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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익법 교육·중개

[월례포럼] 저작권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1. 왜 지금 저작권이 문제인가

 

지난 7월, 개정된 저작권법이 적용된다는 소식에 한동안 누리꾼들이 술렁거렸다. 그러나 몇몇 누리꾼들은 이번 개정이 큰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3진 아웃제’가 도입되는 것 뿐이므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 장담하기도 했다. 3진 아웃제란, 어떠한 게시판에 저작권 침해게시물이 있을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그것을 삭제 혹은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서를 통지하고, 그러한 경고에도 3회 이상 저작권 침해물을 게시하면 해당 게시판을 한시적으로 폐쇄하는 것이다. 이것은 헤비업로더에게도 해당되어 그 경우 헤비업로더의 개인 계정이 한시적으로 정지된다. 때문에 지금까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즉 지난해부터 이루어진 법무법인의 무더기 고소에도 해당되지 않았던 드라마나 영화의 포스터를 게시하거나 음원의 일부를 따서 UCC를 만들거나 하는 행위는 앞으로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5세 아이가 ‘미쳤어’라는 노래를 부른 동영상이 삭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저작권 침해로 인식되지 않았던 행위들임에도, 게시판 폐쇄가 두려워 포털업체에서 지레 삭제를 하고 만 것이다. 이번 월례포럼은 분명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어디까지가 저작권 위반인지 아닌지도 모호한 상태에서, 네티즌들이 혹은 포털측이 스스로 두려워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상황. 이 상황 속에서 카피레프트 운동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알고 싶었고, 때문에 주제를 ‘인터넷문화와 카피레프트’로 잡았다. 하지만 정보공유연대(IPLeft)에서 강사로 와주신 허민호씨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저작권의 개념부터 뒤흔들기 시작했다. 

 

 

2. 저작권법은 왜 생겨났을까


카피레프트(copyleft)는 흔히 저작권을 나타내는 카피라이트(copyright)에 반하는 의미에서 right를 left를 바꾼 것으로 상징적인 의미의 단어이다. 때문에 카피레프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카피라이트, 즉 저작권을 이해해야 한다. 카피라이트는 copy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출발은 ‘복제’에 대한 권리였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작가를 보호하기 위한, 작가의 권리가 아니라 ‘작품에 대한 권리’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때문에 복제기술과 시설을 보유한 출판업자들이 저작권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고, 18세기 영국에서 최초의 근대적인 저작권법으로 알려진 ‘앤 여왕법’이 등장한다. ‘앤 여왕법’은 저작권에 보호기간을 설정함으로써, 출판업자들의 독점적인 지위를 깨트리고자 했다. 다시 말해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는 누구나 작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지식은 독점할 수 없는 것을 전제한 것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저작물을 사유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2차대전 후, 민족구가들이 독립을 하고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의 기술을 도용한다. 1980년 무렵 미국은 무역적자가 심해지자 아시아를 대상으로 지적재산권 피해액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WIPO가 생겨났고, 무역에 있어서의 지적재산권 협정인 TRIPs가 만들어졌다. 또한 기업들의 로비로 저작권의 보호기간도 점차 길어지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논리속에서 지식과 문화는 상품이 되고,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닌 누군가의 돈을 벌어주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3. 너무나 자연스러운, 저작권에 대한 오해

 

광랜이 집집마다 연결된 우리나라에서 불법 다운로드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은 무척 드물다. 그러나 그렇게 다운로드 창의 숫자가 빨리 100이 되길 기다리면서도 마음속에 무언가 콕콕 찌르는, 소위 양심의 가책을 느껴본 적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이 노래이든, 영화이든, 만화책이든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한 곡에 500원을 주고 노래를 다운 받을때는 내가 좋아하는 소녀시대에게 혹은 2PM에게 돈을 벌어준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 그런 이유로 ‘저작권’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권리’, ‘저작권을 지키는 것’은 ‘윤리적인 행위’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내가 낸 500원 중 과연 얼마가 가수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일까.

허민호씨의 강의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유나바머의 일화였다. 지독한 반문명주의자로, 기술개발에 힘을 쏟는 대학이나 기업의 연구실에 끈질기에 폭탄테러를 저질렀던 그. 전기나 수도도 없이 산 속에 숨어살던 그도 뉴욕타임즈에 문제의 글 <산업사회와 그 미래>를 기고할 때 저작권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이렇게 조치하라고 걱정어린 한 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현대 산업사회가 싫어 조목조목 비판하던 그도 저작권은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저작권이 ‘작가의 권리’로 오인됨으로써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4. 촛불은 나누면 2배가 된다


그러나 나의 500원 중 단 1원이라도 소녀시대나 2PM에게 돌아가게 된다면, 저작권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말그대로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말이다. 이에 대해 허민호씨는 왜 창작자를 보호해야 하냐고 반문을 던졌다. 실제로 창작자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작품이 널리 퍼지는 것이 아니냐고. 산업자체가 자본에 휘둘리게 된 현실이 문제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창작자에게 장기하처럼 가내수공업(장기하와 그가 속한 음반사는 집에서 컴퓨터를 이용하여 CD를 굽고 직접 스티커를 붙여 음반을 제작한다)으로 만들라고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자본주의 사회를 박차고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저작권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더 많은 사람에게 이로운 방향이 무엇인가, 나의 가치관에 비추어 봤을 때 무엇이 윤리적인 일인가 생각하고 각자 실천에 옮기는 것 뿐일 터이다.


처음에 저작권만을 주제로 삼으면 이야기가 너무 광범위해질 것 같아 인터넷 세상으로 한정시키고자 했기에, 허민호씨의 저작권에 관한 이야기들이 당황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카피레프트건, CCL이건, 퍼블릭도메인이건, 그 이전에 과연 저작권이 무엇이기에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인지 혹은 우리가 벗어나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 고민의 과정에서 이 한 마디, “내게서 어떤 생각을 전달받는 사람은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지만, 그로 인해 나의 지식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이는 내 촛불에서 자기 초에 불을 붙여 간 사람은 빛을 얻게 되지만, 그로 인해 내 주위가 어두워지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허민호씨도 강연에서 인용한 토마스 제퍼슨의 이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보는 것이 어떨까.

 

(더 자세한 내용은 녹취록을 참고하세요)

 

글_10기 인턴 김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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