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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UN에서의 생초보 로비스트 활동기 – 소라미 변호사





 


ㅣ공변의 변






“UN에서의 생 초보 로비스트

(Lobbyist) 활동기”


 


소라미 _공감 변호사


 


# 7/26 목. “뉴욕 JFK 공항 도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지원을 받아 제39차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뉴욕회의에 한국 NGO 대표단으로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민변 일행으로 다시함께센터의 박숙란 변호사와 박재화 간사가, 그리고 여성단체 대표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김기선미 국장이 NGO대표단으로 함께 했다. 우리의 미션은 한국정부의 문제적인 여성‘차별’적인 정책과 미흡한 여성차별 ‘철폐’를 위한 정책에 대해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데에 있었다. 


 


13시간 비행 후 뉴욕의 JFK 공항에 도착했다. 뉴욕 날씨도 서울같이 무더웠다. 대서양의 영향때문인지 습기가 더한 점이 차이랄까. 작년에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 했던 미국 공익변호사단체 탐방에 이어 두 번째 뉴욕행이다. 첫 번째 방문 때보다 쉽게 눈과 손발이 주위 환경에 적응한다. 숙소는 UN쪽에서 추천해준 ‘Metro Home’이라는 곳으로 거실과 주방을 구비한 콘도식 호텔이었다. 걸어서 UN 회의장에 갈 수 있었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흠이라면 오래된 건물이어서인지 환기가 잘 되지 않았고 쾌쾌한 냄새가 떠나질 않았다는 점이다.  
 



# 7/27 금. “몸 풀기 로비- 케냐 정부 심의 참관”


 


숙소 부근에서 든든하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UN 통행 패스를 발급받기 위해 UN본부 맞은  편에 위치한 UN Security Office를 찾아갔다. 패스를 발급 받은 후에는 UN 회의장과 숙소 주변의 지리를 익히고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케냐 정부에 대한 오후 심의를 참관하였다. 케냐 정부를 심의하는 Chamber B위원들이 한국 정부 심의를 담당하기에 위원들의 질문을 통해 그들의 관심 이슈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후 이슈별로 로비해야할 위원을 선별하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또한 오는 월요일에 있을 한국 NGO 대표단의 점심 프리젠테이션에 위원들을 초대하는 것도 주요 미션이었다. 심의를 마친 위원들을 뒤쫒아 다니며 한국 NGO가 작성한 Shadow Report를 건네고 점심 브리핑 일정을 알렸다.  
  
저녁에는 신혜수 위원님께서 타이 레스토랑으로 일행을 초대하여 따뜻하게 맞이해주셨다. 타국에서의 오붓한 저녁 식사 분위기는 서로 간에 친밀감을 더해주었다. 신혜수 위원님께서는 격의 없이 재미나게 미국 유학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다. 공부와 가사를 병행하기가 너무 힘들어 파트너에 대한 원망만 쌓여 갈 당시, 자신 안의 욕심을 응시하게 되었고, 자신이 변하면서 편안해졌다는 이야기는 지금의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식사가 끝나갈 때 통역 도움을 주실 김춘이 선생님이 도착하였다. 환경운동연합에서 일반 간사로 업무를 시작하여 홀로 영어 공부를 독파한 후 국제연대 담당을 맡게 되었고 이후 10여년의 환경운동 활동 후 예일대 환경 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기까지의 그녀의 뚝심 있는 활동은 참 향기로웠다.  


 


 


# 7/28~29 토~일. “로비 트레이닝- 각 국의 NGO 대표단과 함께”


 


