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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변의 변] 청룡영화상과 인권소금상 – 정정훈 변호사




1. 청룡영화상 – 봉준호


 


청룡영화제는 달랐다. 최우수작품상으로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선택했다. 봉준호 감독은 나의 ‘베스트’였고, 영화 <마더>도 올해 나의 베스트다.


 


“스태프들의 꿈을 빌미삼아서 ‘싫으면 떠나라’란 논리를 언제까지나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영화산업의 현실에 대한 미안함을 전할 줄 아는, 봉준호는 그런 사람이다. 영화 <괴물>의 ‘대박’으로 주어진 감독 몫의 보너스를 현장 스태프들과 나누었다는 일화도 있다. ‘봉테일’ 영화의 ‘따뜻한 디테일’은 그의 ‘삶의 디테일’이었다. 나는 그런 그와 그의 영화 모두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왔다.


 


단편 <지리멸렬>에서부터 블록버스터 <괴물>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는 상처를 강요하는 ‘사회’와 상처 받은 ‘삶’ 사이에서 벌어지는 ‘작은 전투’에 포커스를 맞추어 왔다. 그 싸움판을 담는 영화는 차가웠으나, 그의 차가운 시선은 부조리한 ’사회‘를 겨냥한 것이었다. 반면에 그의 카메라가 부조리한 세계의 나약한 ’개인‘들을 향할 때, 그 시선은 항상 따뜻한 것이었다. 그는 영웅적 개인에 의한 ‘해피엔딩’이라는 거짓 위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에 나약한 군상들이 벌이는 속수무책의 ‘지는 싸움’에 따뜻한 위로를 보태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차갑지만, 끝내 차갑지는 않았다. 차가운 시선에 담긴 따스함이 그의 영화적 저력이었고, 그 온기는 분명 차가움을 이기고 더 오래가는 것이었다.



영화 <마더>는 달랐다.
“소름 돋도록 차갑다.” <마더>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은 그랬다. 마흔을 넘긴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그의 이전 영화들은, ‘괴물’같은 시스템 속의 ‘지리멸렬’한 개인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을 결코 놓지 않았다. ‘지리멸렬’한 군상들의 ‘찌질한’ 싸움에 장르영화의 판돈을 걸고, 확률 낮은 희망의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마더>의 봉준호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영화의 화살을 겨냥하고 있었다. 모진 삶에 붙들린 나약한 우리들이 시스템이라는 ‘괴물’의 부조리한 형상을 완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영화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더>에서 적어도 우리는 이 부조리한 세계의 ‘공범’이었다.


 


영화 <마더>는 차가워서 좋은 영화였다. 그러나 나는 <마더>에 대해 봉준호 감독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나의 질문에는, 그가 너무 빨리 ‘거장’의 자리로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약간의 의아함도 있었다. 부조리한 세계를 담아내는 ‘잔혹한 거장’들은 그가 아니어도 여럿 있다. 그러나 그 부조리를 살아가는 약한 존재들의 속수무책 ‘지는 싸움’에 조용히 박수를 보내는 봉준호의 영화적 입지는 그 자체로 너무나 소중한 것이 아닌가. 그의 대답이 궁금했었다.


 


“<마더>는 완성한 후에도 스스로에게 계속 반문하게 했던 영화였어요. 이 영화의 정체는 뭘까, 이런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자는 건가. 인생이 원래 그럴 수 있다는 것인가. 그래서 역으로 위안을 주자는 건가. (중략) <마더>는 그렇게 끝까지 한번 가보는 체험을 제게 안긴 영화였던 것 같아요.” “어차피 암흑을 직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느낌이었죠.”


 


최근 읽은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나의 질문은 하나의 짐작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 <마더>는 봉준호 영화에 있어 ‘단절’이 아니라, 다시 되돌아오는 ‘과정’의 시작이라는 짐작이 그것이다.


 


세계의 ‘디테일’과 솔직하게 대면하는 이 젊은 감독에게, 나약한 우리의 부조리를 직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경로였을 것이다. ‘세계의 부조리’에 반응하는 우리들의 ‘삶의 부조리’마저 포용한 채, 다시 더 넓게 긍정하기 위해 봉준호는 <마더>를 경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손쉬운 대답은 그의 방식이 아니다. ‘원래 그런 인생’과 때로 타협하고. 저항하고, 몰락하는 우리. 찌질한 이들의 ‘지는 싸움’에 위로를 보내는, 그의 방식은 더 풍부한 영화적 표현으로 돌아올 것이다.


 


영화 <마더>는 그가 던진 부메랑이 경유하는 하나의 좌표다. 그 부메랑은 ‘끝내’ 그의 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그 차갑지만 따뜻했던, 매혹의 자리로. 영화 <마더>는 여전히 올해의 베스트였고, 감독 봉준호는 내내 나의 베스트일 것이다.


 



2. 인권상 – 인권활동가들


 


올해 사회가 주목한 ‘특별한’ 인권상은 달랐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한민국 인권상’ 시상식이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인권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인권활동가들이 만든 ‘인권의 맛을 돋운 소금들’에 대한 시상, 인권소금상은 시상이라기보다는 자축이었다. 함께 싸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격려. 시상자들과 수상자들 모두 세상을 변화시킨 영웅적 싸움이 아니라, 속수무책의 현실에서 ‘지는 싸움’을 함께 했다.


 


얼어붙은 씨스템은 변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여전히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인권활동은 당장은 ’지는 싸움‘에 의미를 걸고, 희망의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다. ‘지는 싸움’이 끝내 세상을 바꿀 변화의 균열을 만들어 낼 것임을 믿는 것, 그것이 인권활동가들의 방식이다.


 


올해도 현장의 인권활동가들은 나의 ‘베스트’였고, 내내 베스트일 것이다. 나는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영화라는 세계의 매혹을 배우고, 인권활동가들로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의 참됨을 배운다. 나의 베스트들에게 보내는 선물을, 청룡영화상과 인권소금상이 대신 전해주니  더욱 반갑다.


 



이 글은 성균관대 홈페이지에,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의 서평으로 게재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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