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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탐방] 국민참여재판 참관 후기





 

하나. 옥에 티를 찾아라


 


릴 때부터 저희 부모님은 살면서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곳 세 곳을 일러주셨으니 그것은 바로 경찰서, 병원, 법원 이었습니다. 이 세 곳에 가면 필히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런 부모님의 당부를 뒷전으로 하고 저는 룰루랄라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을 보기 위해서!


 


전 처음 가보는 곳, 법원. 그리고 이름도 생경한 국민참여재판. 저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었습니다. 재판이 시작하기 전, 인상 좋으신 참여연대 간사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서 콩닥거리는 마음을 누르고 재판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의 사건은 ‘특수강도미수’와 관련된 사건이네요. 특수강도미수라…….무언가 무섭습니다. 우락부락한 조직폭력배 아저씨가 주인공이려나? 별별 상상을 다 해봅니다. 11시가 되자 재판부가 입장하고 피의자도 속속 입장합니다. 상상속의 주인공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순해 보이는 20대 청년이었습니다. 갑자기 그의 인생이 궁금해졌습니다.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요?


 


TV 속에서 보던 법정 스릴러의 한 장면이 지금 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건가봅니다. 검사는 어려운 법률용어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여덟 분의 배심원들도 자리에서 그 설명을 경청하고 계시네요. 피의자의 변호는 국선변호사가 맡았습니다. 재판 전 참여연대 간사님께서 주신 정보에 의하면 국민참여재판은 대부분 국선변호사의 몫이라고 합니다. 피의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정 요건을 갖추면 국민참여재판 대상 사건이 되는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피의자의 신청이 있어야 국민참여재판 사건으로 선정될 수 있는데, 선정된 사건 대부분은 이렇게 국선변호사에게 수임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오늘의 국선변호사님. 뭔가 2% 부족해 보이는 것은 저만의 주관적인 평가일까요? 흠…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첫 번째 옥에 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배심원.



분명 우리나라 배심원은 유, 무죄뿐만 아니라 양형에도 관여를 하는 또 하나의 재판부의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판사들과 동등한 높이에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권리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렇지가 않네요. 말로는 재판부와 동등한 입장에서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에 동참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정말 말! 뿐인 것 같았습니다. 중요한 증거물인 ‘과도’는 높으신-위치적 고도가 높다는 말도 포함합니다― 재판부에게 먼저 보입니다. 그 분들은 친히 만지시고 이리저리 돌려보십니다. 한 번 보시겠냐고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보고 계시니까요. 그 다음 우리의 배심원들에게 검사가 묻습니다. “한 번 보시고 싶으신 분?” 칼도 무섭고 법정의 분위기도 무서워서 Pass! 검사와 변호인, 열심히 이야기 합니다. 재판부를 향해서 열심히 말씀하십니다. 배심원들은 귀가 있으니 시선은 굳이 두지 않아도 됩니다. ‘시선은 언제나 존경하는 판사님께’ 라는 법정 수칙이 있나 보군요. 배심원들은 또 하나의 방청객, 혹은 채택된 방청객 정도 인가요? 밀란 쿤데라가 탄식한 ‘존재의 가벼움’은 우리의 배심원을 두고 한 말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옥에 티! 주의력결핍을 주의합시다.



오전에는 주로 사실관계를 설명하거나 주요 쟁점을 제시하는 등의 간단한 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자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같이 간 인턴들과 식사를 마친 후 노곤하기도 하고 무거운 법정으로 들어갈 생각에 꾀가 나기도 했습니다만, 공감 인턴의 막중한 사명감으로 다시 법정으로 향했습니다. 점심식사 이후에는 증인이 나와서 사건에 관한 증언을 하고 피의자가 검사와 변호사의 질문에 대답하는 등 오전보다는 좀 더 활기찬 재판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저~기 5번 배심원 아저씨께서 눈을 감고 경청하시는 줄 알았더니 꾸벅꾸벅 졸고 계시네요. 점심을 너무 많이 드셨나봐요.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서는 이 얼마나 중요하고 처절한 순간 입니까. 죄를 짓기는 했어도 젊은 청년의 미래 인생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는 정말로 중요한 순간이잖아요. 집중, 또 집중하셔야 하는 이 순간에 조시다니요. 너무 실망입니다. 저는 아저씨의 조는 모습을 보면서 아저씨가 예비배심원이 되길 바랐답니다. 예비배심원이 되면 평의에 빠지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주의력결핍으로 제대로 판단하실 수 없는 아저씨의 의견이 판결에 반영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6번 배심원이 예비배심원이 되었네요. 다음에는 정신 바짝 차리시고 배심원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잊지 말아 주세요. 주의력결핍을 주의합시다, 배심원 여러분~


