규직 아나운서/작가/스태프, 산업단지 노동자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청소노동자, 콜센터 노동자, 학습지 교사, 핸드폰 판매 노동자, 활동지원사, 배달 노동자, 기간제 교사, 골프장 캐디, 사내하청 노동자, 국정원 여성 비정규직 등등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모두가 각자 분야의 전문가라는 것. 거동과 의사소통이 불편한 노인을 이해하는 데에 요양보호사만한 사람은 없었고, 어떻게 가전을 다뤄야 오래 쓸 수 있는지를 설치기사들께 배웠습니다. 청소년 아르바이트생은 햄버거를 만드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고,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께서 부품을 알아봐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생생한 경험은 너무나 재밌었고, 부당한 현실을 바꾸려는 그들의 노력은 제게도 큰 자극이었습니다. 현장의 노동자들, 그들을 조직하고 만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 법률가들, 같은 뜻을 가진 시민들, 비중 있게 취재하는 기자들과 함께 세월호 기간제 교사의 순직을 인정받았고,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개정시켰고, 법리를 바꾸는 판례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매순간이 배움의 연속이었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연대와 참여, 실천이 세상을 바꾸는 걸 지난 13년 동안 현장 곳곳에서 확인했습니다. 사실 제가 하는 일은 고상하거나 우아하지 않았습니다. 거칠고 힘들고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세련되지 못했고 아름답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하는 일뿐만 아니라 공감 구성원들이 하는 일들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편견과 혐오에 맞서 싸우는 일은 외롭고 힘겹습니다. 더러는 대중의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공간에 공감 구성원들이 있었습니다. 서울역 구청사 앞, 여기저기 홈리스들이 삼삼오오 흩어져 있는 그 공간을 밤늦게 황급히 빠져 나온 적이 있는데, 공감의 구성원은 매주 금요일 밤마다 그곳을 찾아 홈리스를 만났습니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법률 상담을 했고 이태원에서 성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의 재난 피해자들 곁에 공감 구성원들이 있었습니다. 성소수자 난민의 곁에도 공감 구성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을 기부자들에게 알리고, 유튜브로 제작하고, 인권법캠프·포럼, 자원 활동제도 등으로 공감대를 넓히는 일에 공감 구성원들이 나섰습니다.

공감에 대한 사랑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어깨가 많이 무거웠습니다. 나 때문에 잘못된 판례가 나오면 어쩌나, 엉뚱한 결론으로 정책 방향을 정하는 데에 혼란이 생기면 어쩌나, 가뜩이나 힘든 의뢰인들이 더 힘들어지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만 산다’를 제 삶의 모토로 정하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몸 여기저기가 망가졌고,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제 몸만 혹사시킨 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공감이 더 많은 활동을 하길 바랐고 점점 더 성장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건 한낱 욕심이지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기에 이제는 모든 집착과 애정과 미련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그래도 떠나는 마당에 이 글을 읽으실 분들께 당부 드립니다. 그간 공감을 많이 아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공감이 소금 같은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십시오. 못하면 따끔한 말씀도 해주십시오. 공감은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공간입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저는 후회 없이 활동하고 이제 떠납니다. 그간 고마웠습니다.

 

윤지영

# 취약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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