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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감# 공감칼럼

당신이 옳다. 우리의 마음도 옳다.

발단은 각기 다른 단체 소속의 공익변호사 4명의 식사자리 수다였습니다.

과로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이 모여 어디가 아프다, 어느 병원을 갔다 하소연을 하는 모습이 마치 2년 전 병가를 내기 직전 제 모습 같았습니다. 몹시 안타까운 마음에 침을 튀기며 ‘자신도 돌보아야 한다, 내 몸이 주는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된다’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금년 공익변호사 한마당(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국의 공익변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고, 상호 경험과 정보, 공익변호사로서의 고민을 나누는 자리로, 2014년 첫 모임을 시작하여 매년 이어지고 있습니다.)의 주제를 ‘자기 돌봄’으로 정하고 무려 정혜신 박사님을 섭외하여 강의를 요청드릴 예정이니 그 강연에 패널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정혜신 박사님의 아이디어로, 공익변호사들의 고민과 질문을 미리 받아 이를 토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익명의 질문 페이지를 개설했습니다. 이틀 만에 10개가 넘는 질문과 고민이 도착했습니다.

변호사로서 서면을 쓰고 법정에 출석하는 것 외에도 의뢰인과의 관계에서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부담감, 동료 공익변호사들에 비해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불안감, 진행한 사건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느끼는 좌절감 등등..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의뢰인들에게 혹은 동료들에게 기대되는 공익변호사로의 모습 (헌신, 검소함, 높은 인권감수성 등)과 실제 나라는 사람이 갖는 현실적인 욕구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한 괴로움이었습니다.

정혜신 박사님은 변호사라고 해서 승소를 하는 것만이 의뢰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성과주의식 생각은 의뢰인에게도 변호사에게도 건강하지 못한 생각일 수 있다며, 때로는 사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오고가는 진정한 ‘공감’이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공감은 외형적인 성과나 변화에 대한 인정이나 언급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그 사람 자체, 그의 애쓴 시간이나 마음씀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의뢰인을 대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노력으로 인해 본인의 마음이 괴로워진다면 그러한 감정에 대해 죄책감이나 자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일갈해 주셨습니다. 본인 역시 여러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항상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듣고 해결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변호사들이 힘들어 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기에, 그런 본인의 마음을 인정하고 돌보아 주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공감은 상대를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깊은 감정도 함께 자극되는 일이다.
상대에게 공감하다가 예기치 않게 지난 시절의 내 상처를 마주하는 기회를 만나는 과정이다.
이렇듯 상대에게 공감하는 도중에 내 존재의 한 조각이 자극받으면 상대에게 공감하는 일보다 내 상처에 먼저 집중하고 주목해야 한다.

공감은 내 등골을 빼가며 누군가를 부축하는 일이 아니다.
공감은 너를 공감하기 위해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누군가를 공감한다는 건 자신까지 무겁고 복잡해지다가 마침내 둘 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 중 –

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뒤에서 조용히 눈물짓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지금의 나는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인정해 주고 있는 걸까? ‘공감’이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과연 의뢰인들과 진정한 공감을 하고 있을까? 주변에 이런 생각들로 힘들어하는 동료 공익변호사들의 마음을 들여다 본 적이 있나?

사전질문지에는 의뢰인과의 관계에서 생긴 고민도 많았지만, 동료공익변호사들과의 관계에 대한 기대감,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보였습니다. 비슷한 생각으로 공익변호사라는 진로를 선택하여 일을 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는 사람들로부터 공감 받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들이었습니다. 박사님은, ‘존재 자체만으로 자신에게 주목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공익변호사로서의, 혹은 그냥 ‘나’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공감하고 질문하는 한 사람이 필요할 테지요. 그 한사람이 만약 같은 지향으로 갖고 일하는 동료이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내가 공감 받아야 비로소 타인을 공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일 먼저 스스로가 ‘경험이 적어서, 헌신이 부족해서, 선배만큼 훌륭하지 않아서 나는 안 돼’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갉아먹지 말고 이런 고민을 갖게 된 나를 인정하고 공감하면, 비로소 동료 변호사의 고민에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쉬운 일이 아니네요. 하지만 함께하면 외롭지 않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 함께 되뇌어 봅시다.

당신이 옳다. 내 마음이 옳다. 우리 마음도 옳다.

공감이 그렇다.
옴짝달싹 할 수 없을 것처럼 숨 막히는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공감이 몸에 배인 사람은 순식간에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없는 것 같던 공간이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진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공감이 하는 일이다. 사람은 그렇게 해서 사지를 빠져나올 수 있다.
공감의 힘이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 중 –

Ps. 책상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다 오후 세시쯤 커피 한잔 하며 땡땡이를 치고픈 제 마음도… 옳은 걸까요?

김지림

# 국제인권센터# 성소수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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