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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비장애, 정상성, 남성 중심의 사회에 도전하기 – 장애여성공감을 찾아서

“안녕하세요, 장애여성공감이지요? 저는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인턴 ~~라고 합니다. ···”

이렇게 시작하여 장애여성공감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2007년 2월 둘째 주 화요일에 만나게 되었다. 이른바 공감+공감이다.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의 배복주 소장, 상근활동가 ‘진’ 씨, 그리고 독립생활센터 ‘숨’의 조미경 활동가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장애여성, 스스로 독자적 단체를 조직하다

    장애여성공감은 강동구 명일동에 있다.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쭉 가야 만날 수 있다. 시민단체가 강동구 쪽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장애여성공감이 명일동에 보금자리를 틀기까지는 ‘장애여성에 의한, 그리고 장애여성을 배려하는’ 고민들이 녹아있었다. 지하철역에 장애인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야 하며, 역에서 사무실까지의 도보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널찍하고 평평해야 한다. 사무실의 건물은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갖추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만족한 것이 지금의 사무실이다.

    1995년 북경에서 세계여성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장애인권익연구소 ‘빗장을 여는 사람들’에서도 이 대회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같은 여성이 주체가 되는 대회인데도 불구하고 장애여성을 배려하는 편의시설은 갖추어 있지 않았다. 주류여성들의 행사 속에서 장애여성은 소수였던 것이다. 이 대회에서 장애여성은 포럼 등의 행사에는 참여할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것은 피케팅뿐이었다. 여기에서 장애여성을 위한 독자적인 운동 단체가 있어 장애여성의 힘을 키워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1998년 2월 14일, 장애여성공감은 어떠한 단체나 조직에도 귀속되지 않은 최초의 장애여성단체가 되었다. 여섯 명의 장애여성과 세 명의 비장애여성이 발기하였다. 그러나 2007년 현재에도 장애여성단체는 4개뿐이며, 장애여성을 위한 운동 상황은 열악하다.

여성 감수성으로 세상보기

    단체 이름이 ‘여성장애인공감’이 아니라 ‘장애여성공감’이다.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장애여성’과 ‘여성장애인’, 이 둘을 의식적으로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배복주 소장은 ‘여성장애인’과 ‘장애여성’ 둘 다 정체성은 동일하다고 설명하였다. 다만 운동성의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고 한다. ‘여성장애인’이라는 말에는 장애감수성이 두드러져 장애인인데 여성이라는 뜻을 지닌다. 반면에 ‘장애여성’이라는 말을 통해서는 여성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물론 여성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번역을 하면서 생기기도 하였지만, 흔히 여의사나 여교사와 같이 접두어 형식으로 ‘여-’가 붙는 것을 여성운동에서는 꺼려한다고 한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를 갖는 여성이라는 맥락, 즉 여성주의 혹은 여성운동의 시선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 장애여성의 문제는 장애인이고 여성이어서 겪는 이중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여성이 겪는 경험 자체가 새로운 차별이 된다고 한다.

    장애여성공감은 활동가들 사이의 호칭에 있어서도 여성주의적 시각이 엿보인다. 씬니, 진, 상추, 소요 등 활동가들의 이름이 특이한 것이다. 장애여성공감은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의 경험, 나이, 혹은 직위의 차이가 반영되는 ‘선배님, 선생님 심지어는 언니’ 등의 호칭 자체에서 나타나는 위계질서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활동가들끼리 별칭을 부르며 이러한 위계질서를 타파하려고 한다. 누구로부터 주어진 이름이 아닌 내가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친근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개인의 역량과 경험이 잘 나타날 수 있는 평등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장애여성의 경험으로 사회적 차별을 해소해나가기

    장애여성공감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 혹은 주력하고 있는 활동이 무엇인지 질문하였다. 배복주 소장은 장애여성공감의 활동이 백화점식이긴 하다고 밝혔다. ‘백화점식’이라는 어감 자체가 그리 좋지는 않다. 그러나 곧이어 그럴 수밖에 없는 장애여성운동 조직의 현실이 드러났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애여성단체의 수가 적다 보니, 여러 군데에서 동기 부여를 많이 받게 된다고 한다. 즉, 장애여성의 욕구가 다양하고 장애여성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도 많기 때문에, 개개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되면 이것저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여성공감은 비장애인의 시선이 아니라 장애여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차별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단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장애여성공감의 활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백화점식도 아니다. 장애여성공감은 매해 일정한 테마를 갖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육, 성, 노동 등의 주제에 따라 중점적인 활동을 하며, 한 해의 관심을 담은 잡지가 그 결실물로써 발행되는 것이다.