주말에는 International Women’s Rights Action Watch(IWRAW)에서 진행하는 멘토링(mentoring) 프로그램에 참가하였다. IWRAW는 현재 CEDAW위원으로 활동 중인 말레이시아의 샨티 위원이 설립한 NGO로 각 국의 NGO들이 여성차별철폐협약 회의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교육하는 NGO이다. 프로그램에는 다음 주 심의 예정 국가인 뉴질랜드, 요르단, 헝가리, 싱가포르, 쿡 아일랜드의 NGO 대표단이 함께 참석하였다. 교육 내용에는 UN회의장 구조, 회의일정 및 진행 방식, 통역기 및 마이크 사용 방법, 위원들의 관심 분야 및 성향, 진행 단계에 따른 로비 방식과 위원 활용 방법까지 세심하게 포괄되어 있었다. 최종적으로는 공식일정인 위원들과의 NGO세션에서 발언할 5분 스피치를 연습하고 서로 코멘트해주는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공식 일정 동안 해야 할 일을 보다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었고 각 국의 NGO와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토요일 저녁에는 김춘이 선생님의 소개로 “꽃들에게 희망을”의 저자인 트리나 폴러스님을 만났다. 환경주의자로, 평화주의자로, 여성주의자로 70평생을 살아왔다는 그녀는 정원에는 야생화를 집안에는 수 백 마리의 나비를 키우며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해 나비 애벌레와 누에고치를 챙겨 들고 나와 나비의 탄생 과정에 대해 열띠게 설명해주더니,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손수 재배한 유기농 체리를 권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투쟁하는 그녀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일요일 밤에는 다음날 예정인 점심 프리젠테이션과, 전체 NGO 세션에서의 oral statement를 위한 준비에 전념하였다. 점심 프리젠테이션 때 효과적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PPT 자료를 준비를 하였고, 한국 정부 심의시 위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추천 질문지 작성도 마무하였다. 밤 12시가 넘도록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밤은 깊어간다.


 


 


# 7/30 월, “본격 로비 개시- NGO 프리젠테이션과 구두 발표”


 


아침부터 숙소에는 오후에 있을 발표 일정으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가까운 페덱스 킨코스를 찾아가 최종 마무리된 자료를 출력하고 간단한 점심 다과를 준비하여 프리젠테이션 장소로 향했다.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위원들을 기다리자니 10여명이 넘는 위원이 참석하였다. 나중에 신혜수 위원님으로부터 들으니 10명이 넘는 위원이 점심 브리핑에 참석한 것은 대성공이라고 한다. IWRAW에서 멘토링을 담당했던 Debra 교수도 참관하며 눈빛으로 우리를 응원하였다.


 


발표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김기선미 국장이 담당하기로, 위원들의 질문에 대하여는 각 전문분야별 담당자가 답하기로 역할 분담하였다. 위원들에게 PPT자료와 추천질문지(Suggested Question)를 나누어주고 이랜드 사례를 중심으로 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자발성 여부를 기준으로 형사처벌을 결정하는 성매매 법제 문제, 성폭력에서 친고죄와 아내 강간의 문제, 국제결혼 중개 시스템의 문제와 지자체의 국제결혼 비용지원 사업의 문제, 군가산점 복귀 등의 백러쉬의 문제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프리젠테이션 후 위원들로부터 질문이 쏟아졌다. 국제결혼 브로커에 대한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왜 농어민 지역으로 결혼하려는 한국 여성이 없는 것인지, 또한 한국 여성들의 교육 수준은 높은 데 비하여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것은 어떠한 이유인지 위원들의 예리한 질문은 계속되었다. 쏟아지는 질문에 대하여 정확하게 답변하기 위해 애를 먹었으나 한편으로 브리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예감이 들었다.  


 


점심 일정 후 UN 로비의 까페테리아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4시부터 진행될 NGO 세션의 5분 스피치 발표 연습을 했다. 원래 영어에 능한 김기선미 국장 혼자서 발표하기로 하였으나, 한 사람이 발표하면 발언시간이 5분이지만 두 사람이 발표하면 7분을 준다는 말에 급조하여 내가 발표자로 추가되었다. 각 국의 NGO 대표들이 정해진 순서대로 시간 내 발표를 마치자 위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실전에 들어서니 떨리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큰 실수 없이 구두 발표를 마쳤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고 컨퍼런스 룸을 나서니 IWRAW의 멘토링 담당인 Debra 교수와 Jana가 NGO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다. 각 국의 NGO 대표단은 함께 모여 서로의 로비 활동과 정보를 공유하였다. Debra 교수는 앞으로의 로비에서는 지금까지 질문 나오지 않은 의제를 이슈화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하며, 쉬는 시간과 세션 시작 전후 시간에 위원들을 공략해야한다는 팁을 준다. 또한 다음날 있을 정부 심의 때 위원들의 질의와 이에 대한 정부의 답변을 모니터링한 후 최종 의견서를 작성해서 위원들에게 제출해야한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그동안의 긴장이 풀어진다. 그대로 각자 침대에 쓰러진 채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 7/31 화, “마무리 로비- 한국 정부 심의 모니터링” 


