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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인턴활동후기] 용산, 비극의 현장을 넘어 희망의 터가 되도록






 #1. 9월 17일, 용산 철거민 공판의 기록


 


* 법정 풍경.. 어쩌다 우린 여기서 만났을까…


 


방청객 수를 제한한다는 소식에 점심을 먹자마자 법원에 뛰어갔지만, 상복을 입은 유가족, 이웃 철거민, 몇몇의 기자 등 주로 관계자들이 눈에 띌 뿐 법정은 조용했다. 1월 20일 이후 약 8개월… 5구의 시신은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냉동고 속에 안치돼 있고 유가족들은 세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도 여전히 검은 상복을 입고 있는데,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용산은 이제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인다.


 


방청석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나 평범한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들이다. 왜 이들이 이런 일을 겪고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곳에 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복잡하고 불합리한 법들로 가득한 뉴타운이니, 재개발이니 하는 일들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면, 그냥 평범하게 살아갈 이웃들 아닌가하는 생각에 안타깝다가, 아니, 그럼 또 다른 평범한 얼굴들이 희생자가 되어 이 자리에 있겠구나 싶어 서글퍼졌다.


 


갖가지 상념이 머릿속을 지나가는 사이 판사(3인), 검사(3인), 변호인(3인), 피고인(5인)들이 속속 입정하고 공판은 시작되었다.


 


* 쟁점 ; 발화점이 어디였는가!!!


 


이날은 주로 ‘화재의 발화지점이 어디였나’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검찰에서는 농성자 중 1명이 고의로 4층에서 망루 3층 계단으로 화**을 던져 불이 번졌다며 특수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한 것이기 때문에, 발화지점이 망루 안 쪽이 아니라면 검찰의 주장은 상당한 근거를 잃게 된다.


 


이 쟁점과 관련하여 총 5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있었다. 검찰과 변호인, 양 측 모두 한 발도 물러나지 않는 가운데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속에서 증인신문은 진행되었다. 


 


* “경찰들, 그 때 진입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첫 번째 증인은 용역업체 (주)현암건설의 야간 경비를 맡고 있던 김모씨.


남일당건물 맞은편 신용산 빌딩에서 망루 창 밖으로 화**을 던지는 걸 목격했으며, 망루 안에서 불이 붙었다고 주장했다. 속이 탔다. 하지만 이어진 변호인의 선방! 안에서 밖으로 불이 번진 시간차가 대략 얼마쯤인가를 묻자 자신 없이 10-20분이라고 했다가 변호인과 판사가 재차 묻자 나중엔 정확하게 기억 못한다고 하는 등 진술에 모순이 있었다. 또, 화**을 던지는 건 정확히 봤다고 하면서도 다른 장면에 대해 묻자 너무 캄캄해서 볼 수 없었다며 상황을 정확하게 목격하고 객관적으로 진술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 증인은 1월 19일과 20일 두 차례 현장에 출동했던 16년차 소방공무원 조모씨.


일단, 조씨는 참고인 진술 때 했던 발언들을 몇 가지 철회했다. 먼저, ‘19일 시위대가 나무에 불을 붙이는 장면을 보았다’는 진술에 대해서는 ‘그 때는 무심결에 시위대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정황을 보니 용역들이었던 것 같다’고 수정했다. 또, 당시의 무전수신 녹취기록을 보여주자 그 때 ‘시위대가 불을 지른다’고 했던 것은 ‘건물에 연기가 차있는 걸 보고, 그런 상황에서는 작은 불꽃만 일어도 큰 불이 발생하기 때문에 급한 마음에 빨리 구조대를 요청하려고 한 말일뿐 누가 불을 지르는지 보이는 상황이 아니었음’을 인정했다. 더불어 그 날 화재가 왜 발생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고, 비록 당시에는 판단이나 제지를 할 입장이 아니었지만 지금 판단하면 그 때 경찰이 진입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데도 수긍했다. 자신의 진술이 이 엄청난 사건의 근거로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한 듯 최대한 정확하게 진술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세 개의 영상, 제 각각의 진실.


