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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통신] 이 시대에 먹고 산다는 것 – 하승수 (변호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요즘 청년들 앞에서 강의를 할 때에 ‘자립’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한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게 자립이 아니라는 걸 강조한다. 자립을 빨리 하고, 잘 한다는 나라의 특징은 사회가 많은 것을 뒷받침해 준다는 데 있다.

 

  세계에서 청년들이 가장 자립을 빨리 한다는 나라 중에 덴마크가 있다. 덴마크에서는 18세-24세까지의 청년들 중에서 부모님과 함께 집에서 사는 비율이 34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한다. 대학생들의 학비가 무료인 것은 물론이고 상환조건 없이 매달 760유로를 장학금으로 준다고 한다.

 

  대학을 가는 청년만 좋은 것도 아니다. 임금격차가 적고, 임금수준이 전체적으로 높은 편이어서 대학을 가지 않고도 경제적 자립을 하기가 쉽다. 직장을 다니다가 잃게 되는 경우에도 실업급여를 장기간(4년간) 지급하기 때문에 불안함이 덜하다.

 

  이런 사회이기 때문에 ‘자립’이 잘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의 밑바탕에는 ‘경쟁’이 아니라 ‘연대’가 깔려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청년들보고 ‘혼자서 먹고 사는 걸 해결하는게 자립’이라고 얘기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는 청년들에게도 주거와 교육, 생활을 모두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 ‘자립’이라는 단어가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립’은 공동체와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

 

  청년들만 이런 ‘정글’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다. 4,50대들은 언제 직장을 잃거나 자영업이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노후에 대한 불안에 시달린다. 노후에 대비해 민간연금을 들거나 저축을 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그나마 낫다. 그러나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민간연금에 가입을 할 형편이 안 되더라도 국민연금이라도 가입이 되어 있다면 좀 낫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노인세대들 중에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들의 비율은 3분의1에 불과하다. 이렇다보니 대한민국의 노인빈곤율은 48%로 세계 최고수준이다.

 

  그나마 기초연금이 전체 노인들 중에 70%에게 지급이 되면서, 약간의 소득보장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인당 20만원, 부부합산 32만원으로는 최소한의 생활도 보장되기 어렵다.

 

  이처럼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청년은 청년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중ㆍ장년은 중ㆍ장년대로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상위 10%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야 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어쨌든 사람은 먹고 살아야 한다. 생활은 해야 한다. 그러나 각자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도 아니고, 정상적인 사회도 아니다. 이 정도로 ‘각자 생존’의 사회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사회가 당연한 것도 아니다. 덴마크 같은 나라는 지구상에 함께 존재하는 국가이지만, 나름대로 ‘같이 먹고 사는’ 구조를 만들었지 않나?

 

  ‘같이 살자’는 철학으로 운영되는 사회들은 의의로 많다. 유럽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코스타리카 같은 국가도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대한민국의 절반수준이지만, 사람들의 행복도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민주주의가 잘 되고, 공동체성이 강한 국가들은 그래도 ‘함께 살자’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왜 이렇게 됐을까? 아무리 이유를 찾아봐도 ‘정치’ 말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대한민국과 덴마크를 비교해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크다.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정치적 의사결정들을 해 왔다.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조세부담률(48.6%)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이다. 대한민국 조세부담률(23.6%)의 딱 2배이다.

 

  그래도 덴마크 사람들은 큰 불만 없이 세금을 내고 있다. 그것은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투명성이 높은 정부를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덴마크는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하는 반부패지수에서 늘 최상위급의 청렴도와 투명성을 자랑한다. ‘연대’를 뒷받침하는 ‘신뢰’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을 만든 것은 덴마크의 정치이다. 덴마크식 비례대표제를 통해 다양한 정당들이 경쟁하는 정치구조를 만들어왔고, 투표율이 80%대를 항상 웃도는 활력 있는 민주주의를 해 왔다. 그 밑바탕에는 다른 사람과 공존하면서 진정한 자립의 길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교육이 있었다.

 

  덴마크가 이상적인 사회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보다는 나은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청년들의 삶, 노인들의 삶, 우리 모두의 삶을 생각하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각자 생존이 아니라 ‘함께 살자’는 공생(共生)의 길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소득이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시민배당)에 관한 논의, 최저임금 현실화 등이 중요한 이유이다.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소득을 권리로서 보장하자는 기본소득을 주장하면, 많은 사람들이 재원마련을 걱정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OECD 평균 조세부담률(34.1%)보다 훨씬 낮은 조세부담률(24.3%)를 기록하고 있다.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같은 ‘삶의 질’이 높은 국가들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높은 조세부담률을 기록하고 있다. 조세부담률이 낮고 먹고 살기 위해 ‘각자생존’을 해야 하는 사회보다는, 조세부담률이 높더라도 ‘같이 살자’고 하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아닐까?

 

글_하승수 (변호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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