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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부회원 이야기] 이름보다 기사가 기억되고 싶은 기자 – 김포그니 님

 

 

이름보다 기사가 기억되고 싶은 기자 – 김포그니 기부회원을 만나다


 

 처음 전화를 했을 때, “안녕하세요, 공감입니다.”라고 하니 김포그니 기부회원은 빠르게 “네, 선생님”이라고 답했습니다. 타인의 나이가 어떠하든, 직위가 어떠하든 자신보다 높여 부르는 삶의 익숙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직업은 기자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사를 취재합니다. 그는 한 사람으로서는 모두 경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기자로서의 삶에 대해, 그리고 공감과 ‘1기 자원활동가’라는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그에게 공감에서의 경험에 대해 물었습니다.

 

[공감] 2013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해입니다. 특히나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기부회원님에게 2013년의 정치, 사회적 이슈들은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김포그니 기부회원 (이하 김)] 한 가지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검찰 취재를 도맡아서 그런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낙마했을 때가 가장 많이 생각납니다. 채 전 총장은 취임 초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상대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2~3개월 후 채 전 총장을 겨냥한 이른바 ‘혼외 아들’ 의혹이 제기되면서 검찰이 차례로 발칵 뒤집혔지요. 전례 없던 일이었습니다. 뜬금없는 혼외아들 의혹 제기에 이어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2차 의혹마저 증폭됐습니다. 연일 핵 폭탄급 화제가 이어지며 기자들도 아수라장이었지요.

저 역시 다른 기자분들처럼 채 전 총장과 관련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임 씨의 고모를 만나기 위해 대구에도 빈번히 내려가고 소위 말하는 ‘뻗치기’도 몇 주 해봤지만 진실을 알기는 굉장히 어렵더군요(웃음). 취재의 진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어서 저를 비롯한 몇몇 선후배 기자분들이 ‘청와대 측이 채동욱 총장과 그의 내연녀라는 의혹을 산 임 씨의 금전 거래 관계를 확인해봤으나 특별한 증거를 발견 못 해 침통한 상태’라는 내용의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외로 큰 반향은 없었습니다. 이후 취재에서 청와대가 채 전 총장의 낙마를 위해 사실상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지만 뚜렷한 증거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것과 관련해 현재에도 동료 선후배 기자님들이 열심히 취재 중입니다. 여하튼 간에 여러모로 석연치 않았던 사건이라 아직까지 기억이 납니다.

 

[공감] 기자로서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기자로서 자랑스러움을 느낄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요신문>에서 특종 기사를 쓴 것을 봤습니다.

[김] 특종 기사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면 자랑스러워할만한 데, 올해 3월 경에 보도한, 그나마 특종 격으로 주목받았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기사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어서 아쉽기도 하고, 다른 의미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없었던 사건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자면 예전에 ‘덩 여인 스캔들’ 사건 때 언론은 ‘제 2의 색계’라면서 덩 여인을 두고 마치 ‘마타하리’에 버금가는 고급 스파이로 간주했지만 알고 보니 그저 단순 비자 브로커였지 않습니까. 김학의 전 차관 사건도 엄밀히 말하면 언론이 키운 스타급 뉴스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한테는 4개여 월간 고생은 있는 대로 하고 단독 보도는 놓쳐버린 허무한 취재이기도 했지요(웃음).

 

[공감] 당시 취재를 하면서, 어려움을 겪지는 않으셨는지요.

[김] 큰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컨트롤해야 했기 때문에 ‘좀 버거웠다’고 표현하면 맞겠네요. 2012년 9월에 김학의 사건을 접하고 아마 기자로서는 유일하게 문제의 ‘영상’ 원본을 보았을 겁니다. 2012년 12월 경 영상을 가지고 있는 한 관계자에게 ‘전세 보증금 7천만 원을 줄 터이니 영상을 주시오’라고 했다가 ‘20억 원이 아니면 안 팔겠다’는 퇴짜를 맞기도 했지요. 결국 고생 끝에 문제의 건설업자인 윤 회장을 직접 만나 원본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당사자와 신뢰관계를 튼 상태에선 제 아무리 사실 보도를 한다 한들 당사자로부터 원망을 듣기 십상입니다. 덕분에 신변의 위협을 받는 상황도 몇 차례 벌어졌습니다. 새벽에 벤츠 자동차에 태워져 질질 끌려다녀보세요. 기분이 그렇게 상쾌하진 않습니다. 여기자로서의 최소한의 안전과 보도 의무를 나 홀로 조율해야만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공감] 기부회원님이 쓴 인터뷰 기사를 보니,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먼저 사람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화장을 지우고 민낯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 혹 이것이 기사에 대한 원칙 같은 것인지요.