 


이어서 세, 네 번째 증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화재감식반 과장 김모씨(경력13년),와 물리분석과에서 화재원인조사를 맡고 있는 송모씨(경력 3년).


 


두 사람에게는 검찰이 유력한 증거로 밀고 있는 20일 새벽 참사현장을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신문이 진행됐다. 검사는 동영상을 통해 화재가 망루에서 발생했다는 증언을 얻으려고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자충수를 둔 듯 했다. 세 개의 증거자료는 모두 다른 각도에서 촬영된 것이었는데 각각의 영상에서 육안으로 확인되는 발화점은 모두 달랐다. 사자후TV의 자료는 4층에서부터, 경찰이 찍은 자료는 3층에서부터,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장 최근에 변호인이 제출해 증거자료로 요청된 (증86호) 동영상에서는 컨테이너 바닥에서부터 먼저 불이 붙기 시작했다. 검사는 동영상에 입증의 사활을 건 듯 증인들을 압박했지만 변호사의 한 치도 양보 없는 신문으로, 결국 점화원인이 어떻게 제공됐는지 확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동영상을 통해서도 발화점이 어디인지 확정할 수 없다는 증언을 얻어낼 수 있었다.


 


* 19초와 20초 사이


 


마지막 증인은 소방방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모씨.


화재 현장에는 직접 나간 적이 없지만 참고인 조사 시, 여러 각도로 촬영된 동영상을 보고 발화점을 망루 내부로 지목한 바 있기 때문에 가장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증인은 3층인지 4층인지 정확히 특정은 할 수 없으나 계단에서 먼저 불이 났고 화기를 머금은 유류가 낙하하면서 물에 떠있던 유체에 불이 붙어 아래층이 연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했다. 교수다운 특유의 분석적이면서도 차분한 어조가 설득력을 더해주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는 찰나, 변호인은 (증 86호)를 보여주었다. 컨테이너에서 불길이 치솟는 장면인 7시53분 18초에서 스탑! 그러나 증인은 컨테이너 쪽의 밝은 빛은 망루 이음새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반사된 것일 뿐 화염으로 볼 수 없다고 차분하게 진술한다. 다시 식은땀이 배어나오는 순간… 하지만 변호인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망루구조도 잘 모르고 현장검증도 한 바 없으면서 망루에 틈새가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추궁했고, 이에 검사는 증인을 자극하여 더 단정적인 증언을 얻으려는 듯, 모욕적인 언사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어이없는 방청객들은 야유를 보낼 수밖에. 판사도 동영상을 보며 혼란스러운 듯 했다. 증인에게 망루의 창밖으로 불빛이 커졌다 작아지는 19초와 20초 사이의 장면을 다시 보여주며 19초와 20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지 묻는다. 알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지는 증인의 명대답.


 


 “화재는 확률입니다. 사건의 발화원인을 찾을 수가 없는 게, 정황상 화**을 던져 불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을 뿐, (건물 내 가연물이 많고 유증기가 꽉 차 있어) 다른 점화 원인이 있었어도 동일한 양상을 보였을 겁니다.”


 


* 법정승리를 위한 한 걸음


 


결론적으로 오늘 발화점이 망루 안임을 확신한다고 증언한 사람은 용역업체 직원 1명이 된 셈이다. 하지만 경과시간에 대해 엇갈리는 진술을 하거나 추측성 발언을 하는 등 증언이 객관적인 것인지 의심스러웠는데, 판사도 직접 추가질문을 하며 그 점을 확인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전문가 3명이 동영상 세 편을 본 후 ‘발화원인과 발화점을 확정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일치된 증언을 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였는데, 발화점은 목격자들의 진술도 엇갈리고 있는 부분이라고 하니 충분히 승산있는 싸움으로 보인다. 변호인은 증거조사를 끝맺으며 ‘검사는 공소장에서 4층에서 3층으로 화**을 던져 불이 났다고 했는데 세 가지 동영상의 발화점은 모두 다르고 따라서 동영상은 입증할 수 있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는 증거가 될 수 없어 유죄로 볼 수 있는 증명력이 없다. 또한 고의인지 과실인지 조차 불명하다’고 발언 한 후 3000쪽의 증거자료 제출을 재차 촉구했다.


