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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위 칼럼] DNA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인권 – 이상희 변호사


 


4대강, 세종시, 미디어법 논쟁 등 이명박 정권이 쏟아 내는 문제들 속에서, 지난 12. 7. 새로운 차원에서 국가 감시 능력을 확장시킬 법안 하나가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DNA 신원확인정보의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


이름이 긴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특정 사람들의 머리카락이나 타액 등에서 DNA 시료를 채취한 다음 신원확인정보를 분석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 한다는 것이다. 무슨 목적으로? 언젠가 발생할지 모르는 범죄에 대비하기 위하여. 재범의 가능성이 높은 죄를 범한 사람들의 신원확인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한 다음, 이후 범행 현장에서 채취할 DNA 신원확인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돌려 범인을 찾아보겠다는 ‘과학적 수사방법’이다.


 


정부는 신속하게 범인을 특정•검거할 수 있고 무고한 용의자를 수사선상에서 조기에 배제할 수 있어 인권보호 기능에 충실한 수사기법이라며, 마치 이전에 이 법안이 없어 흉악한 강간범을 검거하지 못했던 것처럼 호들갑이다. 그 동안 관리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지 경찰과 법무부가 다툼을 벌이다가 서로의 유전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연동하여 활용하는 방식으로 합의하고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권력으로서는 정말 편하고 효율적인 감시 수단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범죄현장에 떨어진 흔적들을 죄다 모아 DNA를 분석하고 그것을 이미 구축된 데이터베이스 자료들과 맞춰봐서, 정보가 일치하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조사하면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수사권력과 과학지식이라는 두 거대 권력의 결합이 초래할 위험성에 비해, 정부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최소한의 원칙마저 무시하고 있다.
이 법안에 의하면 구속 피의자에 대해서도 DNA를 채취하여 신원확인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되며 형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헌법의 기본원칙에 명백히 위반된다. 
법무부는 구속피의자의 신원확인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더라도 나중에 무죄판결이 확정되면 폐기할 것이므로 인권침해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법무부의 주장대로 어차피 무죄판결이 확정된 후 폐기할 거라면 판결이 확정된 후에 할 것이지 굳이 그 전에 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 사업을, 구속피의자는 경찰이, 유죄판결이 확정된 사람은 검찰이 하는 것으로 사이 좋게 나눠가졌기 때문이다. 헌법 이념이 부처간 이권다툼으로 뒷전에 밀린 것이다.


 


더 나아가 수사기관이 DNA 신원확인정보를 취득, 관리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수사기관은 기본적으로 수사를 위해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10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더라도 1명의 범인을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계를 긋고 인권의 관점에서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지 말자는 것이 형사소송법의 역사이다.
DNA는 무한한 정보를 갖고 있어 오남용 및 유출의 위험성이 높다.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 이러한 문제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DNA 신원확인정보를 잘못 해석하여 무고한 시민이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많다. 정보수집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수사기관에 DNA 신원확인정보 데이터베이스 사업을 맡길 경우 이러한 오남용의 우려는 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영국이나 네덜란드, 오스트리아는 독립된 기구에서 통합 관리하고 있다.


 


법무부는 머리카락이나 타액에서 간단하게 시료를 채취하고 자료를 축적하는 것이므로 물리적 불편함이나 번거로움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불편함만 없다면 신체로부터 민감한 정보를 캐내어 국가가 관리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이 법안에 의하면 20년 이상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온 여성이 자신을 방어하다가 남편을 살해한 경우에도 그녀의 DNA 신원확인정보가 데이터베이스화 된다. 그녀는 우리 사회에서 잠재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고위험군에 속하며 24시간 국가의 감시망 속에 들어간다. 그녀는 우연히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언제 수사기관에 소환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살아야 한다. 이전의 삼청교육대나 청송보호감호소처럼 데이터베이스 속에 들어간 사람들은 특정 집단으로 분류되고 우리 사회의 해악이자 함께 해서는 안될 존재로 인식될 것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 사이, 당신이 어디에서 흘렸을지 모르는 머리카락에서 DNA 신원확인정보가 빠져나와 정부가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 속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정부가 이처럼 인체 정보를 통한 새로운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하는데 우리 사회는 너무도 조용하다. 국가의 상시적인 감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취약계층에 대한 권력 감시 시스템이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전 사회로 확대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과학 기술을 통한 새로운 감시 시스템을 도입할 때 최소한 그것이 초래할 인권문제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등은 고민되어야 할 거 아닌가.
재석의원 미달로 지난 12. 8. 본회의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다음 본회의로 연기되었다고 한다. 통과되지 못한 사유가 고작 재석의원 미달 때문이라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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