[김] 네, 사람한테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인터뷰 시간이 굉장히 긴 편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취재를 위해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보다는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이 입장에서 볼 때 이상한 질문들도 많이 나옵니다. ‘꿈이 무엇인가, 언제 가장 힘들었는가, 어릴 때 꿈이 지금은 무엇으로 달라졌는가, 어떤 사람이 좋고, 어떤 사람이 싫은가’ 등 실제 기사에 필요하지 않는 질문을 많이 하니까 인터뷰이께선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즐겁게 답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단편적인 답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다양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격적인 인터뷰, 김포그니 기부회원과의 인터뷰가 그랬습니다. 진심을 가득 담은 눈빛은 공감에서의 경험, 그리고 앞으로의 포부를 말할 때도 빛났습니다.

 

[공감] 공감의 ‘1기’ 자원활동가이신데, 1기라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앞선 선배도 하나 없는 선택이었을 텐데, 어떻게 자원활동가를 할 수 있었는지요.

[김] 먼저 과거 이야기를 해야 조금 이해가 되실 것 같아서 장황한 얘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웃음). 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그랬겠지만 저 역시 문득 바깥세상이 궁금해졌습니다. 주변에는 ‘내신이 낮아 이른바 명문대에 입학하기 어려우니 자퇴 후 검정고시를 보겠다’며 안심시켰지만 비공식적인 자퇴 이유는 ‘세상 구경’이었지요. 자퇴 이후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바리스타, 학원 상담, 서빙, 설거지, 인사동 큐레이터 등 다양했지요.

한 번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어떤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전태일 열사에 관련된 발췌문이 있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어머니께 ‘대학생 아들 둔 친구가 없느냐, 법전 읽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눈에 밟혔습니다. 본인이 대학을 가겠다는 욕망을 가지면 되는데, 전태일은 그런 욕망조차 없었던 겁니다. 그저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지요. 그것도 순전히 다른 노동자를 돕기 위해 법전을 읽으려는 그 한 목적 때문에 말이지요. 그 대목을 읽는 순간 끝없이 추락하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처지에 설거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일인지, 그간의 내 모습은 ‘비겁한 방관자를 자처하며 이런저런 유희를 즐기고 있는 파렴치한의 그것’이 아닌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뒤늦은 대학교 입학 후 전태일 때문에 감흥을 받았는지, 제 전공도 아닌데 민법총론 과목을 수강했습니다. 그 때 교수님께서 ‘법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을 권리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문구를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잠 잘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지 않는가’하는 물음표가 생겼지요. 어떤 상황에 처했든 한 개인이 알아서 깨우쳐야 한다는 말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잠자는 사람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을 찰나에 <공감>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모든 이를 살핀다는 공감의 취지가 퍽 아름다웠기에 두말할 것 없이 지원했습니다.

 

[공감] 공감에서 자원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은 무엇입니까.

[김] 서울 출입국관리소에 실태조사를 간 일이 기억납니다. 이주 여성 인터뷰 업무를 맡았는데, 배정된 방에 들어가기 위해 한 겹, 두 겹, 세 겹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출입국관리소의 형태가 마치 교도소 같더군요. 그런 광경은 드라마에서나 봤는데 실제로 접하니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더랍니다. 그 안에는 우울감, 분노와 체념으로 가득한 분위기가 떠돌았습니다. 불법체류이지만 이주 근로자를 꿈꾸었던 여성 25여 명이 8평 남짓 조그마한 방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습니다. 대낮인데 창문이 없어 방 안은 주홍빛 전구 몇 개에 의지해 기묘한 밝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열악한 화장실의 모습이야 이 역시 충격적이어서 아직까지 기억이 나고요.