 


* 용산, 비극의 현장이 희망의 터가 되도록..



4시간 반 동안의 공판이 끝나고 피고인들이 퇴정하며 가족들과 안타까운 인사를 나눴다. 어머니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아들의 손을 놓지 못하다가 경찰이 제지하자 투박한 손에 무언가를 쥐어준다. 자세히 보니, 자일리톨 껌 한 개… 변호인이 공소사실을 잘 반박 한 것 같아 내심 뿌듯한 마음이었는데, 다시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 돼 버렸다.


 


집에 돌아와 메일함을 여니 용산 국민법정 뉴스레터가 와 있다. 기사 하나가 또 마음에 박힌다. 참사현장인 남일당 건물에서는 요즘 매일 미사를 드려, 남일당 성당이라 불리고 있다고 한다. 미사를 봉헌하는 세 명의 신부 중 한 명인 이강서 신부님이 인터뷰 중 남긴 말..


 


용산참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은 따로 있다’가 우리사회의 기본명제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거죠. (…) 사람에 따라 이곳 용산은 희망이 없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희망이 넘친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저는 이곳 용산이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바로미터, 그래서 회복의 첫 자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산은 이미 우리사회에 큰 각성과 공명을 불러 일으켰고 그 자체로 큰 성과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큰 걸음으로 다가갔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승리란 이미 승리했다고 믿고 그것을 맛보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에요.”


 


신부님은 역시나 그릇이 크신 것 같은데, 믿음이 부족한 나는 눈에 보이는 승리를 어서 빨리 봐야 조금이라도 후련해질 것 같다. 그나저나 미사에 꼭 한번 가봐야지. 기독교신자지만 무에그리 대수랴. 예수님은 지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이웃들이 있는 그 곳, 남일당 성당에 계실 것 같다.


 


#2. 10월… 용산에 진실의 꽃이 피어나길…!


 


9월 17일의 방청 이후 다시 한 달 여의 시간이 흘렀다. 재판이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검찰의 부실 수사, 무리한 기소를 방증해주는 고무적인 공판 소식들이 속속 들려온다. 재판승리만으로 이미 짓밟힌 철거민들의 삶이 일시에 회복될 수는 없지만, 문제 해결의 첫 단추가 될 재판이기에 부디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길 간절히 바랄뿐이다.


 


한편에서는 국민법정이 기획되고 있다. 국민이 직접 기소인이 되어 진정한 피고인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선정된 배심원단이 피고인들의 유무죄를 가리게 될 것이다. 경찰의 잔인한 강제진압, 검찰의 직무유기 및 증거은닉, 이명박 대통령․오세훈 시장 등 현 정부의 폭력적 재개발… 공판정에서 다뤄졌어야 할 용산참사의 본질적 내용이 이곳에서 다뤄진다.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것, 휴일 하루 시간을 내어 방청객으로 참여하는 것, 이런 작은 관심들이 절실하다. 비록 실정법적 효력은 없으나 불평등하고 낡은 도그마를 허물기 위한 민주주의적 인권운동으로서의 효력은 충분할 것이다.


 


분노하되 게을러서 행동에는 약했던 내가, 공감의 인턴이 되어 용산참사를 좀 더 깊이 알게 되고 국민법정에 아주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됨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알면 알수록 괴롭고 막막하고, 때론 무력감마저 들지만 그 일을 또렷이 직면하는 것이 가장 작고 소중한 연대임을 알기에, 요즘 난 주변 사람들에게 용산참사에 끈질기게 관심을 가져 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어느 이름 없는 시인의 말처럼,


 


‘사람들아, 용산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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