    현재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와, 독립생활센터 ‘숨’을 갖추어 활동영역을 확장하면서 세분화하였다. 그래서 분야별로 고민하고 있는 사안이 나누어 있다.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성폭력 상담을 주업무로 하며, 올해 2007년도에는 특히 형법 개정작업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정신지체인의 성교육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독립생활센터 ‘숨’에서 장애여성의 독립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올해에는 활동보조인 제도가 잘 시행되기 위해서 이를 어떻게 진행하고 NGO는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장애여성공감 자체에서는 중증 장애여성의 노동의 현장, 혹은 생산 현장 만들기에 중점을 둘 예정이라고 한다.

    여느 NGO와 마찬가지로 장애여성공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재정문제이다. 그러나 장애여성공감에게는 다른 시민단체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 다른 시민단체의 활동가는 건강한 신체, 혹은 돈과 같은 사회적 자원의 일정 부분을 갖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저임금을 받고도 활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장애여성에게는 이러한 사회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활동을 하려면 최소한의 생계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장애여성공감이 겪고 있는 재정적인 부담은 크다. 장애여성공감은 때로는 예산지원을 받거나 프러포즈 사업을 통해서, 혹은 기부를 받아서 운영을 하고 있다. 장애여성공감은 내년 2월에 창립 1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재정문제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다. 이에 따라서 소액 다수의 후원자들을 통한 기부문화가 절실하다. 하지만, 장애여성은 그들이 하는 일, 혹은 장애여성이 불쌍해서 동정하는 기부를 받는 것은 거부한다. 진정으로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옳다고 지지해 주는 후원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다른 방식의 표현 방법: 몸짓을 통해 소통하기

    장애여성공감은 주로 글을 통하여 사회와 소통하였다. 한 해에 몸, 독립, 폭력, 노동, 성 등 한 가지의 주제를 정해 장애여성전문잡지 ‘공감’을 발행한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말과 글을 통한 보통의 운동방식으로 생각을 표현하다 보면, 언어장애가 있거나, 교육을 마치지 못한 장애여성은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배경에서 장애여성공감은 다른 표현 방식을 추구하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몸짓을 통한 소통, 연극팀 ‘춤추는허리’이다. 허리는 사람의 몸의 중심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실 장애여성은 허리가 안 돌아간다. 그러나 장애여성 또한 마음과 뜻만은 춤출 수 있는 역동성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정신지체인, 그들은 밖에 나가기만 하면 일을 내거나 일을 당하는 둘 중의 하나다?

    배복주 소장은 인터뷰하러 온 인턴들에게 짤막하게 정신지체와 그 밖의 장애를 구분하는 방법을 설명하였다. 정신지체인은 뇌기능 중에서 운동능력은 있지만 인지능력이 없어서 아이큐가 70 이하인 사람을 가리킨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지능력이 있는 발달장애와, 혹은 정서장애, 뇌병변 장애와는 다르다. <맨발의 기봉이>에 나오는 기봉이가 바로 정신지체라고 할 것이다. 반면에 <오아시스>의 공주는 뇌성마비로 운동기능장애와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다.

