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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감칼럼# 노동법# 노동인권

치킨게임

요즘 신문이 참 재밌다.

이미 3년 동안 적용을 유예한, 산재사망사고의 60%가 발생하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다시 2년 유예해달라고 하고, 하청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의 헌법상 노동3권을 복귀하는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한다.

그런데 또 조선업도 건설업도 관광업도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별다른 경제 활동 없이 ‘그냥 쉬’는 청년 인구는 올해 들어 증가 추세라고 한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월평균 ‘그냥 쉬’는 청년 인구는 41만 명으로, 작년 대비 늘었다.

왜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을까? 왜 신규 채용이 안 될까? 좋은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관광업계는 다음 위기에 또 잘릴까 겁이 나고, 건설업계는 사람보다 공기가 우선이라 노동시간도 길고 위험하고, 조선업계는 고강도 노동을 요구하지만 하청에 재하청 구조가 만연하면서 월급은 쪼그라들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노란봉투법도 열악한 처우, 위험한 노동환경, 그리고 재하청이 만연한 직종의 노동자들의 권리 침해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제정제안 된 법들이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은 준비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노란봉투법은 거부하면서 일할 사람이 없다고 걱정한다면,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다.

상품의 시장에도 수요와 공급이 있듯, 노동의 시장에도 수요와 공급이 있다. 그리고 공급(노동자)이 수요(일자리)보다 낮으면 가격(노동조건)이 올라가는 것이 경제의 이치라고 배웠는데,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보다는 쪼그라드는 인력을 외국 인력의 공급을 통해 하려고 한다.

근데 이 궁여지책도 언제까지 통할지 미지수이다. 외국인 노동자도 결국 사람이다. 즉 견딜 수 있는 노동환경에 한계가 있으며 더 나은 노동조건을 바란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마치 당장이라도 채울 것처럼 이야기하는 일자리들은 사실 세계의 다른 일자리들과 경쟁해야 한다. 인력 규모가 쪼그라드는 것은 한국뿐만이 아닌데, 노동조건이 안 좋아서 도망가는 것을 막으려고 취업할 수 있는 업체의 수와 지역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사실상 노동을 강제하는 인권침해국인 한국에 사람들이 언제까지 오고자 할까?

그 와중에 올해 3분기 출산율은 기어이 0.7을 찍었다. 통계청은 4분기 출산율은 0.6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낮은 출산율이 문제인 OECD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출산율이 낮고, 심지어 순위가 한 단계 높은 이탈리아(1.24)와는 이제 곧 2배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출산율이 0.7을 찍은 이유는 ‘불안해서’ 미래를 꿈 꿀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최소 20년 동안 양육해야 한다. 그럼 최소한 향후 20년간의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지 대략적이라도 그려져야 한다. 그런데 인생이 하루살이인 사람들이 많다. 월세살이를 하니 2년 뒤에 어디에 살지 모르고, 정규직이 아니면 정기적 수입을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물론, 정규직으로 일해도 월세살이를 피하기는 쉽지 않고 정리해고도 무섭다. 무엇보다 어떻게 일을 하더라도 장시간 근로시간과 출퇴근시간에 치여 애초에 연애할 시간도 힘도 없다. 그러니 돈 몇 푼 더 쥐어준다고 출산율이 유의미하게 올라갈 수 없다.

한국은행은 2023년 11월 30일 발표한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중장기 심층연구 보고서에서 초저출산은 청년들이 느끼는 높은 ‘경쟁압력’과 고용, 주거, 양육 측면의 불안과 연관된 것으로 보고 “초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하여는 근본적으로는 높은 경쟁압력과 고용·주거 불안의 근저에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고(→일자리에 대한 경쟁압력과 불안 완화) 수도권 집중을 낮출 필요가 있으며(→경쟁압력을 낮추고 수도권 집중에 따른 주택가격 상승 완화), 높은 주택가격 및 이와 연계된 가계부채 문제를 안정화하는 구조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완화하고 일자리에 대한 불안을 완화하는 방향과는 계속 반대로 간다.

열악한 노동 처우와 낮은 임금, 간접고용과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노동자 또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만연해도 노동자의 교섭권은 억제하고, 노동법과 사회보장체계를 개혁할 생각도, 하다못해 위장된 프리랜서를 단속할 계획도 없다.

벼랑 끝에 있는 사람들을 자꾸 더 벼랑 끝으로 내몬다.

그런데 그렇게 노동자들을 벼랑 끝까지 몰면 누구에게 물건을 만들라 지시하고 누구에게 물건을 사달라고 할 것인지 궁금하다.

초저출산에 이미 진입하는 한국 사회를 보는 것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을 기득권과, 말도 안 되는 삶에 굴복하지 않을 2030 사이의 치킨게임을 보는 것 같다.

어찌됐든 아마 이대로 가다가는 이 나라는 쪼그라들어서 이내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행은 저출산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2050년대부터는 0% 이하의 성장세를 맞이할 것이라 경고한다.

국민에게 최대한의 효율을 짜내는 것이 마치 혁신인 것처럼 구는 정부의 정책은 숨이 턱 막힌다. 노동법도 노동권도 부정하면서 새로운 인간(노동자)을 탄생시키라니. 되도 않는 정책들을 늘어놓더니 이제는 그냥 외국으로 눈을 돌리다니. 솔직히 한국 경제가 더 뒤처지기 전 아직 그래도 사람들이 한국에 오겠다고 할 때, 한 몫이라도 챙기자는 심보로 보인다.

클린턴의 유명한 대선 캠페인처럼 모든 문제의 핵심은 경제이다. 근데 한국 경제의 문제는 노동환경이다, 2030은 노동자이거나, 앞으로 노동자가 될 자들이다. 노동자들을 무시하면서, 한국의 미래는 없다.

강은희

# 취약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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