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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고엽제# 민간인피해# 재난

[공감 자원활동가의 활동] 보이지 않는 국가 폭력, 전방지역 고엽제 민간인 피해 :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 참석 후기

  • 일시 : 2023.06.28.(수) 15:00~17:00
  • 장소 : 통일촌 주민대피소
  • 주최 : 파주시을 국회의원 박정·파주시
  • 주관 : 경기일보·강원도민일보

‘인류가 만든 최악의 독성물질’이라고 불리는 고엽제가 우리 땅에 살포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민간인 피해자의 존재는 철저히 지워져 있었다. 고엽제로 피해를 본 군인들은 일정한 수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민간인의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권의 무관심, 외교적 문제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2023년, 고엽제가 살포된 때로부터 무려 반세기가 지났다.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길이 이제야 조금씩 열리고 있다. 파주시청과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 지원 법률·조례 제정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6월 28일 수요일, 파주시 자유의 마을에서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공감은 법안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이 사안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나는 지난 3월부터 공감 자원 활동을 하면서, 황필규 변호사와 함께 고엽제 민간인 피해에 얽힌 이야기를 조사하고 있었다. 황필규 변호사와 토론회에 참석하여 민간인 피해자 지원 방안이 어떻게 마련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추후 개선점 등을 평가해 보았다.

사진설명 : 토론회장 (방공호) 입구

 

고엽제는 어떻게 자유의 마을에 찾아 들었나

1968년부터 1970년대 초,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일대에 고엽제가 살포됐다. 서부전선에서 동부전선까지 약 2천 200만 평에 2만 1,000갤런 분량이 뿌려졌다. 북한과의 소규모 전투가 잦았던 시기이다. ‘식물통제계획’이라고 불리는 이 작전은 주한미군이 수립하였고, 국무총리의 재가를 받아 한국군이 수행하였다. 작전에는 민간인도 동원되었다. 소위 전략 촌으로 알려진 파주 대성동과 철원 생창리 주민들이다. 주민들은 고엽제가 인체에 위험한 물질이라는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작업에 투입됐다. 제초제라는 말만 듣고 보호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마을의 숲과 밭에 직접 고엽제를 뿌렸다.

고엽제의 위해성은 베트남전을 계기로 알려졌다. 미군은 전투에 방해가 되는 밀림을 제거하고자 고엽제(에이전트 오렌지)를 베트남 전역에 살포했다. 당초에는 식물을 제거하고 적군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 고엽제를 사용했다. 그러나 고엽제는 비단 식물과 적군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치명적이었다. 고엽제 원료인 ‘다이옥신’은 인체 내부에서 암이나 파킨슨병을 비롯한 각종 합병증을 일으킨다. 체내에 축적된 다이옥신은 2세에게 고스란히 유전되며, 기형아 출생의 원인이기도 하다. 지표층에서는 약 9~15년, 심토층에서는 약 25~100년이 지나고 나서야 피해가 반감한다.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는 장기간 서서히 진행되는데, 그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치명적이다. 또한, 화학물질은 미량만으로도 인간과 자연환경에 비가역적인 피해를 준다. 인간이 화학물질 피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대성동·생창리 주민들이 고엽제로 인한 피해를 인지한 것도 수십 년이 지난 뒤이다. 언제부턴가 마을에는 원인 모를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늘어갔고, 주민들의 평균 수명이 짧아졌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그저 우연으로만 여겼다. 한참이 지나서야 고엽제가 원인임을 알게 됐다.

 

외면 받은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

1999년, 전방 지역 고엽제 살포 사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국방부 차관이 ‘식물통제계획’의 작전 내용을 인정했다.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전방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주민들의 증언을 청취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피해자 보상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곧이어 정부는 고엽제 살포 작업에 투입됐던 군인과 민간인 피해자에 대해 의료지원, 취업 지원, 보조금 지급 등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전방 지역에 복무한 군인이나 군무원은 고엽제법을 통해 피해를 보상받게 되었지만, 민간인 피해자는 배제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언론보도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졌다. 민간인 피해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는 중단됐다.

갑작스레 분위기가 반전된 까닭은 무엇일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몇 가지 자료를 통해 경위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과도한 예산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국가보훈처가 민간인 피해 보상을 위해 필요한 지원 금액을 과다하게 예상하고 우려를 표한 정황이 있었다. 둘째, 정치권에서는 해당 사안에 보훈 이념을 중심으로 접근했다. 고엽제법은 국가유공자에게 적용될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는데, 이러한 법을 민간인에게 적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보훈’이라는 이념의 경계선 앞에서, 피해자 권리에 대한 원칙이 좌절된 셈이다.