그 때 문득 ‘이 사람들이 이런 공간에서 있을 만큼 잘못 했나’라는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한 여성 불법 체류자는 ‘설사를 하는 와중에 이곳으로 개처럼 질질 끌려왔다’고 했습니다.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 관리소 측 관계자분들 몇몇에게 맹렬히 항의했습니다. ‘형광등을 바꿔주시고, 창문 좀 뚫어주시고, 밀도 좀 낮추어 달라’고. 돌이켜보면 스물 두 살의 치기 어린 항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정의감, 열정들이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열정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보기 좋게 정제되어 버렸지요. 당시 <공감>을 통해 자각했던 ‘날’ 것의 열정, 그 순수함을 올해에는 다시 한 번 되돌려 보고 싶습니다.

 

[공감] 자원활동가를 한 후에 기부를 시작하셨습니다.

[김] 소액이지만 기부를 하는 행위 자체에 의의를 두고 싶었습니다. 우선 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고 싶습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은 적절한 생각이 아니다’ 저도 이 말씀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를테면 보통 시험기간에 이런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오늘은 좀 놀고 내일부터 열심히 하자’, 혹은 다이어트 할 때 ‘오늘 맛있는 것 하나만 먹고 내일부터 먹지 말자’, 그런 마음들…. 살면서 다들 한번 즘 겪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실은 ‘대단한 천재’나 타고난 ‘모태 마름’이 아니고서야 조금이라도 평소에 공부해두거나 틈틈이 운동하는 게 시험과 다이어트에 더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기부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나중에 거창하게 올인(?)하는 것도 좋지만 평소에 조금씩 나누어하는 기부도 의미 있는 결과를 불러일으키지 않겠느냐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공감] 김포그니 기부회원을 통해 공감에 기부해주시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 ‘나쁜 기자’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 드디어 왔습니다(웃음). 이제까지 요리조리 저를 좋게 포장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지만 이제 그 밑천이 드러나는군요. 취재할 때 만난 취재원들의 등골을 빼 기부하고 있습니다. 농담이고요. 인터뷰이가 밥 한 끼 사주시겠다고 말하면, ‘기자 한 사람 말고, 다른 분들에게 밥 한 끼 사주시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로 ‘유인’을 하는 게 기부의 시작이라면 시작일까요. 이를 두고 저는 아름다운 나눔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분들 입장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웃음). 이를테면 학자적 가치가 있지만 굉장히 불우한 분이 있다면, 연구소에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소개를 하기도 하고, 공감, 지역 라디오, 동물 보호 단체 등 도움이 필요한 여러 곳에 ‘아름다운’ 도움을 주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를 하곤 합니다. 이를테면 나눔의 ‘전이’현상을 꿈꾸는 것이지요. 물론 강요하진 않습니다(웃음).

 

[공감] 201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김] 사실 보도에 한정된 기자가 아니라 진실을 보도하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사실이 1부터 10까지가 있다면, 이 중에서 1만 보도해도 사실입니다. 기자로서의 역량 한계가 있겠지만 되도록이면 1부터 10까지 모두 보도해서 진정한 사실이 무엇이었는지를 제대로 드러내고 싶습니다. 또한 이 역시 역량이 닿는다면 언젠간 사회에 도움이 되는 보도를 하여 특이한 이름보다는 기사 자체로서만 기억되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또 진실 보도 번외 편으로(웃음), 오프더레코드로 좋은 참여를 많이 이끌고 싶기도 합니다.

 

기자의 이름보다 한 편의 좋은 기사가 남겨지고 싶다는 기부회원, 말 한 마디에도 사람에 대한 존중감이 솔직하게 녹아져 있었습니다. 소중한 삶을 솔직하고도 유쾌하게 나누어주어서 감사합니다. 그의 마음이 공감과 함께 하고 있다니, 2014년을 시작하는 발걸음이 더더욱 힘차기만 합니다.

글_ 정소망 (18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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