 


마지막 옥에 티! 조기종영의 어두운 그림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다간 온갖 시선을 한 몸에 받을 것 같은 이 썰렁한 분위기. 참여연대 방청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방청석에 거의 아무도 없었을 것 같군요. 홍보부족인지 홍보의지부족인건지, 국민참여재판을 만들고 시행하고 있는 곳은 참여연대가 아니라 법무부로 알고 있는데 너무 무신경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배심원들이거든요. 기본적인 홍보와 안내는 제도 정착에 필수적인 것 아닐까요? 갑자기 문득 걱정이 되는군요. 시범시행 기간이 종료되는 2012년쯤이 되면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 혹은 시행 효과가 미미하다 등등의 이유로 국민참여재판이 사라지게 되지는 않을는지…….매주 화요일에만 시행되는 국민참여재판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요일에 실시하는 것은 어떨는지요? 직장인을 위한 국민참여재판 방청, 학생들을 위한 국민참여재판 참관 등등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국민참여재판의 조기종영을 막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아마 제가 참여재판이 아닌 다른 일반 재판을 방청한 경험이 있었더라면 더 좋은 비교로 제대로 된 분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혹시 아직 국민참여재판이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 분이 계시다면 참여연대의 프로그램을 신청하셔서 꼭 한 번 참관해 보시길 ‘강력추천’ 드립니다. 저도 앞으로 시간이 되는대로 많이 찾아볼 생각입니다. 몇 년 후 다시 국민참여재판을 찾았을 때는, 지금 발견한 옥에 티들이 과연 말끔히 해결되어 있을까요? 그랬으면 참 좋겠습니다.


 


글_10기 인턴 방서은


 


 


둘. 배심원은 재판정의 들러리?



지난 화요일 국민참여재판 방청을 할 수 있었다. 영화와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경험한 배심제 재판을 볼 수 있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참가하였지만, 마음 한 구석에 오히려 아쉬움과 걱정이 남는 그런 경험이었다.
일단 법정의 구조가 배심원을 위해 기존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프로젝터를 비롯한 다양한 시청각 장비가 동원되어 배심원들에게 사안과 관련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특히 좋았다. 하지만, 배심원의 평결을 판사가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가 없어서인지 전반적인 재판과정은 여전히 판사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번 재판에서도 증거물로 나온 과도를 재판부는 직접 관찰할 기회가 있었지만, 배심원은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배심원에 대한 배려보다는 여전히 판사에 대한 예우가 더 중요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기존의 고압적인 재판정 분위기와는 달리 판사와 검사가 대단히 친절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판사와 검사는 배심원을 고려하여 법률 용어를 풀어서 설명해주면서 사안을 잘 이해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때로는 너무 지나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배심원이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 구성됨을 고려할 때 반드시 필요한 부분으로 느껴졌다. 반면에 변호인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물론 변호인 개개인의 자질과 관련되는 부분이겠지만, 판사와 검사와는 달리 변호인은 배심원을 배려하는 모습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만약 다른 재판의 변호인도 이처럼 준비가 미흡하다면 배심원을 설득하여 원하는 평결을 얻기는 힘들 것 같았다.


 


국민이 직접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제대로 정착된다면 사법부와 국민간의 거리를 줄일 수 있을 뿐더러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배심원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고, 재판정에서도 검사나 변호인은 판사를 위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기존의 관습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배심원은 재판정의 들러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배심원으로 참가하는 국민들도 적극적인 자세로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겠지만,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인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배심원을 위해 준비하고 배려하여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일상적인 법정의 풍경이 될 때 국민과 사법부가 함께 정의를 구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글_10기 인턴 이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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