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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권# 장애인차별# 탈시설

‘가족’의 조건은 없다

핸드폰을 새로 구입하면서 직원과 요금을 저렴하게 사용하기 위한 상담을 하는데 ‘가족이 있으시죠? 가족으로 묶으시면 훨씬 싸게 쓰실 수 있으세요’한다. ‘가족 없어요.’ 하자 ‘형제분 안계세요? 거주와 상관없이 형제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내시면 되는데’ 갑자기 ‘가족’이라는 말이 생소하고 형제라는 것도 증명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핸드폰 하나 저렴하게 사용하는 것에서도 가족으로 해택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순간 떠오른다. 현재 내가 거주하는 집은 임대아파트이고 2년에 한번 재계약을 할 때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내게 가족 상황 변동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고, 가족의 변동에 따라 소득정도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란다. 가족관계의 변동 중 내가 선택한 어떤 사람과 한 집에서 내 가족 이라고 나 스스로 인정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별이 다른 사람하고만 혼인관계로 서류에 등록되어 있어야 가족으로 인정 된다. 그리고 또 인정 대상은 직계 혈연관계로 한정 된다. 이유는 임대입주를 한 상태에서 가족 아닌 사람과 거주할 경우 혹여 가족 아닌 사람을 임대자로 들일 수 있는 것을 감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매번 재계약 때마다 가족관계증명서로 나의 사생활이 드러난다.

몇 년 전, 몸이 아파 응급실에 갔는데 병원에서 가족동행을 요구 했다. 먼 곳에 살고 있는 동생이 올 때까지 치료가 늦어지기도 했다. 동생이 와 봤자 함께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최근 나의 몸 상태는 잘 모른다. 오히려 나의 일상을 가까이 지원하는 활동지원사가 나의 몸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다. 병원에서는 나의 몸 상태에 대한 의견을 활동지원사에게 듣지만, 온전히 나의 몸의 대한 결정은 활동지원사보다, 나의 몸 상태를 모르는 혈연관계 동생에게 있었다.

1997년 어느 날, 나를 포함한 지체장애여성 셋이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주민센터에 가서 사회복지사에게 상담을 했다. 각자 다른 성을 가진 장애여성이 함께 서로를 지원하며 살려고 하는데, 임대아파트나 사회복지제도로 지원 가능한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마음 좋아 보이는 사회복지 공무원은 이것저것 여러 제도안내 팜플렛을 주-욱 펴놓고 살펴보면서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지원받을 것이 없었다. 우리의 시급한 문제는 주거였고, 월세가 부담스러우니 임대아파트를 우리가 함께 입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물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라서 가족으로 인정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성씨가 가족으로 인정받는 것은 성별이 다른 사람이 즉 여성 남성이 혼인관계여야 했다. 결국 그가 말했다. ‘장애남성과 결혼 하세요. 그러면 장애인 부부이니까 임대아파트 우선순위가 될 겁니다.’ 임대아파트 때문에 결혼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가족은 서로의 삶에 억압적이지 않으며 서로에게 지원과 지지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가 원한다면 자유롭게 선택적으로 의존과 돌봄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성이 존중될 수 있어야 한다. 이 독립성은 사회적 제도가 기반 되어야 하고,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이 가능한 상황과 상태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혈연가족이 모두 이렇지 않다. 무엇보다 가족구성을 할 수 있는 사람부터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적인 조건을 가진 사람이어야 인정받고 축복 받는 가족을 이룰 수 있다.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규정 된 사람 장애인, 미성년, 성소수자 등은 가족을 구성할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최근 여성가족부에서 ‘건강가족기본법’을 개정 한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과연 가능할까. 이 법을 들을 때마다 항상 ‘건강가족’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불편했다. 건강하지 않은 몸을 가진 사람은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없다는 것으로 들린다. 건강한 생명을 재생산 할 수 없을 것 같은 장애여성은 사전에 불임수술을 당해야 했다. 정상가족구성원의 그림은 건강한 아버지 엄마와 아들 1명 딸 1명의 4인 가족이 이상형 이다. 이와 같은 그림속의 가족만이 건강한 가족으로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건강한 가족 이미지에 장애인이 한 명만 있어도 비정상 가족이 된다. 그래서 건강가족이라는 용어부터 바꿔야한다고 계속 요구해 왔다. 과연 지금 우리가 이 용어부터 바꿀 수 있을까.

우리는 다양한 가족을 상상 해 본다. 엄마 또는 아버지가 중증장애인일 수도 있고, 아들이 딸이 장애인일 수도 있고, 엄마 또는 아버지가 혼자 자녀들을 키울 수도 있고, 엄마가 둘일 수도 있고, 또는 아빠가 둘일 수도 있고, 자녀가 없을 수도 있고, 장애인이 셋이서 살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상상은 나이와 혈연 상관없이, 서로 지지를 하고, 마음으로 의지하며 그들이 가족으로 살겠다고 선택하고 결정하면 되는 것 아닐까.
과연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의 다양한 상상력을 막는 두려움은 무엇일까. 사람이 누구와 어떻게 어디서 살 것인가는 그들의 선택이 되고 그것이 존중받고 인정하는 것에 어떤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앞으로 장애인운동의 화두는 탈시설이다. 시설 안에서 참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싫은 사람과 한 방에서 사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좋아하는 친구와 한 방에서 못 살게 하는 것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살고 싶은 사람과 살아야 한다. 이것은 당연한 권리다. 누구도 이것을 막을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지금까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설에 살아야 하는 장애인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 또는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지 못하고 권리를 침해당하며 살아왔다.
시설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장애인 정씨와 오씨는 같은 시설에서 살 때 심리적으로 또는 일상적으로 서로지지 하며 관계를 가져왔고 탈시설을 하여 가족처럼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혈연관계가 아니고 같이 살면 자립생활이 아니라고 하여 같이 살 수 없어서 마음이 불편하다.

어떤 장애가 있는 것과 관계없이, 어떤 이유가 있는 것과 상관없이 누구와 어떻게 가족으로 얼마동안 살 것인가는 온전히 본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으로 사회가 인정하고 사회보장제도로서 지원되는 것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우리부터 다양한 가족을 상상해보자.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글_박김영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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