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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이 권하는 책] 검사님의 속사정, 대한민국 검찰은 왜 이상한 기소를 일삼는가

“검찰이 밉지, 검사가 미운 건 아냐”

어쩌다가 검사들을 만날 때면 이런 말을 종종 한다. 그러면 으레 “그렇다니깐,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우리 일선 검사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어”라는 대답이 뒤따른다.

 

빈말로 내뱉은 게 아니고 대답 역시 틀린 말이 아니다. 법대 선,후배 동기들 중 상당수가 검사가 되었다. 그들 중 몇몇은 대학 시절에도 권력지향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판사나 대형 로펌 변호사를 선망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서 검찰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 학생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검찰을 선택한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정의를 지키겠다는 그 선의에는 거짓이 없었다. 어쨌든 대부분은 특별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사법연수원에서 만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법연수원 지도교수도 검사였는데 그분은 사제지간의 인연으로 만난 사람 중 가장 존경스러운 분이셨다. 검찰실무수습을 통해 짧은 기간이나마 직접 검찰 조직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밤 늦게까지 일하는 검사들을 보며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간적인 관계에서 만난 그들의 면면을 보면 도무지 그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광우병 파동에 맞서 촛불시위를 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기소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상황은 업무에서도 이어진다. 노동자가 파업하는 경우 검찰은 사건을 공안부에 배당하고 파업 노동자를 업무방해로 기소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검찰은 기를 쓰고 덤벼든다. 그러나 같은 노동 사건이라도 사용자가 피고인이 될 때에는 상황이 뒤바뀐다. 체불임금에 대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소,고발을 하면 사건은 일반 형사부에 배당된다. 수사는 분명 검찰과 경찰의 몫일 텐데 담당 검사는 고소,고발인에게 증거를 찾아오라고 요구하는 대범함까지 보인다. 검사와 검찰은 정말 다른 것일까. 사회적으로 비난 받는 행태는 그렇다면 누가 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동일체 원칙’에 의해 전국 검찰은 한 몸이니 ‘난 아니야’라는 변명이 통할 여지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의문에 시원하게 답을 해주는 책이 한 권 있다. 검찰을 바라보며 가졌던 모든 의문이 이 책을 읽으면서 술술 풀렸다. 바로 ‘검사님의 속사정’이다. 작가 이순혁은 한겨레신문 기자다. 지금은 국방부와 감사원을 담당하고 있지만 한때 법조 출입 기자로 활동하며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저자 소개에는 “술 좋아하는 성격 탓에 취재해 쓰는 기사보다 듣고 흘리는 기삿거리가 더 많다”고 적혀 있는데 작가의 말처럼 결국 그렇게 듣고 흘린 이야기가 이 책의 힘이 되었다. 작가는 “검찰을 생각하면 옹호 또는 비난 둘 중의 하나의 선택지만 떠오르는 이들에게 실제 검찰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는 정확했고 이 책은 실제 검찰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충분히 보여 주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2011년 11월 현재 1,827명의 검사 가운데 법무부와 대검, 서울중앙지검 등 핵심 기관·부서에 근무하는 엘리트 검사는 10~20%에 불과하다. 언론의 주목을 끄는 사건들을 처리하는 이도, 검찰조직 차원에서 내려지는 주된 결정도 모두 이들의 몫이다. … 하지만 일선 검찰청에 근무하는 대다수 검사들은 그런 정치적인 이슈들과는 무관하다. 권력집단의 일원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할 뿐이다(제11쪽)”
 

