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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부자 인터뷰] 아름답지 아니한가, 우리 서로 희망을 보듬는다면! – 박순덕 기부자님

 



 


 


인터뷰를 앞둔 새가슴은, 늘 그렇듯 설렘과 긴장 사이를 떠돈다. 그러나 얼굴과 얼굴이 마주하는 순간 “처음 느낀 그대 눈빛” 하나로 편안해지는 것이, 또 우리 만남의 수순이기도 하다. 맑은 미소와 소탈한 웃음소리로 공감의 마음을 오롯이 사로잡은 그녀, 박순덕 기부자를 소개한다.


 



  당연히!


 


박순덕 기부자는 2006년 3월에 기부를 시작하여 무려 두 번을 증액하였다. 공감은 그 액수나 방법과는 별개로 모든 기부자님들의 정성과 격려에 늘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인터뷰에서는 기부액을 늘리신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질문을 던지기가 무섭게 “처음에 너무 적게 시작해서…… 아직도 공감이 일하시는 것에 비해서 너무 적지요.” 하고 손사래를 친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재단은 이름이 꽤 잘 알려진 곳이니 ‘재정적으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고, 더구나 공감은 아름다운 재단에서 재정을 지원받는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비용을 조달하고 있잖아요? 이 점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개인변호사 사무실을 꾸려 가기에도 힘든 일이 많은데, 공익적인 일을 하면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비품까지 해결하자면 얼마나 더 어려우시겠어요.” 기부는 “사회의 윤활유”라는 그녀. 그것은 “ ‘자기 자신을 위한’ 윤활유가 될 수도, ‘타인을 위한’ 윤활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당연히 늘려갈 것”이란다.


 


 


  즐겁게!


 




박순덕 기부자는 ‘가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여성 변호사’로서,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남모를 고충이 있을 듯도 한데…….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부분은 꽤 있다면서도, 그 표정은 여전히 밝다. 그렇다면 혹시, 어려움을 이겨내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예상 외로 간단한 대답이 돌아온다. “즐겁게 일합니다. 그러면 힘든 면이 있더라도 좀 만회가 되지요.” 법률은 즐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분쟁 때문에 즐겁지 못한 사람들이 변호사를 찾고, 특히나 가사사건의 경우에는 심적으로 더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 분(의뢰인)들은 변호사나 여타 전문가들과 소통이 잘 되면” 힘을 얻는다. 그래서 그녀는, “분쟁을 법적으로 잘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난 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고, 앞으로의 일은 또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도록 돕고 좀 더 자신감을 갖게 해드릴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고 말한다.


 


그녀는 가사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로서 -단순히 ‘잘 헤어지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의뢰인의 심적 상태 자체가 더 좋아지고 살아갈 의욕을 얻는’ 데까지 도움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의뢰인과 변호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일차적인 접촉”으로써 ‘상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변호사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거나 물어오는 것에 답해주고, 그 중에 법적 분쟁이 생기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개입해야만 하는 사람이니까요. 상담만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고, 사건이 법적 분쟁으로 가지 않고 협의를 한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이 알고서 협의를 하는 것과 잘 모르고 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조언을 해주면 훨씬 더 원만하게 해결을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에 응하자면 전 인력이 ‘full’로 돌아가야 하지만, 사무실은 분주함 속에서도 언제나 즐겁다. 직원 모두가 “우리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것이고 이 속에는 봉사의 의미도 있기 때문에,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잘 헤쳐 나가는 것 역시 우리의 임무”라는 공통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무실의 모토(motto)가 ‘일을 할 때는 즐겁게 하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즐겁게 일하라 강요할 수는 없지요. 되도록 그런 분위기로 가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건네진 말끝에, 온기가 돈다.


