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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통신] 강정의 하루 – 제주 강정마을, 아직 끝나지 않았다 – 김덕진(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해가 막 그 얼굴을 드러내는 아침 7시 제주 강정마을에 고요한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강정마을 평화지킴이들과 천주교 수녀 예닐곱이 민군복합형 관광미항¹ 공사장 정문 앞으로 모여 방석을 하나씩 펴고 자리를 잡는다. ‘진리가 삶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을 새기며 첫 번째 절을 올립니다로 시작하여 내가 밝힌 생명평화의 등불로 인해 온 누리의 뭇 생명이 진정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발원하며 백 번째 절을 올립니다로 끝맺는 35분간의 생명평화 100배는 지난 3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폭염이나 한파 속에서도 변함없이 진행되어 왔다. 종교적 의식으로 행하는 것도 아니고 생태나 환경에 대한 특별한 신념을 실천하기 위한 절도 아닌 듯싶다. 이들에게는 구럼비 바위와 강정 앞바다를 보고 만지고 싶다는 애틋한 마음만이 가득한 것 처럼 보인다.   

 

  지난 2년간 때로는 전쟁터가 되고 때로는 평화로운 성전이 되는 강정마을 매일매일의 시작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린 이들 중 김 군이라는 지킴이가 있다. 거리의 신부 문정현 신부보다 익숙한 몸놀림으로 스쿠터를 타고 강정 곳곳을 누비는 김 군은 매일 아침 해군기지 공사장 앞 생명평화 100배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강정 앓이² 250명이 묶여있는 단체 채팅방에 올려준다. 강정에 있던, 강정 밖에 있던, 우리들은 생명평화 100배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셈이다. 때로는 귀찮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지난해 김 군의 어이없는 법정 구속으로 한동안 사진이 올라오지 않았을 때는 그 빈자리가 너무 컸다

  지난 2011년 초여름 문정현 신부가 제주 강정마을로 이주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활동으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던 제주 해군기지 공사가 공권력을 동원한 정부의 밀어붙이기로 막 강행되려던 시기였. 물론 문정현 신부가 강정마을로 이주해 오기 훨씬 전부터 제주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제주 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해서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하고 있었고 천주교 제주교구는 교구장 강우일 주교를 중심으로 평화의 섬 제주 특별위원회를 설립하고 해군기지 건설의 부당함에 반대해 왔다. 그리고 강정마을 주민들은 2014년인 지금 햇수로 8년째 강정 앞바다와 마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끈질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매일 오전 11시에 어김없이 시작되는 해군기지 반대 강정생명평화미사는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올레꾼들에게까지 알려지면서 강정마을 저항의 상징이 되었지만, 미사에 참여하는 강정 지킴이들에게는 매일 국가공권력과 자본이 가하는 폭력과 모욕에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시간이다. 미사가 진행되는 중간에도 공사 차량을 통해 시키기 위해 경찰은 미사 중인 신부들과 수녀들이 앉아 있는 의자를 번쩍 들어 한 귀퉁이로 치워버린다. 평생을 기도와 성찰로 살아온 이들에게 이보다 더한 모욕이 어디 있을까? 시멘트를 싣고 가는 공사 차량보다 사람들이 더 보잘것없게 취급되는 곳이 2014년 강정이다.

▲ 미사 진행 중인 신부들과 수녀를 들어 옮기는 경찰들


  지난해 봄부터는 미사 직후 강정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함께하는 평화의 인간 띠 잇기가 이어진다. 강정에 있는 모든 이들이 모여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강정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평화의 인간 띠 잇기가 끝나면 모두 삼거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강정평화상단협동조합³으로 귤 박스를 포장하러 가거나, 인근 농장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도 하고, 평화센터로 가서 강정을 방문하는 이들을 맞이하고, 마을 고구마밭으로 농사를 지으러 가기도 하며, 구속된 이들을 면회하러 제주교도소로 향하는 차를 타기도 하고, 평화책방으로 몰려가 책을 읽거나 회의를 하기도 한다. 강정에 머무는 평화지킴이들은 이미 강정의 주민이 되었고 강정에 삶의 터전을 잡고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문정현 신부는 점심시간 이후 공사장 앞 기도 천막을 지키며 서각에 열중한다. 문정현 신부가 2010년 명동성당 성모 동산에서 한국 천주교의 회개를 위한 1인 기도를 하며 시작했던 서각작업들은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판화가 이철수 화백에게 사사를 받기도 한 문정현 신부는 성서 구절이나 여기 사람이 있다”, “꽃 한 송이 돌멩이 하나 건드리지 마라등의 문구를 새긴다. 이제는 서각투쟁이라고 부르는 이 작업에 문정현 신부는 벌써 문하생을 둘이나 두었다. 문정현 신부는 이 서각기도를 통해 무엇을 빌고 있을지 궁금하다.

  헌법이 보장한다는 표현의 자유나 집회시위의 자유도 주장 할 수 없고 해군과 건설회사에 빼앗기고 쫓겨나는 이들은 강정 주민들과 지킴이들인데 감옥에 가고 벌금 독촉 고지서를 받는 것도 강정 주민들과 지킴이들이다. 지금까지 강정에서만 29명이 구속되었는데 이 중에는 두 번 이상 구속된 이들이 여섯이다. 강정에서 사법처리를 받은 650여 명이 이미 납부했거나 앞으로 해야 하는 벌금만 3억 원이 넘는다. ‘함께 싸웠으니 함께 책임진다는 구호 아래, 벌금을 마련하기 위한 후원주점이 329일 서울에서 열리고 강정법률지원기금모금위원회도 정식으로 출범한다. 강정과 함께하고 강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방법으로 강정과 연대한다.

▲ 미사 직후 이어지는 평화의 인간 띠 잇


  지난 8년간 강정 주민들의 삶은 구럼비 바위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평생 벗하며 마음을 나누던 이웃사촌들과는 해군기지 반대파와 찬성파로 나뉘어 인사도 나눌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강정 주민들은 농사고 일상이고 다 내버리고 모든 것을 걸고 해군기지를 막기 위해 싸워왔다.

  하지만 강정 주민들은 다시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다. 그동안 서울보다 훨씬 넓은 제주를 걸어서 세 바퀴를 돌았고, 제주에서 서울까지 걸으며 전국 방방골골의 아픔들과 마주하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처를 보았다, 용산참사 유족들의 한을 느꼈으며,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들과 함께 눈물 흘렸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구럼비 바위가 다 부서지고, 강정 앞바다에 시멘트가 가득 쌓여도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정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에게 구럼비를 지켜달라고 이 무도한 권력과 자본의 폭압을 강정에서 끝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가수들은 노래로, 화가들은 그림으로, 춤꾼들은 춤을 추며, 작가들은 글로 강정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그 의미와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고 시간과 마음을 내어 강정을 찾는 사람들, 매년 여름만 되면 강정생명평화대행진에 함께하려고 휴가 일정을 조정하면서 뜨거운 제주를 걷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강정은 절대 지지 않는다. 강우일 주교의 말처럼, 강정은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바로 강정에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정의 희망은 다시 시작되고 있다.

 

글_김덕진(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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