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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부자 인터뷰]”공감이 변화의 시작을 만들어 낼 것을 믿어요.” -선혜숙 기부자


  지난 2006년 공감 2주년 행사장에서 06학번 대학새내기 한 명이 최연소 기부자로 감사패를 받았다. 그는 고3 수험생이었던 2004년 우연한 기회에 아름다운재단을 알게 됐고,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공익변호사기금에 생애 첫 기부를 시작했다. 고등학생이던 그는 어느덧 대학4학년생이 됐고, 이제는 최연소기부자라는 타이틀보다 장기기부자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인터뷰 요청 전화를 받자 선혜숙님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평범한 대학생일 뿐인데요.” 6년 째 공감에 기부하고 있는 선혜숙님과 나눈 평범한 이야기들을 평범한 우리 모두에게 전한다.



#. 기부, 사회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
 
  학교-독서실-집을 오가는 게 반복되던 고3 시절, 자주 드나들던 한 기자의 블로그에서 아름다운재단과 1%나눔을 알게 됐다. 한 달 용돈 20만원의 1%는 2천 원이었다. 매점 한 번 안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기부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재단의 많은 기금 중에서 왜 하필 공익변호사기금을 택했을까?
 
  “공감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았다기보다 취지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정의’나 ‘사회’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 제 입맛대로 고른 게 공감이었죠.”


‘제가 온갖 혜택을 누리고 사는 것 같아 용돈의 일부라도 기부할까 합니다’
  이는 선혜숙님이 고3때 기부신청을 하면서 남긴 말이다.
 
  “부자는 아니지만, 서울에 살면서 돈 때문에 다니고 싶은 학원에 가지 못한 적은 없었죠. 스스로가 많은 혜택을 받으며 자랐다고 생각해요.”
 
  선혜숙님의 한 달 용돈은 40만원이다. 월 2천원으로 시작한 기부금은 자연스럽게 월 4천원이 됐다. 이제 대학4학년, 거기다 한의학을 공부하는 그에게 한 달 40만원의 용돈은 늘 모자라다. 자신이 가진 것에서 1%를 나누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100만원을 가진 사람의 1천원과 10만원을 가진 이의 1천원이 같지만 다른 것처럼 말이다. 
 
  “사실 돈이 너무 궁해 이제 그만 할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또 유명인의 거액기부 뉴스를 보면 괜히 위화감도 느껴요. 그런데 제게 4천원은 기부라기보다 사회참여라는 의미가 더 커요. 적은 금액이지만 이 정도라도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그만두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할 거예요. 사회에 나가게 되면 더 많은 기부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기부는 선혜숙님이 사회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선생님이 되길 바라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의학과를 선택한 것 또한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공감이 변화시킬 사회


 


  대학 입학 후, 기부에 그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곳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행동하는의사회’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어요. 인천에 있는 이주노동자센터인데, 학생인 저는 보조 역할이에요. 진료를 받으러 오는 분들이 이주노동자이니 주로 공장에서 일하죠. 주된 증상은 허리가 아프고, 팔이 삐고……. 고된 노동이 원인인데, 치료를 하는 입장이라도, 쉬라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분들은 일을 해야 돈을 버니까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안타까워요.”


  근본적인 해결. 이는 한의학을 서양의학과 비교할 때 주로 쓰는 말이기도 하다. 병의 근인을 찾는 공부를 하는 선혜숙님은 환자의 아픔과 고통의 원인을 알면서도 온전히 고쳐줄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봉사활동하면서 많이 배우고 또 많은 한계를 느껴요. 제가 공감이 하는 활동들에 공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저는 공감의 활동이 근본을 건드리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 역시 유명 연예인이 눈물 흘리는 장면을 보면 마음이 동하고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하지만 그보다는 법이이라면 사회를 큰 틀에서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집을 지어주는 것보다 그 집을 정부에서 짓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선혜숙님은 공감의 활동이 나비효과처럼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길 바란다.
  “공감 자체는 물론이고 공감이 이끌어 낸 성과들이 홍보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한 번의 승소가 판례가 돼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환자와 공감하는 한의사



  선혜숙님은 공감구성원들을 ‘멋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배운 지식과 기술을 사회에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는 것 자체가 그에게 귀감이 된다고 했다.
 
  “공감 뿐 아니라 시민단체에서 일하시는 분들, 이를테면 한의사 중에서도 의료생협에서 근무하시는 분들, 모두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이 멋있어요. 자신들이 원하면 정당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이라도 포기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해요.”


  예전 기부자편지에서도 ‘사회의 믿음이자 희망인 당신들에게 나의 미래를 꿈꿉니다’라는 글귀를 남겼었다. 이와 더불어 ‘훌륭한 한의사’가 될 것을 약속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다시 물었다. 어떤 한의사가 되고 싶은지를.
  거침없는 답이 나올 것이란 예상과 달리 “잘 모르겠다”는 조심스러운 말을 들었다. 잠시 후, 자신의 말과 미래를 책임지고 싶은 20대의 변을 들을 수 있었다.
 
  “공감 변호사님들이 멋있어 보이지만 제가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자신은 없어요. 하지만 환자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한의사가 되고 싶어요. 환자의 혈색만 보지 않고 환자가 가진 사연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더해진 생각은 실력이 없으면 그런 생각도 아무 소용없다는 거예요. 사람의 몸을 다루는 학문이니만큼 일단은 치열하게 공부하고 싶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는 맑았다. 자신이 이 사회 안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음이,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그가 꿈꾸는 한의사의 모습이 그리고 그 따뜻함이 참 맑았다.


  인터뷰를 마치며, 선혜숙님은 늘 해왔기에 이제는 일상이 돼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기부의 의미를 돌아본 기회였다며 감사하다 했다. 하지만 사람과 사회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가진 그와의 만남으로 공감의 존재 이유를 돌아볼 수 있었기에 외려 공감이 그에게 더 큰 감사를 전한다.
             


                                                     글_9기 인턴 황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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