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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통신] 밀양 송전탑과 공익 – 공익이란 무엇인가?



공익이라는 단어를 쓸 때도 있지만, 쓰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공익’이라는 단어의 모호함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공익인지를 누가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은 ‘공익’이라는 단어에 대해 늘 가지게 되는 의문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밀양 송전탑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필요한 사업이라고 주장하면 ‘국책사업’이 되고, 그 사업을 강행하는 것이 ‘공익’ 또는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 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정부와 한전, 언론은 마치 그런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밀양의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사익을 주장하는 것인가? 밀양 주민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얘기하고 있다. 송전탑이 가져올 삶의 파괴를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가 송전탑의 타당성에 대한 검증도 없이, 그리고 민주적인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사업은 너무나 부당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공익적이지 못한 것일까?

 사실 서울의 강남이면 이런 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까 싶다. 형식적인 주민설명회 한 번으로 의견수렴 절차는 끝이고, 그다음부터는 끝없는 압박과 일부 주민들을 돈으로 회유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강행한다. 마지막에는 용역업체가 등장하고, 그것으로도 안되면 경찰이 등장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물리력으로 윽박지른다. 서울 강남이라면 이런 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까? 서울 강남에서도 ‘국익’을 위한 것이라며 아파트 건물 옆으로 초고압 송전선을 가로지르게 할 수 있을까?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 강남에서는 내세우지 못하는 국익인데, 경남 밀양의 산골에서는 내세워도 되는 국익이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이 국익인가?

 경남 밀양에는 검찰청과 법원이 있다. 창원지검 밀양지청과 창원지법 밀양지원이다. 여기에 있는 검사와 판사들은 아마도 길어야 몇 년 정도 근무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실정법의 잣대로 송전탑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기소하고 재판을 한다. 이들 중에 밀양 송전탑의 현장에 가본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밀양 송전탑 사업의 실체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들은 정부나 한전이 하는 사업이니까, 이 사업은 국익을 위한 것이고 공익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밀양 송전탑의 문제점은 너무나 많다. 아무리 봐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사업이 아니다. 이것이 밀양 주민들의 생각이고, 밀양 주민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부산과 울산 사이에 있는 고리의 낡은 원전들만 폐쇄해도 밀양 송전탑은 필요 없다. 지금 있는 송전선으로도 전기를 보내는데 충분하다. 위조 부품이 장착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고리 3호기의 안전성만 제대로 검증하려고 해도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에 밀양 송전탑에 관한 여러 가지 대안들을 검토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이런 주장들을 계속해 왔지만, 정부와 한전으로부터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은 적이 없다.

 송전공학의 관점에서 봐도 밀양 송전탑은 미스터리 투성이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멀리 보낸다면서 76만 5천볼트까지 전압을 올린다. 그렇게 올린 전압으로 90킬로미터를 간 다음에 다시 34만 5천볼트로 낮춘다. 그것을 위해 수천억을 들여 변전소를 짓는다. 그러고는 지중화에 대한 검토를 부탁하는 주민들에게 ‘76만 5천볼트니까 지중화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주민들은 ‘그러니까 34만 5천볼트로 지으면 되지 않느냐? 굳이 76만 5천볼트로 90킬로미터를 간 다음에 다시 34만 5천볼트로 낮출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동문서답을 한다.   

 국익과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최소한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서로의 주장을 검증하고 평가받을 기회는 가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한전은 TV 공개토론도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밀양에서 ‘공익’이라는 단어는 더 길을 잃었다. 아무리 봐도 정부와 한전이 공익을 담보하고 있는 집단 같지가 않다. 국민에게 최소한의 설명의무도 다하지 못하는 집단, 온갖 정보를 은폐하고 아무런 합리적 설명을 하지 못하는 집단이 어떻게 공익을 대변할 수 있겠는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으며, 시골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지금의 전력시스템은 공익적이지 않다. 이 시스템에서 이익을 보는 기업들도 있고, 각종 용역을 받아 챙기는 전문가들도 있을 것이다. 관료와 정치인들은 이들과 유착되어 있고, 퇴임 후의 자리도 보장받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전력시스템은 철저하게 사익적이다. 이들의 얘기를 받아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언론들도 광고를 수주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익을 챙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익’이라는 단어에 대해 회의한다.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공익’이라는 단어를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익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버릴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나는 이미 살 만큼 살았다. 그러나 우리 후손을 생각하면 바닷가에 원전 더 짓고, 수명 끝난 원전도 더 돌리고. 그것 때문에 이렇게 송전탑 짓는 것을 어떻게 그냥 놔둘 수 있느냐’는 밀양 할머니의 외침에서 ‘공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글_하승수(변호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공익이라는 단어를 쓸 때도 있지만, 쓰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공익’이라는 단어의 모호함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공익인지를 누가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은 ‘공익’이라는 단어에 대해 늘 가지게 되는 의문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밀양 송전탑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필요한 사업이라고 주장하면 ‘국책사업’이 되고, 그 사업을 강행하는 것이 ‘공익’ 또는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 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정부와 한전, 언론은 마치 그런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밀양의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사익을 주장하는 것인가? 밀양 주민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얘기하고 있다. 송전탑이 가져올 삶의 파괴를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가 송전탑의 타당성에 대한 검증도 없이, 그리고 민주적인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사업은 너무나 부당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공익적이지 못한 것일까?