 


 


  법은 사람 속에서, 법조인은 경험 속에서


 


그녀는 약대를 졸업하고, 고민 끝에 법대에 편입하였다. 진로를 바꾼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 “법은 사람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는 일”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해왔던 공부와 새로 시작한 공부가 구조부터 너무 달라서 막막했지만, “사고는 하되 안 되는 것이 있으면 외우고, 계속 보완”해가며 어려움을 이겨냈다. 누군가에게는 독특하고 신기하게, 또 누군가에게는 힘들게 먼 길을 돌아온 것처럼 비추어질 수 있는 삶을 두고, 그녀는 오히려 “변호사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한다. 문 ‧ 이과 공부를 모두 해보고, 학교를 두 번 다니면서 친구-그것도 4년 차이가 나는-를 한 번 더 사귀었던 덕에, “편견을 깨고 세상을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비법학도들의 법조 진출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법학은 굉장히 다양한 사안을 다룹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이 직접경험이든 간접경험이든, 경험 속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법에 어떠한 ‘방향성’은 있어야 하겠지만, 법조에 너무 똑같은 사람들만 있다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가 전문 직종만을 지나치게 선호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법학전문대학원 등을 통하여 법을 공부하고자 하는 여러 학생들에게는 “법학 공부가 종착점이 아니라, 법을 공부하고 그 경험을 살려서,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전하고 싶다.


 


그녀는 요즘, 허영만 씨의 만화 <식객>과 조정래 씨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당사자가 하는 말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거나 이해를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변호사는 다양한 간접경험을 통해서 의뢰인과 사건을 풍부하게 이해해야 하는데, 가장 좋은 것이 소설과 만화”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특히 대하소설은, 굉장히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데다 역사 공부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유익하다. “우리는 대개 ‘독립운동’에 대해서 막연하게 감사하지만, <아리랑>을 읽어보면 ‘구체적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공화정이니 왕정이니 하며 내부적으로 분파가 형성되었던 것도 그냥 이해하려면 잘 되지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독립운동을 같이 하면서도 서로 시각 차이가 있었던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스토리’로 드러나 상황 설명이 되지요. 인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그 나라의 스토리, 조상들의 스토리, 가족의 스토리 등 모든 스토리가 합쳐져서 된 것이지 혼자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대하소설을 읽다보면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은 자연히 넓어지죠. 저는 변호사라면 대하소설을 꼭 읽어야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미 읽은 작품들도 가끔 다시 꺼내 들곤 합니다.”


 



 

 


  공감이란 [법조인들이 반드시 기부를 해줘야지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단체]다.


 


그녀는 공감에 기부를 하면서 “공감에 공익활동을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며 사적인 사건을 주로 하기는 하지만, 변호사로서 공익적 영역에서 정말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 혹은 그러한 사건을 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익적인 사건과 사적인 사건을 같이 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아요. 분리할 필요가 있지요.” 공익사건을 ‘혼자서’ 맡아 한다면 여러 모로 한계가 있으니, 공감처럼 여럿이 합동하여 공익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저 같은 경우에는 사적으로 저를 필요로 하는 분들과 소통하여 그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 사건이 잘 해결된 다음에는 그 분들이 또 사회 곳곳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하시면서 기여를 하게 되는, 그런 과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공감은 공익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 아니겠어요? 다만, 저 같은 변호사들이 못하는 부분을 공감에서 전문화하여 하는 것이니까, 그런 차원에서 힘을 보태드리면 서로가 말 그대로 ‘공감’할 수 있으니 참 좋겠지요. 그러니 공감은  ‘법조인들이 반드시 기부를 해줘야지 내(법조인 자신)가 공감할 수 있는 단체’입니다. 나 스스로가 할 수 없는 것을 누군가가 해줄 수 있고, 해야 하는, 그런 부분은 어느 직역에서나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그녀는 말했다. “한 명 한 명이 세상에 대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가장 좋은 것 아니겠느냐고. 그리고 덧붙였다. “저는 의뢰인들에게도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마시라’고 이야기 하거든요? 다만, 희망의 정도에 있어서 어떤 사람은 정말로 엄청난 역경이 닥치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 반면, 어떤 사람은 ‘만족하고 살 수 있을 듯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보지 못하는데, 이것은 사회 전반에 소통이 부족해서 나타난 결과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모두는 ‘행복’을 꿈꾸고, ‘행복한 삶’을 아름답다 말한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행복에 굶주린 것이 아니라 희망에 목말랐던 것인지도, 행복 이전에 “희망을 잃지 않는!”이 자리해야 마땅한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희망을 보듬어 안아주면서, 그 사람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사회”를 그려본다. 그렇게, 우리 함께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글_ 12기 인턴 김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