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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감칼럼# 코로나

‘위드 코로나’가 불평등한 ‘일상의 회복’이 아니기를

코로나19 감염병 시대에 접어든지 1년 반이 훌쩍 지났습니다. 다들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요? 갑갑하지만, 또 사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작년 봄, 가정보육하라는 권고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못 보내고 돌볼 방법을 이리저리 찾아야 했을 땐 저도 아이도 힘들었습니다. 한 달을 그렇게 보낸 후 아이는 어린이집, 올해는 유치원을 매일 다닙니다. 마스크를 늘 쓰고 있어야 하고 활동에도 제한이 있지만, 그 와중에 아이는 친구도 사귀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익혀 나가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주위 어른들도 무탈하십니다. 일과 관련해서는 강의, 회의 같은 것들을 계획대로 할 수 없을까 걱정이었지만, 이내 줌(ZOOM)에 익숙해졌습니다. 일하면서 감염에 대한 걱정은 거의 없었습니다. 일터랑 집이 가깝고 대면접촉 별로 없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덕분이지요. 백신도 며칠 후면 2차까지 접종을 완료하게 됩니다. 수입에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소위 ‘정규직’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약도 큰 무리 없이 갱신해서 최소 2년간은 살 집 걱정도 없습니다. 마스크 써야 하고 많은 사람들 못 만나고 외국에 가는 것이 선택지에서 제외된 것, 주말에 카페에 앉아 잠시 혼자 책 읽는 즐거움을 카페 영업 중단으로 한동안 누릴 수 없었던 걸 빼고는 생활에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누리는 이 정도의 자유와 안전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누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지난 5월 한국은행 발표를 보면, 가구소득 불평등이 확대되어 소득분배 지표인 지니계수도 분석기간인 2, 3, 4분기 모두 2019년보다 2020년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저소득층의 소득이 중·고소득층에 비해 훨씬 많이 줄었습니다. 작년 2-4분기 소득분위별 가구소득 감소율이 전년 대비 소득 상위층부터 1.5%, 2.7%, 3.3%, 5.6%, 17.1%로 나타난 것입니다. 대면접촉이 많은 일자리에 종사하는 저소득가구 중 특히, 고용상태가 불안한 임시·일용직 가구, 여성이 생계를 책임지는 유자녀 가구, 자영업 가구에서 실직이나 소득감소로 인한 충격에 취약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그나마 이 수치들은 코로나19가 소득에 미친 영향을 과소평가한 것일 수 있습니다. 전국 2인 이상 비농림어업가구만을 조사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소득격차 폭이 더 커지고 새로운 불평등이 양산되는 모습은 코로나 시대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작년 한 해 1억 여 명의 사람들이 추가로 극빈 상황에 놓이게 되어 2017년 수준으로 후퇴하게 되었고, 올해도 극빈층 규모가 계속 늘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싱크탱크 정책연구소(IPS)는 올해 3월 기준 코로나 시대 1년 동안 전 세계 억만장자 2천 여 명의 재산은 50% 넘게 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정책적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각 사회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얼마 전 주간경향에 실린 ‘세 도시 사장님 이야기’는 그것을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미국 애틀랜타, 캐나다 토론토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휴업보상, 손실보상, 고용유지지원금 등으로 1인당 1억-2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은 반면, 인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 충남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받은 지원금은 각각 1400만원, 600만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잘 통제해서 지원의 필요성이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경제부총리도 한국은 코로나19 충격이 크지 않아 재정을 더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고 하구요. 그럼, 생계가 어려워지고 폐업도 힘들어 급기야 목숨을 끊는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그냥 불운한 것일까요? 소위 ‘방역의 성공’은 시민들의 협조와 고통 감수 덕분 아니었나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위드 코로나’, ‘일상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것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고통뿐 아니라 감염의 위험까지 이제 개개인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의 다른 말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기후위기로 인해 재난이 훨씬 더 빈번히 찾아올 거라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보건뿐 아니라 고용, 교육, 돌봄, 사회보장 시스템을 더 강화하고 형평성을 높여, 개개인들이 위험을 알아서 감당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랍니다. 손실과 피해가 큰 취약계층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고, 전통적인 ‘근로자’가 아닌 사람들도 사회적 위험 상황에서 적절한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소득과 자산 파악을 위한 시스템이 이번에는 갖춰지기를 바랍니다. 제가 누리는 자유와 안전이 일부에게만 허락된 특권이 아니라 모두가 같이 누릴 수 있는 인권이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 위기의 끝이 ‘코로나와 함께 하는’ 더 불평등해진 ‘일상의 회복’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며 존엄과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길의 시작이기를 바랍니다. 모두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이주영 /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연구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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