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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미국, AIDS 이야기 – 김태선

 

ㅣ공감칼럼

미국, AIDS 이야기

김태선_변호사

 

안식년을 맞아 미국 듀크 대학에서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작년 가을, 이 대학에서 수강하던 “AIDS와 법” 이라는 과목의 종강시간이었다. 20여명의 학생들 중 7명의 학생들이 15분씩 발런티어로 나서 자신의 연구 주제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여 발제를 하게 되었다. “AIDS와 나” 라는 것이 그 중 한 학생의 발표 제목이었다.

20명의 동료 학생들과 교수 앞에서 그 미국인 학생은 2000년도 초에 AIDS에 감염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개인적인 심경, 힘든 치료과정, 죽음의 공포와 자살시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자신이 매일 먹어야 하는 커다란 약봉지를 다른 학생들에게 돌려가며 보여주고는 이제는 적어도 자기에게 10년 이상의 생이 남았다고 믿는다는 것, 그래서 죽음이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기로 하였다는 것 등을 밝게 이야기하였다.  

강의를 듣는 동안 한국의 상황이궁금하여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지만,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HIV양성인에 대한 차별과격리가 너무 심해서 자신이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는 도저히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고, 감염된 사실이 알려질 것이 두려워 모두들 자기의 근거지(가족, 직장, 지역)를 떠나 낯선 곳에서 불안정한 생활을 반복하다가 극도의 궁핍 속에서 질병, 그리고 외로움과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가깝게 앉아서 수업을 듣던 그 미국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그가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주는 것이 매우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커밍아웃은 상상하기 힘들지 않을까.

전혀 부러울 게 없다고 생각했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런 모습을 볼 때면 감동을 받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사실 AIDS와 관련된 미국의 상황은 우리가 배워야 할 “인권적인 것”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의료와 교육 같은 공공재조차 시장논리에 맡기는, 선진국에서는 보기 드문 시스템으로 인해, 매년 수 만 명의 감염 인구가 발생하지만 많은 수의 사람들이치료를 받지 못하여 질병의 정확한 통계조차 알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얘기되고 있다. 이 곳에서도 HIV양성인들은 제도와 싸우고 편견과 맞닥뜨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질병으로 인해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같은 처지로 이해되고 있고 따라서 장애인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 금지되는 것과 같이 이들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제도는 숱한 법정 소송을 포함한 오랜 싸움의 결과물이었다. 또 마지막 강의 시간에 그 학생이 그처럼 밝게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오랫동안 두려움과 편견과 싸워오면서 적어도 “그들”은 격리시켜야 하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공간과 시간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과 이웃, 친구일 수 있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싸움을 아직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것 같다.  

          
이 곳에는 이들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법률가 그룹이 많이 있다. 법률가들은 가족법, 형법, 노동법, 의료보장, 사회정책 등등의 많은 분야에서 이들을 위한 소송을 지원하고 정책을 개발해 내고 있다. HIV양성인들은 인구학적으로는 흑인 여성에, 사회 계층적으로는 빈곤층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의료수급권이나 사회보장수급권과 같이 생존과 직결되는 법률문제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또 근래의 법률적 지원은 비단 개별 소송에만 한정되지 않고 향후 닥칠 수 있는 죽음 이후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양육권, 재산권 등과 관련된 결정을 도와주는 일도 포함한다.

한국에서 HIV 양성인들에 대한 법률지원을 시작한 최초의 법률가 그룹은 공감이 아닌가 싶다. 공감의 사업이 앞으로 많은 공감을 낳아갔으면 한다. 또 위와 같이 필요한 법률지원의 영역이 앞으로 더욱 넓어질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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