사진설명 :  고엽제 피해자 토론회에서 발제하는 황필규 변호사

 

민간인 피해자 지원을 위한 대책, 무엇이 있나

토론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피해 사례를 증언하였다. 대성동·생창리 주민들은 고엽제에 얽힌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생창리 주민 김영기 님은 “국가에 순응한 결과가 재앙만 가져다줬다.”고 했다. 피해 자체도 문제이지만 국가가 자신을 버렸다는 아픔이 가장 쓰라렸다는 것이다. 또 다른 대성동 주민은 “민간인 피해 회복이 한차례 좌절된 뒤 여러 국회의원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자신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증언했다. 피해로 인한 고통에 더하여, 국가로부터의 외면으로 인한 아픔이 가중된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주민들이 받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피해 회복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주시는 주민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파주시는 ‘파주시 고엽제후유증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지원조례’를 제정하였다. 피해자들이 앓고 있는 질병의 종류에 따라, 매달 10만 원 또는 30만 원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고엽제 2세 피해자에게는 20만 원을 지원한다. 국가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비록 파주시 조례에 따른 지원금은 고엽제 군인 피해자가 ‘고엽제법’에 따라 지급받는 지원금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대성동 주민들은 파주시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지방자치단체가 조례안 입법 과정에 민간인 피해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소통의 장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 국회의원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먼저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해당 법안이 피해자를 위한 좋은 대책인지는 의문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상희 위원(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은 법안에 대한 의문점을 표했다. 그는 “민간인 피해자들을 (정부가) 그대로 방치한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하면서도, “전방지역 고엽제 살포에 대해서는 이미 정부가 인정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진상규명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법안의 실효성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사진 설명 :  토론회에 참석한 고엽제 피해자들과 함께

 

고엽제 민간인 피해 회복을 위한 과제

‘고엽제 민간인 피해 조사’는 내가 공감에서 처음으로 참여한 일이었다. 황필규 변호사가 사건 개요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고, 나는 설명을 바탕으로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다. 처음에 황필규 변호사가 이 사건에 대한 리서치를 부탁하였을 때, 무턱대고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중대한 사건의 진상을 일개 학부생인 내가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부여받은 것만 같았다.

막상 자료 조사를 시작해 보니, 사건에 얽힌 모든 자료가 정보의 바다에 공개 되어 있었다. 노트북 한 대로 검색만 하면 피해사례 증언 인터뷰 기사가 줄줄이 쏟아지는데, 반백년 동안 이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것이 황당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조사를 하면서 한 가지 확신만이 들었다. 민간인 고엽제 피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뿐이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들이 애써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방치했다.

정부가 조성한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군의 지휘를 받아 작전에 투입되었다. 정부가 고엽제 피해자의 회복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보훈’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민간인 피해자가 고엽제 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작전을 수행한 것은 군인 뿐만이 아니었다. 대성동·생창리 주민도 마찬가지였다. 민간인의 수고는 ‘국가를 위한 공헌’으로 여겨질 수 없는가. 과연 ‘보훈’ 이념이 담고 있는 가치란 무엇인지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정치권이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 문제를 인권을 중심에 두고 이해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정부와 국회는 금전적인 사정과 이해관계만을 고려해서, 고엽제 민간인 피해 조사를 중단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초 국가보훈처가 예상한 지원금의 수준은 지나치게 과장되고 부풀려진 것이었다. 수십 년 동안 고엽제 피해는 피해자 개인의 불운한 일 정도로 치부되었다.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가 조금이나마 피해를 회복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파주시가 조례를 바탕으로 대성동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잘못을 특정 지방자치단체의 선의에 의존해서 해결할 수는 없다. 파주시의 노력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분명한 책임 인정과 사과가 필요하다. 또한,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고엽제법’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강원도 생창리 주민들에 대한 지원 또한 조속히 추진될 필요가 있겠다.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만 하는 사회, 국가 폭력으로 입은 피해를 회복할 길이 없는 사회는 분명 좋은 사회가 아니다.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사회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토론회는 그 방안을 모색하는 출발점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글_ 이정은(공감 37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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