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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현대판 씨받이…베트남 여성은 속수무책 – 소라미 변호사

[공변의 변] 

현대판 ‘씨받이’ … 베트남 여성은 속수무책

소라미 공감 변호사 

오늘 재판에 다녀오며 나는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익숙지 않은 소수자·사회적 약자의 인권 문제를 법적인 절차를 통해 구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절감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20년째 불임인 한국인 부부가 불임을 이유로 이혼하고, 한 달 후 한국인 남성은 브로커의 알선으로 베트남에 가서 19살 베트남 여성과 재혼을 했다. 3개월 후 한국에 입국한 베트남 여성은 곧 첫아이를 임신했다. 첫아이는 출생하자마자 전 부인에게 보내져 양육되었다. 첫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던 베트남 여성은 눈물로 날을 지새우던 중 둘째 아이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혼인생활을 유지하였다. 둘째 아이도 태어나자마자 전 부인에게 인도되어 양육되었다.
  
  둘째를 출산한 지 일주일 후 한국인 남편의 회유(“사랑한다, 너를 버리지 않겠다, 베트남에 돌아가 있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곧 따라 가겠다”)와 강요(“전 부인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무일푼으로 전락해 가정을 돌볼 수 없게 된다”)로 베트남 여성은 협의이혼을 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인 남성은 보름도 채 안 되어 전 부인과 재결합해 두 아이의 친부모인 냥 가족생활을 해왔다.
  
  베트남 여성은 재생산 기능을 탈법적으로 유용당함으로써 인격권 및 신체불훼손권을 심각하게 훼손당하였으며, 아이들에 대한 친권 행사 기회를 박탈당함으로써 회복 불가능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현행 법·제도 상 전 남편과 그 부인을 처벌할 수 있는 형사법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선책으로 이 사건의 본질을 현대판 ‘씨받이”사건으로 규정하고 한국인 부부를 상대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하였고, 아이들에 대한 친권 행사자를 베트남 여성으로 지정해달라는 가사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한 상대방 주장은 한국에 입국한 지 3일째 되는 날 베트남 여성에게 아이를 낳아주고 이혼해주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이에 여성도 동의했다는 것이다. 당시 의사소통은 한·베 사전을 펼쳐두고 단어를 짚어가며 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은 여성에게 약속한 소정의 금전을 모두 지급했기 때문에 어떠한 잘못도 없다는 주장이다.
  

▲ ©전국이주여성네트워크

  상대방 주장대로 대리모 약정 제안이 있었다고 치자. 과연 그와 같은 합의가 유효하게 성립될 수 있을까ς 한국에 입국한 지 3일된 베트남 여성, 한국말 할 줄도 모르고, 한글도 읽을 줄 모른다. 그런 베트남 여성이 자신의 자궁을 빌려주고, 자신의 아이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는 위험천만한 제안에 동의를 하는데 있어, 어떠한 법적·의학적 조언은커녕, 제대로 된 통역조차 제공받지 못했다. 조약한 한·베 사전이 대리모 약정 성립에 동원된 소통 방법의 전부였다.
  
  또한 상대방이 소위 ‘대리모’ 약정 제안을 했다는 시점은 결혼 성립 이전이 아니라 결혼이 이미 성립하고 한국으로 이주해온 후이다. 즉 베트남 여성이 단란한 가족을 이루고 경제적·문화적으로 보다 낳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꿈꾸며 가족과 친지를 떠나 멀리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단행한 후인 것이다.
  
  베트남 사회는 여전히 유교적인 가족문화가 지배적인 사회로 베트남 여성에게 있어 이혼이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불명예스러운 일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이다. 아무리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아도 혼인 성립 ‘후’ 한국으로 이주한지 ‘3일째’ 되는 날 ‘대리모’약정이 성립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백배 양보해서 상대방 주장대로 당사자 간에 대리모 합의가 존재한다고 치자. 그와 같은 합의가 존재한다고 불법행위가 법적으로 용인될 수 있을까ς 그렇지 않다. 여성의 자궁을 도구화하고 아이를 상품화하는 대리모 약정 자체가 우리 사회 미풍양속과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정에 나서는 한국인 남성은 너무나도 떳떳하고 지나치게 당당하다. 나는 그 당당한 자신감에 깃들어 있는 여성 폭력에 대한 윤리적 둔감함, 저개발 국가에서 온 이주여성에 대한 경제적·인종적 우월감, 돈이면 자궁도 아이도 살 수 있다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인식이 소름끼치도록 무섭다.
  
