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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초짜 공변일기 – 차혜령 변호사

‘초짜’ 공변 일기

초짜(初―) [명사] 어떤 분야에서, 처음으로 하여 능숙하지 못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출처 : 민중국어사전)
공변(共辯) [명사]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의 줄임말. 2004년 무렵부터 대한민국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일군의 사람들에 의하여 쓰이고 있음. (출처 : 내맘대로 백과사전)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채용면접에서 한 면접위원께서 공감에서의 근무를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오는 것’에 비유하셨다. 스스로도 공감 취직은 단순히 직장을 옮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면접에서 ‘다른’ 공간임을 짚어주시니 의미심장했다. 무엇이 다른가. 공감은 변호사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합동법률사무소나 법무법인과는 조직과 구성, 운영방식이 다르다. 공감의 활동은 변호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영역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 방식은 ‘전통적인’ 변호사들이 하는 것처럼 소송이나 법률의견을 주는 것 외에도 다양하다.

햇수로는 4년차 변호사, 하지만 공감의 변호사로는 이제 막 1년차. ‘초짜’ 공변은 신입사원의 긴장감과 설렘을 안고 공감으로 출근한다. 공감으로 가는 길은 즐겁다. 말 그대로의 ‘길’이 즐겁다. 20평 남짓한 사무실이지만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가회동은 가깝게는 삼청동, 재동, 원서동, 북촌한옥마을, 조금 멀게는 청와대와 경복궁, 창덕궁을 옆에 두고 있어서 출근길이 곧 소풍길이다.   

나타샤들을 만나다

첫 법률교육. 공감은 연중 상시적으로 ‘희망변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그 프로젝트 중 ‘찾아가는 법률교육’이 있다. 단체들의 신청을 받아서 직접 단체로 찾아가서 장애인, 이주노동자, 여성, 주민자치, 아동, 성소수자 등 영역별 전문교육을 한다. 내가 맡은 첫 교육은 서울 상계동에 있는 북부종합사회복지관이 신청한 것. 주제는 국제결혼 이주여성 기초 법률교육으로, 국적과 체류, 이혼,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각종 폭력 문제를 다루었다.

복지관 3층의 강의실에는 필리핀, 베트남, 중국, 일본, 러시아, 캄보디아 등 각국에서 한국으로 결혼이주한 여성들 20여 명이 모였다. 젖먹이를 데리고 와서 강의실 한편에서 아이에게 수유를 하면서 강의를 듣는 사람, 한국어가 서투른 옆자리 친구에게 속닥속닥 강의를 통역해 주며 듣는 사람, 강의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듣는 사람, 무슨 소린지 잘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이 확연히 드러나는 사람. 수강생들은 출신국 만큼이나 각양각색의 모습이다. 

이주여성들은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하므로 나는 말하는 속도는 늦추고 목소리를 키우고 사이사이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설명을 하고, 그리고 속으로는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먼 이국의 복지관 강의실에서 두 눈을 반짝이며 저리 열심히 강의를 듣게 된 사람들의 사연들을 궁금해한다.  강의가 끝나자 강의 중 질문과 답변으로는 모자랐던지 한 여성이 내 앞으로 와서 상담을 청한다. 이름은 나타샤, F-2 체류자격으로 있는데 대한민국 국적을 신청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단다.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 더 확인할 것들을 알려준다. 오늘로 내게 나타샤는, 더 이상 시인 백석의 ‘나타샤’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온, 갓 두 돌이 넘은 사내아이의 엄마이며, 한국 남성의 아내이며, 서울 상계동에 살고 있는 나타샤이다.