그러나 이야기가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검찰 조직의 메카니즘을 풍부한 정보를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욕먹는 검찰을 조정하는 힘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보여준다. 인사의 필수 작동 요인은 지연인데 예컨대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는 자신들의 동향인 TK(대구, 경북) 출신들에게 검찰을 맡겼다. 이 시절 검사들의 신세는 횟감에 비유되곤 했다고 한다. TK 중에서도 경북고 출신은 ‘광어’, 경북고 이외 TK 지역 고교 출신은 ‘도다리’, 나머지 기타 지역 출신은 ‘잡어’로 불렸다고 한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TK는 다시 한 번 득세하는데 정권 교체 직후인 2008년 6월 인사에서는 검사장 승진자 11명 가운데서 경북고 출신이 3명(김영한, 최교일, 김병화)을 차지했으며 이외에도 5명(권재진, 김태현, 박용석, 정진영, 박기준)의 경북고 출신 고위급 간부들이 핵심 요직에 배치됐다고 한다. 학연도 만만치 않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TKK(대구, 경북, 고대)가 득세인데 한상대 현 검찰총장은 고대 법대 출신이다. 현 법무부장관은 권재진이니 학연과 지연의 힘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연과 지연만으로 엘리트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함께 근무를 하며 쌓은 인연, 평판도 인사에 영향을 **다. 근무연이나 평판을 통해 실력 있고 성실한 사람, 인간성 좋은 사람에게 엘리트 검사의 길이 열린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적당한 정도로 윗사람 지시에 잘 따르는 사람이 인정받고 좋은 평판을 얻을 테니 좋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과적으로 검찰 조직을 비판하는 검사, 윗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검사,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검사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구조다.

 

학연과 지연, 평판과 근무연으로 승진을 가름하는 메카니즘은 비단 검찰만의 특성은 아니다. 기업이나 학교에도 똑같은 메카니즘이 있다. 문화계나 스포츠계도 특히 학연과 지연 때문에 정기적으로 문제가 터진다. 그러나 공익의 대변자로서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최고의 권력 집단이 이런 메카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그 결말은 정권의 요구에 순응하는 조직이다. 정권은 자기 사람을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에 앉히고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은 다시 자기 사람을 엘리트 검사로 승진시키고 중요한 정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기 사람들로 하여금 사건을 처리하게 한다. 노무현 수사의 주역은 두 명의 검사였다. 우병우와 이인규, 우병우 검사는 경북 봉화 출신으로 까칠하고 조직 내에서 악평이 높았다. 이인규 검사는 1990년대 후반 미국 워싱턴DC 한국대사관에서 법무협력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후로 정권 교체 후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윗선에는 지극 정성이지만 일처리는 가차 없이 하기로 유명하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비난의 화살은 검찰, 그 중에서도 이 두 명에게 향했다.

 

“솔직히 둘 다 내가 잘 알지. 근무도 같이 해봤고 어떤 스타일인지 잘 알아. 그런데 그런 조합을 (대검 중수부 진용으로) 만들어놓은 게 문제였다. 큰 수사를 할 때일수록 한쪽이 물불 가리지 않고 나가면 다른 쪽에서는 차분하게 검토하고 제동을 거는 그런 식으로 진행돼야 하거든. 그런데 이 둘은 마구잡이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스타일들이잖아. 이렇게 팀을 꾸려놨으니 사고가 안 터지는 게 이상하지. 난 사실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냐. 부인이고 형이고 주변 사람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잘못도 있지. 그래도 (검찰이) 이것은 아니잖아”(제200쪽) 

 

그렇다면 결론은 명백하다. 이러한 인사시스템을 가져온 전제를 깨는 것이다.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중앙집권적인 인사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검사는 “조직원이 아닌 개별 법률전문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또한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정치 사건이나 공안 사건을 맡는 20%의 엘리트 검사 대신 검찰 본연의 역할인 형사 사건을 담당하는 80%의 검사들을 살려줘야 한다.
 

“검찰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은 형사부와 공판부 검사들이다. 이들은 경찰 수사과정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불법, 탈법 수사를 감시하며 효율적인 수사진행을 지휘하고, 기소한 피고인의 공소유지를 담당한다. 실제 가장 많은 검사들이 형사부와 공판부에서 일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위상은 어떤가? 형사부에만 주로 근무하는 검사들은 연줄이나 능력 면에서 별 볼일 없는 이로 취급되는 게 현실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평판 경쟁’에서 누락된 이들이 배치되기 때문이다”(제117쪽)
 

검찰에 대한 비판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센 지금 이 책은 검찰을 개혁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이 책을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 권력 집단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인 바로 당신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글_윤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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