  선례 없을 현대판 씨받이 사건을 다루는 법원의 태도에서도 우리 사회 인식의 미천함은 그대로 드러난다. 법원은 자녀의 복리를 이유로 들며 사안의 불법행위성을 적극적으로 판단하기를 주저한다. 친부의 불법행위를 판결로 인정하면 이것이 평생 낙인으로 남게 되어 이후 아이들에게뿐만 아니라 아이를 두고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할 소송 당사자들 간의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또한 양육권자 변경 청구에 있어서도 아이들이 현재 부모를 친부모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변경 시 야기될 아이들의 혼란을 우려해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두고 봐야 하겠지만, 현재까지의 법원의 입장이 관철된다면 베트남 여성은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며, 불법행위 주장 또한 조정이나 합의로 무마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결국 이와 같은 법원의 소극적 개입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에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 불감증과 경제적·인종적 우월감은 더욱 조장·확산될 것이며 제2, 제3의 씨받이 피해 여성이 나타날 개연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 ©전국이주여성네트워크

  2007년 7월에는 19세의 결혼이주여성이 갈비뼈 18개가 부러진 채 사채로 발견되어 우리 사회와 베트남 사회를 들끓게 한 바 있다. 결혼중개업체 소개로 한국인 남성과 국제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입국한 이주여성을 기다린 것은 지하 월세방에서의 감금과 다름없는 생활이었다. 한 달 후 견디다 못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이주여성에게 되돌아온 것은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이었다.
  
  범인으로 검거된 남편은 수사과정에서 “돈 들여 아내를 데려왔는데 자꾸 돌아간다고 해 홧김에 때렸다.”라고 진술했다. 현재 맡아 진행하는 소송 중에 결혼 상대방인 한국인 남성이 정신지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국제결혼중개업자로부터 사전에 고지 받지 못해 결국 1개월 만에 결혼관계가 파탄 난 필리핀 여성의 피해를 구제하려고 결혼중개업체를 상대로 진행 중인 손해배상청구 사건도 있다.
  
  위와 같은 사례는 국제결혼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가 집적되어 표출된 사안으로, 왜곡된 방식으로 국제결혼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국제결혼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조장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던져진 인권의 절규이다.
  
  이주 과정에서 여성은 사회·경제적 약자라는, 여성이라는, 외국인이라는 삼중의 취약한 지위에 처해있다. 이 때문에 이주여성들은 더욱더 폭력에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재생산 도구로 유용되거나, 가정폭력으로 사망·자살하거나, 인신매매적·사기성 국제결혼 브로커의 피해에 노출되어 있는 이주여성을 위한 한국 사회의 대책은 전무하다.
  
  우리 정부는 위와 같은 사례를 ‘일부’ 피해 사례일 뿐이라고 치부하며 그에 대한 적극적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 않다. 최근 제정된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에 국제결혼 중개에 있어 가장 핵심 사항인 상대방 배우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을 사전에 규제할 수 있는 규정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인신매매적 국제결혼 중개행위에 대한 규제 및 피해 여성에 대한 적극적 보호조치 또한 배제되어 있다.
  
  오히려 법무부는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법적 신분으로 인하여 폭력피해에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는 결혼 이주여성에게 국적취득을 위해서는 200여 시간의 사회통합교육을 반드시 이수해야한다는 의무를 추가적으로 부가함으로써 결혼이주여성의 지위를 더욱 불안정하고 종속적으로 만들려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정부에 대한 최종 권고문을 통해 한국 내 인신매매적인 국제결혼 증가와 국제결혼 가정 내 만연한 가정폭력의 문제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며 그에 대한 대책으로 결혼중개업자와 배우자의 학대로부터 이주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과 조치를 마련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동시기에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또한 한국정부에게 동일한 취지의 우려와 권고를 제기하였다.
  
  한국의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인권문제는 더는 일국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눈과 귀가 집중된 국제화된 이슈이다. 한국 사회는 국제결혼의 성립과 정착의 전 진행과정을 국제 사회의 인권의 기준에 맞도록 법·제도를 정비해나감으로써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국가·인신매매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프레시안 5월 22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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