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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위 칼럼] 영화 ‘도가니’가 보낸 또 하나의 메시지 – 수화언어의 세계


 

“수화도 못하는 선생에게 배운 우리의 청춘을 보상하라”
 

영화 도가니를 본 사람들은 안다. 장애아동에 대한 성폭력, 폭력의 참혹한 과정과 이 사건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개입되어 있는 사법, 행정기관들의 유착과 관행들. 그런데 오늘은 영화 ‘도가니’가 보낸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영화에서 깊게 다루진 않았지만, 아주아주 중요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인화학교, 인화원의 사건이 터져 나온 2005년, 그리고 이어지는 투쟁과 농성들. 급기야 2006년도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사가 결정되어 거주장애인들 전원을 근처의 모 리조트로 옮겨 2박 3일 동안 상담과 치료적 성격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조사활동에 함께 참여한 나는 수업을 참관하면서 참 놀라운 경험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수업이었는데, 선생님은 수화를 하지 못했고 아이들은 선생님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기들끼리 수화로 이야기할 뿐. 선생님은 듣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계속 말하고 있었다. 가끔 수학기호와 계산식을 칠판에 써가며…… 뭐 하는 걸까? 마치 코믹프로그램에서나 있을법한 상황,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한명은 교사이고 다른 이들은 학생이었다.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조사원들에게 말했다. “어머, 참관을 오전에 오신다고 해서 오전 수업은 수화를 좀 연습해 놨는데, 오후에 들어오시는 바람에…”
 
 

그렇다. 인화학교 교사들은 수화를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교사로 일했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아이들과 청소녀(년)들은 ‘피해 사실을 말할 곳을 찾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찾지 못했다.

 

2011년 영화가 다시 이 사건을 강렬하게 끄집어냈다. 인화학교 졸업생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다시 광주시청 앞에서 터미널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전(前) 인화학교 총동문회 회장이 수화로 발언을 했다. “학교 다니면서 선생들은 수화도 못했고, 그래서 나는 글을 못 배웠다. 내가 인화학교를 졸업했으니 당연히 한글 정도는 아는 줄 알지만, 나는 창피해서 나 스스로 글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예전에 직장에 다닐 때 해고된 적이 있다.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나를 자르냐고 했더니 사장이 계약서를 보여줬다. 그곳에 사인하지 않았냐고 했다. 나는 계약서 내용을 읽을 줄 몰랐지만, 그냥 사인을 했다. 학교 졸업했는데 한글도 모른다고 하면 취업이 안 될까봐 그냥 사인한건데, 사장은 사인했으니 암말 말고 나가라고 했다. 인화학교 졸업한 것이 내 평생 이렇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집에 무슨 전자제품이라도 사면, 사용설명서를 읽을 수 없다.” 동문회장이 수화로 열심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쪽 옆으로 피켓이 보였다. “수화도 못하는 선생에게 배운 우리의 청춘을 보상하라.”

 

“농학교 교사중 수화통역자격증 소지자는 단지 8%”
  

현재 농학교의 교사 중 단지 8%만이 수화통역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화통역자격증은 없지만, 수화는 할 줄 알기 때문에 교육에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수화에 대한 검증절차가 없이 ‘그냥 할 줄 안다’고 우기는 것은 교육의 장에서 말 꺼내기 부끄럽지 않은가? 이에 대해 장애인정보문화누리 등 단체들이 모여 <수화언어권리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수화공대위’)>를 구성하고 현재 교과부에 수화통역교사 100% 채용, 수화를 언어로 인정하고 일반학교 제2외국어 등으로 채택하는 등의 요구안을 전달했다. 교과부는 이에 대해 농학교의 경우 향후 3년 내에 100% 채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농학교에 통역교사만 배치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청각장애인이라고 특수학교(농학교)에만 다니지 않는다. 통합학급에 다니는 청각장애인 학생의 경우는 보조교사자격으로 통역사가 배치되면 다행, 대부분의 경우는 배치조차 안 되고 있다. 보조교사자격으로 배치되었을 때는 열악한 처우로 인해 수화통역사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데다, 혹여 배치된다 해도 1명의 TO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통역해야 하는 중노동이 되는 셈이다. 대전의 모 초등학교의 경우, 청각장애학생에 대해 수화통역사 2인 배치를 대전교육청에 요구하였으나 이를 수용하지 않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또한, 대학 등 고등교육현장에서도 수화나 문자통역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고 학교 측의 소극적인 태도로 학생 스스로 알아서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장애학생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전형제도는 두었지만, 학교에 가보니 통역도 안 해주니 어떻게 배우란 말인가?

 

 

[사진출처 : 장애인인터넷언론 비마이너] 

  
“세종대왕님, 언어로써 수화(手話) 인증을 청하옵니다“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대왕인 훈민정음 창제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漢)문화의 사대주위에 빠져있는 주류문화에서 우리의 혀와 소리를 닮은 한글을 창제하고 백성들도 쉽게 글을 배우도록 하게 한다.

 

“글자를 알면 백성도 힘이 생긴다. 밥이 나오지 않지만, 밥이 더 많이 나는 법을 알 것이고  양반이 되지는 않지만, 양반들에게 그렇게 힘없이 당하진 않는다.”

드라마 속 대사일 뿐이지만, 왜 힘없는 자들이 글을 알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청각장애인의 경우 두 가지를 고려해 볼 수 있겠는데, 첫째는 청각장애인의 교육환경이 시급히 개선되어 학교에 다녀도 글을 모를 수밖에 없는 황당한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수화를 사용해야만 하는 이들을 고려한 이중언어문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청각장애인에게만 건청인(비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방식을 따르라는 일방적 소통 방식이 아니라수화를 인정하고 건청인도 수화를 배우게끔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언어는 쌍방의 소통이 중요하지 않을까?그래서  수화공대위는 6월 14일,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출범식을 갖는다. “세종대왕님, 수화를 언어로 인증해 주십시오.”
 
 

글_ 김정하 활동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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