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공감이 권하는 책]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 리가 사는 법

원만함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함정



–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 리가 사는 법 –



 


책을 읽으며 공감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 한 여성단체 활동가와 언쟁을 벌였던 일이 떠올랐다. 단체가 지원하는 형사 재판의 법률자문을 진행 중이었는데 그 활동가는 담당 재판부가 편파적이라고, 아무래도 피고인이 변호인을 통해 판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것 같다며 흥분을 했다. 나는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재판부와 사법절차를 의심하는 것이 사건 지원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며 활동가의 문제제기를 ‘음모론’으로 치부해버렸다. 내게 돌아온 것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내 얼굴은 꽤 붉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몇차례 사법 비리가 사회 문제화 되었고, 가깝게는 신영철 대법관 사건과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 사건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몇 년전 그때처럼 의협심 넘치는 마음으로 사법시스템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공정하고 투명하다고 항변할 수 있을까  


 


두식 교수는 사법 패밀리의 핵심적인 문제로 원만한 대인관계에 대한 함정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인터뷰에 응한 한 검사의 일화가 소개된다. 부장검사, 차장검사를 위시해 같은 부에 속한 평검사들이 함께 회식을 하는 자리였다. 동석한 변호사가 그 자리의 모든 검사들에게 백화점 상품권을 돌렸다. 변호사는 현 부장 검사가 차장 검사 시절에 모셨던 부장검사 출신이었다.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상품권이 돌고 있는데 한 평검사가 받을 수 없다고 정색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오히려 거절한 검사만 우스운 꼴을 당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고 한다. 일화를 들려준 검사도 마음으로는 불편했지만 부장 검사도 받는 마당에 나서서 못받겠다고 말하기 어려웠다고, 거절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여서 나서지 못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이 일화는 책장을 덮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너는 아닐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조계 내부에는 튀면 죽는다는 인식이 통용된다. 연수원에서 만난 교수, 동기들과 이후 언제 어디에서 만날지 모르고, 연수원에서 한번 찍히면 좁은 법조계 전체로 부정적인 평가가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모나지 않는 대인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법조인들이 연수원 수습 시절부터 위와 같은 행동 강령을 내면화하게 된다. 또한 연수원 시절부터 법조인들은 한 가족이라는 인식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나는 연수원에 들어가기 전에 연수원에서의 관계는 동료로서의 관계일 것이라고, 그러기에 연장자이든 연소자이든 동료로서 “00씨”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서로에게 존대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수원 생활 시작 첫날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담당 교수님과 조원들과의 첫 회식자리에서 교수님은 20여명의 조원들을 나이 순으로 정리한 후 호형호제를 하도록 했다. 이를 어기는 자에게는 벌주로 폭탄주가 돌았다. 그날 밤 이후 조원들간의 호칭은 “언니, 오빠, 형,  00야”로 정리되었다. 패밀리라는 인식은 그렇게 형성되었다. 


 


조 내에서의 전관에 대한 예우, 그를 통한 사건에 대한 영향력 행사, 그러한 영향력에 대한 일반인의 맹신 등으로 사법 불신은 조장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 사슬을 끊어낼 수 없는 것은 사법 패밀리라는 인식과 거절할 수 없는 관계의 형성, 경쟁이 심한 서열구조 속에서 원만한 대인관계의 중요성 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김두식 교수는 원만함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켜내는 것은 언제나 기득권층의 이익과 기존 질서라고, 갈등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원만함으로 이해되는 조직에서, 모두 그러다보면 정의라는 본질적인 가치는 뒷전으로 밀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공자도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도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도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마을의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신영복 선생님은 마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으려는 심리적 충동도 실은 반대편의 비판을 두려워하는 심약함이 아니면, 아무에게나 영합하려는 화냥끼가 아니면 소년들이 갖는 한낱 감상적 이상주의 불과한 것이라며 날선 비판을 하고 있다. 


 


스쿨 원년이다. 연수원이라는 일원화된 창구에서 패밀리를 형성하여 도제식으로 이루어졌단 법조인 양성 방식에 일대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로스쿨이라는 공간을 통해 별나고 톡톡 튀는 다양한 인재들이 법조계에 입문하여 거절할 수 없는 관계 앞에서도 거침없이 “노”라고 내뱉으며 발랄하고 유쾌한 반란을 도모할 그날을 꿈꾸어 본다.  


 


공감지기

연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