    정신지체는 몸은 정상이지만 뇌기능의 인지능력이 손상되어 발달이 아주 느리다. 그래서 정신지체인도 성장은 하는 편이지만 그 속도가 일반인이 100이라면 10, 혹은 20의 수준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인지능력이 10세 미만이어서 수동적이고, 유아적이다. 그래서 “오빠가 사탕 줄게~”와 같은 작은 유혹이나 협박을 통해서 정신지체 여성을 쉽게 다룰 수 있다. 이들은 ‘안해’라는 표현을 못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정신지체 여성이 쉽게 성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애여성공감의 성폭력상담소에 찾아오는 90%의 장애여성은 정신지체여성이다. 또한 정신지체 여성은 성매매집결지 내에도 많다. 성매매의 경우에도 포주가 정신지체인에게 적지만 돈도 주고, 예쁘다고 말하며, 말을 잘 들어주니까 정신지체 여성이 포주를 절대적으로 따르기도 한다. 정신지체 여성은 밖에 나가기만 하면 성폭행을 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방비 상태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는 그녀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비장애, 정상성, 남성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정신 지체 여성은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배복주 소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가 내린 결론이지만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더 나아가 배복주 소장은 자위행위를 정신지체인만의 문제로 국한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 또한 자위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지체인의 자위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의 인지능력이 유아적이어서 이러한 성적 흥분을 사회적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때와 장소에 맞게 자위를 하기 위해서 어떻게 이를 교육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여성공감의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성인 정신지체 여성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실시한다. 여기에서는 자기결정권과 방어능력과 같이 장애여성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객체에서 주체로의 이행. 장애여성 스스로의 주체적 삶 살기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구조 속에서 장애여성들의 경험과 차이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장애여성에게도 분명 자신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결혼의 상대방을 스스로 선택할 삶의 결정권이 있는데도 말이다. 지체장애 남성과 정신지체 여성과의 결혼이 우리 사회에는 상당하며, 이는 보통 협상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보통 결혼의 당사자 사이의 합의는 없으며, 보호주체간의 거래로 성립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 사회는 장애여성의 자기 욕망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삶을 재단한다. 그러나 장애여성은 의존적이며, 종속적이고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장애여성의 ‘성’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장애여성에게도 성적충동이 있을 수 있으며, 그들에게도 이를 해소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오아시스>에서 장군이는 처음에 공주를 겁탈하려고 한다. 공주는 이에 “하지마”라고 분명히 대응하였는데, 이에 따라 성폭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의 공주와 장군이의 성관계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지만 장군이는 장애인을 강간한 특수강간죄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현행법상 장애인과의 모든 간음 형태는 강간이 된다. 이는 장애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여성공감은 형법 개정운동으로 ‘비동의간음죄’를 포함하려 한다. 또한 장애여성의 사랑과 성폭행 사이의 구분도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성폭력상담소에서는 피해여성을 대상으로 상담을 할 때에 보호자의 말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피해자와 대화해서 성폭력인지 아니면 사랑의 결과로 이루어진 동의에 의한 관계맺음인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한다고 한다.

    보통 밖을 돌아다닐 때, 주로 활동하는 사무실, 학교, 공공시설 등에서 장애인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들은 대체로 시설이나 개인 집에서 나가지 못하고 사회와 격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장애여성을 포함한 장애인의 경우, 바깥출입은 거의 하지 못한 채 평생을 모든 정보와 차단되어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은 주체적인 활동을 전혀 할 수 없으며, 본인 스스로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도 시설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까닭 때문이다. 그러나 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회가 장애인을 격리시키고 있다. 이 사회는 장애인의 상황을 비정상적이라고 규정하며 부자연스럽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누가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한단 말인가.

장애여성,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배복주 소장은 장애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위해서는 이들이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고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국가는 이들이 집 밖으로 나왔을 때, 범죄가 일어나거나 혹은 나쁜 사고가 일어난다며 이러한 시도 자체를 꺼려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의 사회적 관계를 전면 차단, 통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주 만나고 소통한다면 우리 사회는 분명히 나아지기 때문이다.

    비단 이러한 지역사회와의 교감활동은 장애인들만의 몫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를 갖지 않은 이들에게 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장애인을 대하는 것은 봉사활동이 아니다. 그들이 불편하다면 우리가 맞춰주는 것이 관계맺음의 기본인 것이다. 장애인을 통제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장애여성공감이 시도하고 있는 연극이 이러한 측면에서 획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처음에는 장애여성이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 수 없고, 그들의 움직임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자주 접촉하다보면, 그리고 자주 만나고 소통하다보면,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고, 그들의 움직임 또한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장애여성 있다

    장애여성도 이 땅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장애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받고 있는 차별과 억압의 경험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도 욕구를 갖고 있는 인간이다. 장애여성을 보호와 사회복지 수혜의 대상쯤으로 취급하다면 구조적으로 장애여성은 자기의 입장이나 주장을 드러낼 수 없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는 평등하지 않다. 장애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장애여성의 역량을 강화하고 사회의 인식과 정책적 지원 등의 사회적 조건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장애인의 분야는 다른 분야와는 다르게 장애인 사이에 자원의 차이가 크며 계층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따라서 장애여성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풀어야 하는 경우가 많으며, 개개인별로 접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배복주 소장은 한 장애여성을 지원하는 것은 장애여성의 가정을 후원하는 것이 되며 지역사회 더 나아가 국가를 지원하는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꿈꾼다. “정신지체인(혹은 여성장애인 더 나아가 모든 장애인)이 편안하게 길거리를 활보하고 우리가 그들의 은어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를.”

※ 장애여성공감 http://www.wde.or.kr/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가 2005년에 6개월간 단체 파견 근무를 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공감+공감”이라는 성폭력 피해 장애여성 지원을 위한 법률 매뉴얼 작업을 함께 하였습니다.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장애여성의 활동을 보조하실 분, 혹은 상담자원활동가를 필요로 합니다.

글_ 김아영 인턴 / 취재_ 이선희, 전경태, 김아영 인턴 / 사진_전경태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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