 


오늘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 한국 정부 심의가 진행되는 날이다. 오늘의 미션은 위원들이 우리의 추천 질문을 하도록 로비하기, 정부 답변을 모니터링하며 위원들에게  정부의 잘못된 답변을 정정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최종 권고안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부각시킨 최종 의견서를 작성하기이다. 오전 9시 30분부터 회의장으로 들어서는 위원들에게 로비하기 위해 회의장 주변을 배회하며 기다렸다. 특히 성폭력·성매매 문제에 관심 있는 가나 위원과 한국 정부 담당 특별 위원이 주 타겟이다. 우리는 두 조로 나누어 추천 질문지를 들고 해당 위원을 뒤쫒아가 한국 정부에게 꼭 질문해야할 내용을 최종적으로 로비하였다. 어떤 위원은 냉담하게 반응하기도 하나 대부분의 위원들은 우리의 접근을 기꺼이 받아준다.


 


한국 정부의 발표자는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이다. 정부 발표 후 위원들의 질의가 이어진다. 위원들의 질문 수준은 기대 이상으로 날카롭고 예리하다. 우리의 염원대로 한국의 이랜드, KTX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고 이를 중심으로 한 추가 질의답변이 뜨겁게 진행되었다. 또한 성매매, 성폭력, 국제결혼과 같은 주요 의제로 삼은 모든 사안이 이슈화되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흥분을 금치 못했다. 그 외에도 위원들은 난자채취의 문제, 여성의 정치 참여 문제, 교육과 건강의 문제 등 전 분야에 걸쳐 한국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적확한 질문을 날렸다. 이에 대한 정부의 답변은 마치 우리나라 청문회에 나선 정치가처럼 애매모호한 톤으로 일관되었다. 심의가 종료되자마자 정부의 잘못된 답변에 대한 코멘트를 직접 수기로 작성하여 위원들에게 전달하였다.


 


정부 심의 후 숙소로 돌아와 보도자료 작성을 위한 자료 정리, 위원들에게 제출할 최종 페이퍼 작성으로 다시 분주해졌다. 각자 맡은 자료를 정리하느라 오늘도 노트북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 8/1~2 뉴욕에서 한숨 돌리기


 


오전에 민변 팀은 Urbarn Justice Center의 Sex Worker Project 담당자와 미팅을 위해 이동했고, 김기선미 국장은 어제 작성한 최종 의견서를 마무리하여 심의 세션 전에 한국 심의 담당 위원들에게 전달하기로 하였다. 각자의 일정을 마치고 모여 오후에는 브로드웨이로 이동하여 20달러라는 환상적인 가격에 뮤지컬을 보며 그 간의 긴장과 피로를 씻어냈다. 뉴욕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이제 좀 여유가 생기는 듯하니 떠날 때가 되었다.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자정이니 그 전까지 여유가 좀 있다. 짐 정리하느라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자유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나는 어제 산 지도를 들고 혼자서 MOMA(The Museum of Modern Art)로 향했다. 나머지 일행은 허드슨 강변과 소호거리 산책을 즐겼다고 한다. 저녁 초대를 해주신 신혜수 위원님의 숙소에서 모여 위원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한식 만찬을 즐겼다. 오랜만에 집 밥을 만나니 다들 마음이 따스해졌다. 도착한 날과 떠나는 날을 모두 챙겨주신 신혜수 위원님의 배려가 마음으로 전해졌다.


 


 


# 에필로그


별 기대 없이 참여한 UN 회의였다. 그러나 그 기회를 통해 UN 기구와 협약에 대하여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어 돌아왔다. 비록 권고적인 효력밖에 갖지 못하는 한계는 있으나 UN 차원에서의 각 국가에 대한 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감시와 권고는 총체적 측면에서 일 국내 인권적 상황을 개선하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생 초보 로비스트 활동이 이번 한국 정부에 대한 UN 권고안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올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다. 그리고 UN 권고안을 이후 여성인권을 위한 법·제도 개선 활동을 해나가는 데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글_소라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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