과거와의 조우

공감이 활동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인권사회단체들의 신청을 받아서 단체사업의 법률지원을 하거나 법률교육을 하거나 공익소송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공감이 적극적으로 다른 단체들과 결합하여 활동하기도 한다. 공감의 다른 변호사님이 참여하고 있는 주거권 소책자 발간모임에 함께 하기로 하고 인권운동사랑방으로 향했다. 모임은 주거권운동네트워크, 인권운동사랑방, 한국도시연구소, 공감이 참여하고 있는데, 주택재개발사업 등 각종 개발사업이 시행되는 지역의 활동가들을 위하여 개발절차를 소개하고 세입자 등 거주자에 대한 보상과 이주대책,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소책자 발간을 계획하고 있다.  공감은 소책자 내용 중 개발사업 추진절차에 대한 법률 해설, 강제퇴거에 관한 부분의 집필을 맡게 되었다.

1993년 대학시절, 서울 신정동 철거촌에서 빈민활동으로 며칠, 서초동 꽃마을 공부방에서 한 해를 보내며 품었던 충격과 의문들,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강제철거 소식을 들었을 때의 무력감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2005년 로펌 1년차 시절, 건설사건을 하면서 재건축·재개발·도시개발사업에 대한 법률자문을 하기 위해 각종 법률들과 씨름했던 시간들이 거의 동시에 떠오른다. 서로 백만 광년은 떨어져 있을 법한 두 경험들이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2008년의 나는, 1993년의 나와 2005년의 나를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그 때의 의문과 무력감을 이제는 조금씩이라도 풀어갈 수 있을까.

‘맞을 짓’은 없다

공감의 다른 변호사님께서 경찰수사연수원으로부터 의뢰받아 진행하던 성폭력수사 전문과정 교육을 분담하기로 하고 1강좌를 맡아서 3시간의 강의를 진행하다. 당사자나 활동가들이 아니라 수사 일선에 있는 사법경찰관들을 상대로 하는 교육이어서 긴장이 된다. 전국에서 올라온 40명의 수사관들. 수사경력도 1개월부터 16년까지 다양하다.

모 지역에서 올라오신 여성 성폭력전담 수사관에게 성폭력 수사시 고충을 여쭈었더니, 데이트 강간의 사례를 말씀하시며 본인은 범죄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데 범죄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여성을 보면 곤혹스럽단다. 곧바로 토론이 붙고 어느 한 경찰관이 볼멘 소리로 ‘여자가 맞을 짓을 했구만.’이라고 내뱉는다. 이 주제로 토론을 하게 되면 어느 곳에서나 만나게 되는 피해자 책임론을 여기서도 듣게 된다. 무뎌진 것일까, 너그러워진 것일까. 나는 예전과 달리 ‘그런’ 말을 들어도 흥분하지 않는다. 다만, 그 말을 놓치지 않고 부드러운 어조로 피해자책임론을 반박하고 수사실무에서 그러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할 뿐. 
 
활동가들과의 만남

예전의 변호사생활과 가장 다른 점을 꼽으라면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그 중에서도 인권사회단체 활동가들과의 만남으로부터 많은 것을 듣고 배우고 느낀다. 주거권 소책자 발간모임에서는 내가 학창시절 잠깐 생각하고 묻어두었던 의문과 고민을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 년 가까이 꾸준히 붙들고 있는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을 보면서 절로 존경심이 생겼다. 또 공감의 다른 변호사님이 소개해 준 장애인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 이주여성 지원 전국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회의에서 만난 이주여성지원단체 활동가들, 성매매집결지 관련 토론회에서 만난 전국 각지의 성매매피해여성 지원 활동가들이 전해주는 현장의 이야기들은 생생하고 힘이 있었다. 활동가들에게 변호사는 어떤 의미일까. 나는 활동가들과 무엇을 같이 할 수 있을까. 또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 내가 만들고 내가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다.   
 
진정한 공변으로 거듭나기

이제 두 달, 할 일도 슬슬 많아지고 그만큼 밀린 일들도 생기기 시작한다. 열흘 전, 가회동 사무실에서 5분 거리의 원서동 사무실로 이사한 후 내 책상과 컴퓨터도 생겼으니 이제 분위기 파악과 초기 적응 모드는 끝. 더욱 제대로 일해 보자. 공변일기는 계속될 것이다, ‘초짜’ 공변이 진정한 공변으로 거듭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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