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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통신] 바빠서 ‘사이’가 없는 삶 –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바빠서 죽을 것 같다. 더 이상의 일을 안지 않기 위해 전화 코드까지 빼놓은 지 오래다. 이럴 때 돌아온 공감 통신의 차례까지 원망스럽다. 나뿐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런저런 바쁨에 치이고 또 치이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우리 사회는 탈수기로 쥐어짜듯이 몸과 마음을 몰아쳐야 간신히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사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주로 만나는 이들은 ‘인권활동가’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 또한 꼭지가 돌 정도로 바쁘다. 서로 제일 두려워하는 말이, ‘도움을 청할 것이 있는데’이다. 밀양 송전탑으로 강정 해군기지로 형제복지원으로 해고노동자로 경찰 채증과 연행으로 일상적인 차별 문제로 또 무엇으로 서로를 애타게 찾는다. 이들이 내놓는 일들로 상을 차리면 그 유명하다는 80첩 한정식을 차리고도 남을 것이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식으로 서로의 힘을 돌려쓰고 지쳐 한다. 서로를 안쓰러워하면서도 ‘일 좀 줄이라’는 말이 덕담이 못 된 지 오래다.

 

  그런 우리가 추구하는 삶은 사람 ‘사이’가 많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 일에만 코 박지 않고 서로를 돌아보며, 자기 주머니에만 신경 쓰지 않고 서로를 살필 수 있는 ‘사이’를 사회 곳곳에서 만들어내고 우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공통의 일에 대한 책임을 나누는 삶이다. 그런 ‘사이’를 만들려면 사람을 만나고 진득하게 서로의 맘과 시간을 써야 한다. 그런데 정작 그런 ‘사이’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보니 저마다 무리하기가 일쑤다. 

 

  인권활동가들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하나 그러려면 돈이 더 필요하기에 정작 아이와의 시간을 줄이고, 친구를 갖고 싶어 하나 그러려면 멋져 보여야 할 뭔가를 갖춰야 하니 자기고립을 강제하고, 이웃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싶으나 내가 가진 자원이 모자란 것 같으니 더 몰아치며 살아야 한다. 이 체제가 강요하는 삶의 양식이 그런 것이리라.

 

  당장 뾰족한 수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출발점은 이런 문제에 대한 공통의 인식과 감각일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너도 그러니’ 라는 신호라도 주고받아야 할 것 같다. 그런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망에 다리 하나라도 걸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신호를 같이 해석하고 다음 신호를 무엇으로 변화시킬 것인가를 같이 궁리할 그런 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을 열등하고 무능하다고 낙인찍음으로써, 우리의 양심으로부터 해고시키는 일이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문 중 내가 좋아하는 한 구절이다. 나는 요즘 이 문장을 “바쁘다는 이유로, 내 양심에서 관심을 내치는 일이 없어지기를 바랍니다.”로 바꿔 읽는다. 직접 관여하여 일을 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기, 맘 불편하다는 이유로 내치지 않기, 이것만이라도 지키자는 마음에서다.

 

  세상의 고통을 어떤 특별한 개인이 다 책임질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살기 나쁜 사회가 될 것은 틀림없다. 거창한 조직과 일에 연루되지 않더라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울이는 관심이 다수가 책임을 공유하려는 사회의 동력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매일 눈만 뜨면 벌어지는 인간의 고통이 있다. 누군가는 그 고통에 대해 뭔가를 해야 하는데, 어느 누구에게도 그 책임이 정확히 할당되지는 않는다. 정부 또는 힘 있는 세력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일쑤다. 혹자는 “우리 모두에게는 그 일이 완수되는 것을 지켜볼 책임이 있다.”는 말을 했다. 그에 따르면 책임은 공유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책임을 공유하는 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능력이나 제도적 역할이 있다거나 특별한 관계나 약속을 맺어서가 아니다.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시민으로서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내 일이 아니다’ 식의 태도는 정부 또는 힘 있는 세력의 회피를 부른다. 정작 책임져야 할 쪽을 추궁하는 힘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책임의 공유에 달려있다고 했다.

 

  몰아치는 삶 속에서 우리 각자가 영웅적인 개인이 돼서 그런 힘을 발휘할 수는 없다. 그런 힘은 우리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나의 삶 속에 또 당신의 삶 속에 그런 ‘사이’가 있는가를 바쁨을 잠시 내려놓고 묻고 싶다.

 

글_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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