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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감칼럼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Mnet에서 방송하는 댄스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홀리뱅’ 크루의 리더 허니제이가 던진 말이다. 허니제이는 댄서씬에서 이미 유명한 인물이고 이날 그녀의 베틀 상대는 ‘댄서들의 댄서’라 불리는 ‘파라우드먼’ 크루의 리더 모니카였다. 두 사람의 베틀은 기가 막혔다. 그야말로 언니들의 싸움이 어떤 것인지 시청자와 동생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화요일 밤마다, 이 언니들의 싸움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사람 몸의 쓰임새가 저토록 다를 수 있는지 경탄하면서 보고 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맞게 각 주 경연 주제가 새롭게 제시되고, 그녀들은 그것을 수행해내야 한다. 주제에 따른 심사가 있었고 현재까지 8팀 중 4팀이 탈락했다. 4팀의 파이널 무대가 남겨져 있다.

참가댄서들의 욕망이 경합하는 무대를 보는 것은 즐겁다. 특히 각 팀을 이끄는 리더들은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며 팀 칼라를 결정한다. 리더들이 주제에 맞게 어떻게 퍼포먼스를 기획하는지, 어떻게 자기 팀원들의 에너지를 끌어내고 팀워크를 이루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훅’ 크루의 리더는 아이키다. 댄서들은 가수의 뒤에서 자신의 창작품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업계에서 어떤지와 무관하게 대중에게 인지도 높은 이들이 많지 않다. 아이키는 유명 프로그램의 안무를 기획하며 얼굴 노출이 많은 유명인이었다. 반면 팀원들은 십대를 포함, 눈에 띄는 경력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방송 초기 ‘아이키와 아이들’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회차를 거듭해 갈수록 이들은 아이키보다는 ‘훅’ 특유의 창조적이며 유쾌한 퍼포먼스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지 않고 팀 전체의 장기가 융합되도록 이끌어가는 리더의 진면목이 보인다.

“베틀은 이기라고 하는 거야”라며 등장한 모니카도 멋지다. 협상과 조율이 필요하지만 정작 싸움판이 벌어지면 이기기 위한 목표에 집중하겠다는 그의 메시지는 간결했다. 그리고 그녀는 베틀에서 이겼다. ‘컴 벡 홈’ 음악이 나오자, 베틀은 끝났구나 느낄 정도로 그의 춤은 독창적이고 강렬했다. 모니카는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스스로와 팀원들을 다그친다. ‘이기기 위한 것이야’ 외치면서도 그녀는 아이러니하게 해당 무대의 경연 보다는 댄서들의 미래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 같기도 하다. 댄서의 프라이드를 지키겠다는 의지는 매 무대마다 빛났다. 결국 ‘men of woman’미션에서 ‘프라우드먼’ 크루가 해낸 성과는 판정단이나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모니카는 성과를 냈을 때는 팀원들 덕이라 했고, 실패 앞에서는 자신의 탓이 컸다고 말했다. Jill Scott의 ‘Womanifesto’를 선곡한 것도 백미였다. 빠른 비트와 현란한 반주 하나 없이 드랙 아티스트 캼 한명 만을 세운 기획은 놀라웠다.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을 위한 응원 메시지를 드랙킹, 드랙퀸 춤으로 전달한 프라우드먼의 무대는 혁신이었다. 댄서로서의 자존심과 여성으로써의 정체성을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무대는 비록 그들을 순위 밖으로 밀어냈는지 모르지만 모니카와 ‘프라우드먼’ 크루가 어떤 팀인지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들 것이다.

무릎이 빠지는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 베틀을 멈추지 않았던 ‘원트’ 크루의 효진 초이, 미모로 여기까지 온 거 아니냐는 질타를 창작 춤으로 밀어낸 ‘웨이비’ 크루의 노제, 욕망 덩어리에서 승부를 떠나 무대를 즐기게 된 ‘라치카’ 크루의 가비, 오랜 애증 관계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 허니제이와 ‘코카앤버터’ 크루의 리헤이, 24살의 나이에 주눅 들지 않으며 자신의 실력과 팀원들을 믿었던 ‘와이지액스’ 크루의 리정은 진짜 언니들의 싸움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녀들을 따라 한 몸처럼 움직이는 댄서들의 경연은 화려하며 멋지다. 단지 몸짓이 보여주는 역동성뿐만 아니라, 자기 분야의 혁신이 무엇인지, 리더의 역할이 무엇이며, 승부사들의 싸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소중한 지면에 팬 심 가득한 관전평을 썼다. 사부를 찾아가도, 러닝을 해도 맨들이 하며, 1박 2일을 떠나도 그들만 가는 예능의 세상에서 그녀들이 ‘진짜 삶’을 보여주는 재미를 말하고 싶었다. 주인공도 여성이고 악역도 여성이며, 조연도 여성인 세상이 생긴다는 것은 비로소 수많은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누구라도 주인공이 되는 세상이 가까웠음을 알려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녀들의 세상에는 승부의 무대에서 내려 왔을 때, 서로의 무대와 삶과 인생을 응원하는 모습들로 가득 차 있다.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남북 분단보다 깊은 골로 싸우는 권력의 세상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렇게 “우리 언니들은 믓찌다.” 언니들의 싸움을 응원한다.

 

박진 /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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