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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감칼럼# 성폭력# 여성인권

사건 해결을 ‘결심’한 자 곁을 지키는 일

내가 일하는 조직에서는 공익 사건에 한 해 지원이 결정되고, 당사자는 변호사 비용 부담 없이 소송을 시작할 수 있다. 한정된 자원 때문에 공익사건의 판단 기준이 종종 문제가 된다. 왜 성폭력 피해자 지원이 공익 사건인지, 공적 지원이 필요한지 질문 받는다. 검색 포털에 성폭력처벌법을 자주 검색하는 나만 해도, 맞춤형 광고 기능 때문에 온갖 성범죄전담로펌에 항상 노출된다. 성폭력 사건 법률조력은 상품성 있는 서비스가 되고 성공사례와 노하우는 전문성과 시장성을 획득한다. 불기소나 무죄 판결례, 양형자료의 집적, 피해자 상대 무고죄나 명예훼손 역 고소,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전략이 되면서 성폭력 범죄 관련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 사건이 피해자와 가해자 개인 간 진실게임처럼 보인다. 성폭력 범죄 처벌과 피해자 보호의 제도화 이후의 이런 현상이 괜찮은 것인지는 차치하고, 누군가는 법률시장의 영향력 있는 소비자 지위까지 획득했다는 사실이 편치 않다.

 

피해자라면 누구나 PTSD?

작년 11월 경,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진행한 ‘피해자국선변호사 전문화 교육’을 수강했다. ‘피해자의 심리이해 및 소통방법’이라는 주제 강의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이나 대형 참사 등 극한의 상황 속 외상(Trauma)을 경험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적으로 나아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PTSD) 유병율은 의외로 굉장히 낮은데, 다른 외상 경험자 보다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PTSD 유병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되나 여러 종류의 “2차 가해”로 시간의 경과나 자연적 회복의 겨를 없음이 주된 이유로 추측된다. 피해자국선변호사 제도와 같은 공적 지원의 필요, 제대로 된 역할·관점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적극적일수록 스트레스가 더 고착된다. 참기 어려운 모순이다. 법원에서 사건의 진위(범행 사실 인정) 판단 시 피해자의 PTSD 진단서가 자주 이용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되겠네 반성하다가, 형사절차에서 피해자가 입증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PTSD가 발병된다면 그 원인과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복잡한 질문들이 떠다녔다.

 

2차 가해가 더 상처, 피해자의 선택과 결심

사건 자체로부터 겪은 충격만큼, 사건 해결의 과정에서 외상을 경험해야 한다면, 아무도 해결을 ‘결심’하지 않을 것이다. 수사 단계에서의 피해자조사나 법정 진술을 앞두고 나는 피해자와 만나서 준비를 한다. 면담 목적은 사실관계 상기 차원이지만, 실질은 2차 가해성 질문에 면역력을 기르기 위한 예행연습이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 곧바로 저항하거나 신고하지 않은 것, 평소 다른 갈등으로 대립 중이었던 것, 금전적 대가가 약속되거나 지불되었던 것 등 가능한 다양한 유형의 ‘2차 가해성’ 질문(실체적 진실 발견에 필요한 질문이 잘못된 방식으로 이뤄지기도 하기 때문에 놓쳐선 안 된다)에 피해자의 ‘영혼이 털리지 않도록’ 대비한다. 질문과 구성요건의 관련성, 정황증거의 중요성을 장황하게 이성적으로 설명하지만 질문의 저의와 오류를 피해자도 나도 잘 알고 있다. 사건 자체 혹은 가해자와의 1대1 대립에 대비한 방어가 아니다. 피해자를 대하는 어떤 문화, 관점, 환상에서 자유롭지 않은 모든 것들로부터의 방어다. 준비는 일종의 후천적 면역체계를 위한 ‘백신’ 같은 건데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사건 자체를 포기하고 싶어진다고 말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강박적 방어기제는 단순 불친절과 찐공격을 구별할 수 없게 해 의사소통 자체를 방해할 때도 있다. 조사 자체는 담담하게 마치고 나오지만 조사 후 수면장애를 겪거나 우울감과 무력감, 자살충동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각오는 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시작 안 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피해자들은 사건의 법적 해결을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결심’한다. 그 의지가 계속될 수 있으려면 상황에 대한 일말의 통제가능성이 보여야 하는데 정보는 제한되어 있고, 원칙에 따르는 경우보다 개인의 성정이나 운에 맡겨야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살얼음판 위에서 다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선택’처럼 보이지만 이를 악 문 ‘결심’이다.

 

반복된 피해 진술로 ‘우리가’ 닿는 곳은 어디인지

피해자라면 사건에 대해 번복 없이 반복 진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는 지나친 환상이다. 무죄추정의 원칙,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보장은 절대원칙이다. 하지만 피해자보호와 대립비교 항으로 이 권리가 다뤄질 때 성폭력 사건의 사회·구조적 원인과 사건의 특수성, 피해자의 위치, 우리의 책임은 중력을 잃고 흩어진다. 반복으로 ‘달성된’ 번복 진술이 우리를 어떠한 실체적 진실로 이끄는지도 의문이다.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한 증거능력이 법정에서 모두 날아갈 수도 있게 된 절차법의 개정, 미성년자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진술 영상 녹화물을 증거로 쓸 수 있게 하는 법규마저 위헌이라는 결정이 피해자를 비롯해 이제 막 자리를 잡은 성폭력처벌과 피해자 보호 제도의 도입취지와 성인지감수성 관련 법리를 힘도 들이지 않고 어디로 미끄러뜨릴지 의문이다. 벌써 한기가 느껴진다.

 

공익적 사건이자 공적 사건, 성폭력 피해자 지원

실무 상 피해자는 형사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피해자변호사의 절차상 지위나 권한은 ‘보조적’이다. 하지만 사건 해결을 ‘결심’한 자 곁을 지키는 일로서의 피해자변호사 역할은 사건을 결심한 주체와 함께 사건 해결 과정에서 함께 의미를 찾고 서로를 독려하고, 사회적 책임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을 포함한다. 제도 안에서 문제제기하고, 가치 논쟁적 요소를 끌어들인다. 제도 밖에서 현장 활동가와 연대하고, 제도나 관행의 개선을 요구한다. ‘결심’ 덕분에 미끄러지지 않고 바로 설 용기를 얻는 건 우리 모두다. 피해지원이 공익 사건이고, 공적 사건으로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 이 글은 2022년 1월 24일자 법조신문 [지금, 여기 – 모두의 변호사]에 같은 제목으로 게재된 내용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법조신문 [지금, 여기 – 모두의 변호사] 사건 해결을 ‘결심’한 자 곁을 지키는 일

백소윤

# 여성인권# 성소수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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