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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부자 인터뷰] 삶으로 드리는 평화의 기도- 이현주 기부자님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부르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성 프란체스코의 ‘평화의 기도’ 일부이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달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공감’을 떠올렸다는 고마운 그녀, 이현주 기부자를 2월의 끝자락에 만났다.


 


공감, 그 인연의 연속


 


 이현주 기부자와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언니가 공감에서 일하는 걸 알고 신기했다.”라며 “언니 얼굴에 먹칠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한 그녀지만 장 변호사를 통해 기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이현주 기부자가 공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를 만나고 나서였다. 인연에서 인연으로, 이현주 기부자와 공감은 이어졌다.



 “한 6년 전쯤, 전 4년 차 직장인이었을 때였어요. 웹 기반의 홈페이지 제작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제 직업이 특이했나 봐요. 제가 졸업한 대학에서 직업 설명을 해달란 요청을 받고 학교를 방문했어요. 그때 학과 선배이기도 한 소라미 변호사님을 만났죠. 소 변호사님은 기억 못 하실 수도 있지만 그날, 소 변호사님으로부터 공감에 대한 소개를 들었어요. 내가 막연히 하고 싶던 일을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어요.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 자체가 부럽기도 했죠. 사람이면 현실적인 타협을 많이 하게 되는데, 소위 사회의 기득권층이 될 수 있는 ‘사법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한 분들의 선택이라 더 반성도 되고 자극도 받았어요. 그날, 기부를 결심했어요.”



이현주 기부자는 장 변호사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감의 활동들을 보고 있다. 그 중 이주민에 대한 소식은 평소 잘 접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더 관심을 지니게 되었다. 장 변호사의 페이스북을 통해 본 세상은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심지어 어떤 사건들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고 관련된 내용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일전에 출입국관리소의 이주민들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사건을 서연 언니의 페이스북에서 봤어요. 놀란 마음에 바로 기사를 찾아봤는데 나오질 않더군요. 어떤 이름 없는 미디어에서만 다룰 뿐이었어요. 이런 식으로 막혀있으니 더욱 무지했구나 싶은 게 충격이었죠. 또 지난해부터는 집이 이사하게 되어 이주노동자와 버스를 타는 일이 많아요. 그런 식으로 마주치다 보니 ‘과거 우리나라도 외국에 가서 일하며 서러움을 많이 당했을 텐데, 우리도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류가 아님에도 행복하다




 그녀는 대학을 다니는 내내 한해도 쉬지 않고 연극을 했다. 친구들과 과외로 돈을 모아 무대를 빌려 연극을 올리기도 했다. 무얼 만들고 창작해 가는 일이 너무 재밌었고 연극으로 먹고살고 싶었다. 그런데 막연했고, 무서웠다. 그래서 찾은 타협점은 방송이나 광고 쪽 일이었다. 그리고 기회가 되어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일을 하게 됐다.



 “지금은 디지털 장비들이 굉장히 널리 퍼져서 TV나 신문 광고 저리 가라지만, 제가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죠. ‘뜨겠다.’ 싶었고, 내가 원하던 일을 꼭 광고 회사가 아니어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설명하자면, 온라인으로 광고 느낌의 캠페인이나 제품 런칭 프로모션을 하는 거예요. 광고의 영역이 넓어지는 시기랑 맞물려서 지금은 ‘이런 일을 하고 싶다.’ 생각했던 일을 하면서 사는 거 같아요. 재밌게 일하고 있어요.”



그녀는 자신의 일을 ‘주류가 아닌’ 일이라 표현한다. 그저 재미있었고 밤을 새워도 힘들지 않았다. 뭔가 만들어 나가는 게 신 났다. 그렇게 10년을 일하면서 인정도 받아온 운이 좋은 사람인 거 같다고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바보였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 10년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우리 사회는 ‘주류’가 아니면 ‘보통’으로 살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일하는 쪽 사람들은 경력을 쌓아 대기업이나 공기업으로 많이들 가요.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싶대요. 굉장히 안타까워요. 내가 10년 동안 재밌게 기쁘게 일해온 것들을 내 후배에게 강요해도 되나 라는 생각에 씁쓸할 수밖에 없어요. 소위 ‘주류’가 아니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재밌는 일 하고 살아도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그녀는 공감에 기부하면서 2번을 증액했다. 처음엔 기부하는 돈이 아쉽진 않을까 걱정도 했었다고 솔직하고 겸손하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시작된 기부가 증액으로 이어졌다. 어떻게 쓰였으면 하는 생각보다는 그저, 조금이라도 더 돕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감사할 따름이다.



“제가 천주교 신자인데, 제 세례명이 프란체스카(프란체스코의 여성명사)예요. 성 프란체스코 평화의 기도를 좋아하죠.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라는 첫 머리를 특히 좋아해요.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 세례를 받았어요. 공감은 늘 저에게 이런 마음을 일깨워 주시니 참 고마워요.”



수많은 기부자가 있기에 공감이 있다. 이현주 기부자의 바람처럼, 공감 역시 기부자들의 희망을 담는 도구가 되어 세상에 희망을 빛을, 기쁨을 전하는 곳이 되기를 기도한다.


 




 


글_ 남효영(공감 14기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