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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성폭력# 여성인권

피(x)자, 빈 칸 채우기 문제

성폭력 피(해)자 

성폭력 피해에 대한 상담 건이었다. 성인 남녀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었고, 합의 하에 모텔에 들어간 것은 맞으나 가해자(남성)가 술에 취해 강압적이고 가학적인 성관계를 강요하자 피해자는 하고 싶지 않다고 나가게 해달라고 거부했다. 거부 의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피해자는 그 자리에서 112로 신고 했다. 사건을 성폭력 신고로 접수한 경찰이 출동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 해 피해자는 안도했지만, 가해자는 “합의”를 주장했다. 모텔방 테이블에 놓인 현금 몇장이 그 주장의 증거였다.

성폭력 피해 사실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를 요청하면서 피해자는 병원에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성폭행에 의한 상흔에 대한 증거를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경찰은 그럴 필요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곧장 인근 경찰서로 가 조사를 하자  해서 경찰차에 타 이동했다.

 

성매매 처벌법 위반 피(의)자

가해자를 채팅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났고 한 두시간 같이 술을 마셔주는 대가로 소정의 금원을 제공 받기로 하고 만났다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다.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경찰 조사가 당연히 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사라고 생각했다.

본인에게 “불리할 수 있는” 요소로 평가될 수 있는 내용들, 돈을 받고 성적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는 합의가 상호 있었다는 것, 실제 1회 성관계는 합의였을 수 있다는 것 등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분명한(중요한) 사실은 위협적 행위가 이어진 뒤의 성관계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 폭행까지 더해졌다는 것, 보내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하자 가해자가 불법성매매로 처벌받을테니 너만 손해다라는 협박까지 했다는 것이다. 

조사 후 며칠이 지난 뒤 경찰로 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추가 조사를 받으러 출석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다시 조사를 받으러 갔을 때 수사관의 질문은 조금 이상했다. 조사 내용이 어떤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했는지, 약속한 금원의 액수, 정확한 수령 여부 등 성매매 맥락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무래도 탐탁치 않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사가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이때서야 피해자는  성폭력 사건은 아예 접수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경찰은 성폭력 사건을 신고하고 싶으면 민원실에 가 사건을 접수하시라 안내했다. 피해자는 자신에게 다른 도움이 필요하다고(경찰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판단했다. 

반성매매 운동 단체와 함께 피해자 상담 후 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성매매처벌법 위반 혐의에 따른 피의자 지원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보공개청구로 받게 된 112 출동 사건 기록을 보니, 출동 이유엔 성폭력 신고라 기재되어 있지만 “강압적 성관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과 함께 사건 관계자가 “피의자 1, 피의자 2”로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성매매처벌법 위반 피혐의자 법률 “조력”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고인의 지위를 겸하여 받게 되는 형사 조사는 보통 명예훼손죄나 무고죄에 관한 것이다. 성판매 여성이 성매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범죄 피해자가 되어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사건은 수사기관에 의해 성매매처벌법 위반 사건으로 인지된다. 

피해자와 피의자, 글자 하나 차이일 뿐인데 당사자가 느끼는 압박과 부담감은 매우 크다. 단지 개별 사건의 심각성이나 무게감만이 아니다. 당사자는 범죄피해자를 보호하는 일반적 제도로부터 배제 당했고, 국가 형벌권의 적용대상으로 편입됐다. 사회 제도가 존재자체로 개인을 “모욕”할 수 있다면 많은 예 중 제일이 성매매처벌법이라는 필자의 생각이 오버는 아니란 확신이 들었다. 오랜시간 이어진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성판매 여성을 처벌하는 현행 법제 하(여기에는 피해자다움이라는 편견이 강한 연결고리로 한 몫한다), 피(x)자의 가운데 빈칸를 “선택”하는 것 혹은 두 글자는 양립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관계를 토대로 한 수사의 결과일까? 피의자를 위한 법률 조력은 이 빈 칸이 채워져 가는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전제로 해야 했다. 

성폭력 피해 사건 지원과 함께 성매매처벌법 피의자 조력을 이어가면서 단체 의견서와 변호인의견서가 번갈아 수사기관에 제출됐다.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주장이 많이 없어 성판매여성 처벌 현실 하 여성의 취약한 지위를 악용한 범죄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 이 사건 피의자는 성폭력 피해자라는 점, 성매매 처벌법의 목적은 성산업 성매매를 통한 착취구조를 없애기 위함이라는 점 등등등을 언급하며 불기소를 호소했다. 검사가 이런 저런 사실관계 검토하고(의도는 짐작할 수 없지만),  사건을 보호사건으로 넘겼다. 

 

안전과 위험을 평가하는 다른 주체들

소년보호사건이 수두룩한 가정법원 앞은 다른 법정에 비해 어수선했다. 3시 정도면 법정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6시가 넘어 법원 복도 불이 꺼져 어두컴컴해질 때가 되어서야 우리 순서가 돌아왔다. 판사의 몇 가지 질문이 이어졌다. 경제적 어려움과 현재 생활에 대한 이야기, 현재 성폭력 피해 사건이 진행 경과를 설명했다. 동석한 성매매피해자지원단체 활동가에게도 “탈성매매를 위해 실제 어떤 지원을 하는가(금전 지원 등도 가능한가)” 질문이 오갔다.

판사가 잠시 서류를 검토하더니, “‘불처분’ 결정을 내렸다. 이번 일(성폭력 피해)로 이 일(성매매)을 할 때 본인이 처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아셨을 거라고 본다, 다음에 다시 성매매 사건으로 처분을 받게 될 때는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말을 더했다. 당사자는 수사과정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울면서 연거푸 허리숙여 인사하며 법정에서 나왔고, 어두운 법원 복도에 서서 숨을 돌렸다. 당사자를 지원하는 이들은 성폭력 피해 사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당사자의 안도를 보며 그가 성폭력 피해 신고 이후  겪은 절차, 성매매 사건으로 경험한 제도와 법원의 결정까지. 공권력과 제도가 개인을 흔드는 힘의 흐름을 살펴 보게됐다. 

성매매는 위험한 일이다라는 평가기준과 성매매 여성에게 위험과 안전의 의미는 일치할까. 누군가는 이런 일까지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니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고민해 달라고 할 수도 있다. 필요한 질문은 성매매는 위험한 일(위험하기만 한 일)이라기 보다는 그 위험에 누군가 차이(차별) 없이 공감해줄 수 있는가,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가 같은 질문에 대한 진지한 답일 수 있겠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려본다. 

다시 질문을 다른 쪽에 해본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조사를 받은 그날 이후 성폭력 가해자이자 성구매 남성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성매매에 대해서는 값도 치르지 않았고, 성폭력 사건에 대한 수사는 진행도 안됐다. 성매매 처벌법 위반 혐의(성구매행위) 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백소윤

# 여성인권# 성소수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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