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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불편했던 세계인권선언 70년 기념식 – 박래군_인권재단사람소장

1210,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기념하는 인권의 날 기념식현장에 참석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기념식의 맨 가운데 맨 앞 자리였다. 대통령 부부가 앉은 옆자리를 기념식 내내 지키고 앉아 있자니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하루 종일 불편하고, 마음이 울적했다.

기념식장에는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이니 경호가 삼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경호를 하면서 출입자를 통제했다. 초대받은 이만 들어갈 수 있는 자리였다. 기념식장 밖에서는 인권활동가들이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장애인등급제 폐지하라!’와 같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유인물을 나눠주고 발언을 이어가고 있었다. 원래 그 자리가 내 자리인데, 그들을 외면하고 기념식장에 들어가는 그런 장면을 상상할 때부터 마음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을 실제로 겪으니 더욱 불편했다.

 

세계인권선언 70년을 기념행사는 그런대로 의미를 잘 살린 구석도 있었다. 세계인권선언의 조항들을 대표적인 인권피해자들이 나와서 낭독하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 그렇다. 검은 피부색의 한현민, 세월호 유가족 유해종, 5.18 고문 생존자 차명숙, 형제복지원 생존자 한종선, 간접조작사건 피해자 유우성, 대체복무 경험자이자 주한 스웨덴 대사 야콥 할그렌, 촛불청소년 인권법제정을 주장해온 고3 윤종화, 12년 만에 첫 출근한 KTX 승무원 김승하, 민달팽이유니온 대표 최지희, 대한항공 사무장 박창진 등이 한 조항씩을 읽어내고 마지막으로 선언의 제1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를 가수 이은미가 낭독했다.

그리고 고 노회찬 의원에게 대한민국인권상을 수여한 것도 의미 있었다.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분에게 상이 수여되었으니 기꺼운 마음으로 축하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 위원장의 기념사는 평소 위원장의 소신을 밝혔다.

사회 양극화의 심화와 함께 약자가 또 다른 약자를 공격하고, 사회가 해결해야할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 간 갈등으로 치부해 버리곤 합니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 마련이 없다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혐오와 차별은 더욱 큰 사회적 위협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범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며, 국가인권위원회는 내년부터 혐오차별대응기획단을 만들고 인권기본법 제정 등을 통해 이러한 노력을 선도적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역설했다.

 

대통령도 축사를 통해 의지를 밝혔다. 축사를 통해 차별과 혐오가갈라놓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또한 인권을 무시할 때 야만의 역사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인권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면서, 결코 포기 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 대목에서 우리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어야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을 하는 대통령도 거기에 참석한 나를 비롯한 4백여 명도 침착했다. 그의 축사가 공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가? 이 정부가 인권이 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정책을 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확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 이 정부가 인권의 가치를 최우선에 둘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한 활동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아마도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요구한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는 제지당했는지 곧 그쳤다. 다른 활동가들은 침묵 속에서 천으로 만든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침묵의 항의가 무섭게 이어지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나는 맨 앞자리에서 꼼짝 않고 앉아 있으면서 대통령의 공허한 다짐을 들었다.

 

사실 불편한 마음은 기념식이 있기 전부터 들기 시작했다. 특히 기념식전에 종교계 대표들과 원로 분들을 모시고 차담회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였다. 그 소식을 듣고는 우리 재단 활동가들과 나누는 소통하는 방에 청와대가 쓴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얘기라고 일갈했다. 덕담이나 나누면서 종교계의 불만을 다독이려는 태도로 읽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어떤 건의도 할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인권현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듣겠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아서 안타깝다. 세계인권선언 70년에 맞게 인권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을까?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번 인권의 날에 내건 모토는 혐오와 차별을 넘어 누구나 존엄하게!”이다. 매우 적절한 모토가 아닐 수 없다. 올해에는 유난히 진짜인권과 가짜인권이 대립되는 것 같은 형상을 보였다. 난민도 가짜난민, 페미니스트도 가짜페미니스트라고 하더니 이제는 가짜인권을 파는 인권팔이라고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을 매도당하는 상황이 되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권추구행동을 인권으로 포장하는데도 서슴없었다. 국회는 혐오표현의 경연장이 되었고, 인권의 보루라는 대법원은 스스로 사법농단의 주역이 되어 무너져 내렸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도 인권의 가치는 자꾸 뒷전으로 밀어둔 채 혐오와 차별에 대한 어떤 태도도 말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 이런 중에 맞은 인권의 날이었고, 더욱이 7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는데, 이렇게 흘러가고 말았다.

 

결국 이 우울한 인권상황을 극복하고 떨치는 힘은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인권의 무시와 경멸이 낳을 비참을 막기 위해서도, 세월호 참사의 고통을 같이 느끼며 함께 일어서 결국 무도한 정권을 끌어내렸던 시민들의 힘을 믿는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시민들은 노란조끼 시위를 벌이면서 약자를 무시하지 마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도 2년 전 겨울을 촛불로 밝히지 않았던가. 불평등과 혐오와 차별이 넘치는 세상은 결국 그 질서를 용납하지 않는 시민들의 행동으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인권선언 전문이 말하는 대로 저항의 시대가 다시 오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세계인권선언 70년을 보냈다. 우울한 기념일이었다.

_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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