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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부회원 인터뷰] 누구보다 공감을 사랑하고, 공감의 행복을 바라는 – 홍경화 기부회원

 

 

   지금처럼 시원하고 높은 가을 하늘이 오기 전 7월, 무더웠던 여름에 공감과 유난히 인연이 깊은 홍경화 기부회원을 만났다. 햇살이 뜨거웠지만 청량하고 맑았던 날씨만큼 환하고 곧은 그녀와의 만남은 누구보다 공감을 사랑해주는 또 한 분을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기쁜 시간이었다. 현재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무법인에서 3년 차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마음으로 늘 공감과 함께하고 있었다.

 

6년 전, 공감과 함께

   그녀는 공감의 9기 자원활동가로, 당시에 공감에서 활동하던 김영수 변호사와 한 팀으로 활동했었다. 국내 법률팀이었지만 일본어를 할 수 있었던 덕에 일본과 관련된 조사들을 많이 맡아서 했다고 한다. 가장 재미있었던 활동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그녀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와 공감에서의 일상을 이야기해주었다.

“주택지역에 공동주택을 허물고 주차장을 건립하겠다는 사안을 조사했어요.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찾아오신 분들이 마치 변호사님을 대하듯 저에게 부탁하셨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주차 공간 사진을 찍고 증거 수집을 했던 게 기억나요. 동네 분들이 오셔서 친절하게 안내해주시면서 제 손을 꼭 잡고, 음료수를 건네주시는데 그땐 정말···. 원래 법조인의 꿈이 있었지만 아, 나는 변호사가 정말 꼭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깊어졌었어요.”

기억을 회상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당시 그녀가 느꼈던 간절함이 비치는 듯했다.

“아, 그리고 정정훈 변호사님과 함께하는 책과 술이라는 모임이 있었어요. 책을 읽고 술 한잔 하면서 책을 토론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좋은 책도 많이 소개해주시고, 토론하는 과정도 재밌고 술과 함께,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2008년, 대학생이던 그녀는 공감 인권법캠프를 알게 되어 참여하려 했지만, 선착순에 들지 못해 참가하지 못했다고 한다. 2009년에 다시 지원하려 했을 땐 참여 대상이 예비 법조인이었기에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하며 ‘아 인연이 아닌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공감 자원활동가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반은 오기로, 반은 공감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마음에 지원했는데 합격 소식을 받았다고 한다. 쉽게 맺어진 인연이 아니었던 만큼 공감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그녀의 마음이 더 깊어진 것이 아닐까. 세 번이나 포기하지 않고 공감에 다가와 주었던 그녀에게 공감 또한 큰 고마움을 안고 있다.

 

기부의 시작, 혼자의 힘으로.

   자원활동으로 맺어진 인연이 어떻게 기부까지 이어지게 됐는지 물었다.

“학생이다 보니,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기부하기엔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었고, 로스쿨 재학 중에도 마음은 있었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첫 월급을 받으면 그때부터 꼭 공감에 기부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법무법인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이후, 첫 월급을 받고 기부 신청을 했다는 그녀. 그때 당시 그녀는 공감 기부회원의 한마디에 지금은 인턴이지만 월급이 많아지면 기부액수도 늘리겠다고 했다며 지금까지는 한 번 증액했다며 수줍은 듯이 웃었다. 그렇게 소중한 기다림이 쌓여 공감에 기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 번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또 다른 길에서.

   현재 그녀는 법무법인에서 금융과 부동산 관련 자문을 맡고 있다. 펀드, 은행, 증권 등 의뢰를 맡아 해결하고 있다. 로스쿨을 재학하면서도 이와 관련된 업무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자신이 새로운 일을 맡게 된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저는 제가 공익 쪽 일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 일이 하고 싶었고요. 그런데 그때 담당 변호사님이셨던 김영수 변호사님이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지금 당장 공익 활동을 시작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라. 실제 필드에 나가서 변호사로서 다양한 역량을 쌓고, 그 역량을 가지고 공익활동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와서 실력을 바탕으로 일할 수도 있다.’ 제가 반드시 지금 당장 공감 등 공익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있는 곳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경험과 실력을 쌓아 변호사로서 한 사람 몫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게 되었을 때 공익 분야에서 첫걸음을 내딛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이란, 본래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만 흘러가진 않기에 새로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두렵고 겁이 나는 법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길을 용기 내서 간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익활동이 아니어도 쉽게 변호사라고 하면 생각하는 일, 억울한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 그런 일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그녀. 하지만 금융이나 부동산은 전혀 다른 분야이기에 경험도 없는 그녀 스스로가 잘해낼 수 있을지, 변호사로서의 보람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새로운 보람을 찾았다고 한다.

“억울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권리를 찾아주는 것도 변호사로서의 일이지만, 변호사로서 의뢰인이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같이 구성하고 그걸 도와드리는 것도 충분히 보람된 일이라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어떤 부동산 개발을 하고 싶은 건설회사가 있어요. 정말 좋은 주택을 지어서 서민들에게 좋은 가격에 분양하고 싶다는 회사가 있는데 자금이나 계약구조는 전혀 모를 수가 있죠. 그런 의뢰인들께 이렇게 하시면 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고 도와드리는 거죠. 그렇게 궁극적으로 의뢰인이 원하는 바가 실현되었을 때 충분히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보람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빛에서 확신이 느껴졌다. 변호사로서, 공익을 추구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자기 일과 지향하는 바에 대한 확신. 그런 그녀가 생각하는 인권이란 어떤 것일까.

 

인권을 생각하며.          

   “질문을 받고 저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인권이란 정말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누릴 권리인데도 실제로는 평등하게 누리기 어려운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본래의 의미대로 모두가 권리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지향해야 하는 것 같고요.”

인권이 무엇이라 단정하여 말할 수 없지만,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라는 점에서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그녀의 생각에서 넓은 사고가 느껴졌다.

“인권이란 건 상대적이라 영원하지 않지만,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를 누릴 수 있도록 또 우리가 누리는 인권이 더 나은 방향으로 지속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변치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 인권이란 건 영원하지 않다. 우리가 정의하는 대로 세상이 규정되고 운행되는 만큼 우리가 인권을 무엇이라 생각하고 지향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절대적이다. 후퇴하지 않는 성숙을 하며 더 많은, 더 다양한 사람들이 동등하게 권리를 누리는 삶이 ‘당연해지는’ 그런 사회를 쉬지 않고 꿈꾸는 노력이 멈춰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공감에 바라는 점.

   그녀가 공감에 바라는 점은 딱 하나.

“공감에 계신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찾기 위해 애쓰잖아요. 그러니까 공감에 계신 여러분들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공감의 행복을 간절히 원해주는 마음은 모든 기부회원의 마음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이렇게 눈을 마주하고 듣게 되니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정말 행복해졌다.

필자 또한 자원 활동을 마무리하고 공감을 떠나며, 그동안 공감을 스쳤던 모든 인연과 앞으로 만나게 될 인연들, 그리고 공감과 함께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세상은 조금씩 더 아름답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희망의 길이 더욱 또렷해지지 않을까. 그런 공감과 함께해주는 모든 기부회원님께 정말 감사하다. 끝으로 바쁜 와중에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하여, 공감과의 깊은 인연과 공감을 사랑해주는 마음을 전달해준 홍경화 기부회원께 감사드리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글_박신혜(공감 21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