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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이 비행기는 취소되었네요.”

  “!!!!!”

 

  출장을 가는 길, 새벽시간 환승 대기구역에서 겪은 일입니다.

  환승을 하려면 입국심사대를 통과해야 하는 곳인지라 모두가 긴 줄에서 한참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한참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긴 줄에 서있던 모두가 지켜보았습니다. 왜 저러지? 무슨 일이 있나? 결국 공항 직원이 노부부의 비행기표를 가지고 어디론가 가더니, 이내 돌아와 이 비행기는 취소되었네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들려온 웃음소리. “!!!!!” 제 바로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 커플이었습니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겠지요.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어쩌지 못하지만 각 사회마다 그 감정의 표현하기 전에 적어도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하는 장치가 존재합니다. 타인의 곤경을 접하고 공개적으로 웃음을 터뜨리고 만 위 커플의 모습은 바로 그 장치, ‘사회적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이 사회적 부끄러움이 작용하는 대상과 분야, 그 정도를 분석해 보면 그 사회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각 사회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부끄러움의 정도는 그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존중의 정도와도 일치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과거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당연했던 시기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무관하게, 인종 불문 인종차별적 언행은 (정도에 따라 불법이기도 하지만 그에 이르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부끄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분명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멀리 미국까지 갈 것 없이 과거 한국사회에 장애인에 대한 비하표현들이 만연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적어도 그러한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부끄러움이 시간이 흐르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은 아닐 테지요. 미국은 인종차별 철폐 운동과 관련 법제정이, 한국 역시 장애인 이동권보장 운동부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 같은 긴 투쟁의 역사가 지금의 그 사회적인 부끄러움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요. 人權(인권)사람의 범위와 권리의 범위는 각각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 넓어진 것이겠지요.

 

  올해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성적 혐오와 인종적 혐오의 표현들을 기억하시나요. 적어도 이런 표현들을 내뱉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도록, 내년에도 힘차게 달려볼 생각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진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지만, . 목표를 좀만 더 낮게(?) 잡는 것으로요.

 

  아, 그리고 그 공항 환승대기구역의 커플로 돌아가서, 저를 포함해 그 자리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매우 뜨악한 표정을 보내자, 본인들도 멋쩍어 하며 ‘I am sorry’라고 한 마디 하더군요. 적어도 그 상황에서 보인 자신들의 반응이 사회적으로 부적절했다는 것은 인지한 것이니, 여러분들도 저도 새해를 맞아 너그러운 마음으로 정상참작 하는 것으로 하지요.

 

글_김지림 변호사

김지림

# 국제인권센터# 성소수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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