 사실 서울의 강남이면 이런 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까 싶다. 형식적인 주민설명회 한 번으로 의견수렴 절차는 끝이고, 그다음부터는 끝없는 압박과 일부 주민들을 돈으로 회유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강행한다. 마지막에는 용역업체가 등장하고, 그것으로도 안되면 경찰이 등장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물리력으로 윽박지른다. 서울 강남이라면 이런 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까? 서울 강남에서도 ‘국익’을 위한 것이라며 아파트 건물 옆으로 초고압 송전선을 가로지르게 할 수 있을까?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 강남에서는 내세우지 못하는 국익인데, 경남 밀양의 산골에서는 내세워도 되는 국익이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이 국익인가?

 경남 밀양에는 검찰청과 법원이 있다. 창원지검 밀양지청과 창원지법 밀양지원이다. 여기에 있는 검사와 판사들은 아마도 길어야 몇 년 정도 근무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실정법의 잣대로 송전탑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기소하고 재판을 한다. 이들 중에 밀양 송전탑의 현장에 가본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밀양 송전탑 사업의 실체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들은 정부나 한전이 하는 사업이니까, 이 사업은 국익을 위한 것이고 공익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밀양 송전탑의 문제점은 너무나 많다. 아무리 봐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사업이 아니다. 이것이 밀양 주민들의 생각이고, 밀양 주민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부산과 울산 사이에 있는 고리의 낡은 원전들만 폐쇄해도 밀양 송전탑은 필요 없다. 지금 있는 송전선으로도 전기를 보내는데 충분하다. 위조 부품이 장착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고리 3호기의 안전성만 제대로 검증하려고 해도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에 밀양 송전탑에 관한 여러 가지 대안들을 검토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이런 주장들을 계속해 왔지만, 정부와 한전으로부터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은 적이 없다.

 송전공학의 관점에서 봐도 밀양 송전탑은 미스터리 투성이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멀리 보낸다면서 76만 5천볼트까지 전압을 올린다. 그렇게 올린 전압으로 90킬로미터를 간 다음에 다시 34만 5천볼트로 낮춘다. 그것을 위해 수천억을 들여 변전소를 짓는다. 그러고는 지중화에 대한 검토를 부탁하는 주민들에게 ‘76만 5천볼트니까 지중화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주민들은 ‘그러니까 34만 5천볼트로 지으면 되지 않느냐? 굳이 76만 5천볼트로 90킬로미터를 간 다음에 다시 34만 5천볼트로 낮출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동문서답을 한다.   

 국익과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최소한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서로의 주장을 검증하고 평가받을 기회는 가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한전은 TV 공개토론도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밀양에서 ‘공익’이라는 단어는 더 길을 잃었다. 아무리 봐도 정부와 한전이 공익을 담보하고 있는 집단 같지가 않다. 국민에게 최소한의 설명의무도 다하지 못하는 집단, 온갖 정보를 은폐하고 아무런 합리적 설명을 하지 못하는 집단이 어떻게 공익을 대변할 수 있겠는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으며, 시골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지금의 전력시스템은 공익적이지 않다. 이 시스템에서 이익을 보는 기업들도 있고, 각종 용역을 받아 챙기는 전문가들도 있을 것이다. 관료와 정치인들은 이들과 유착되어 있고, 퇴임 후의 자리도 보장받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전력시스템은 철저하게 사익적이다. 이들의 얘기를 받아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언론들도 광고를 수주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익을 챙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익’이라는 단어에 대해 회의한다.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공익’이라는 단어를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익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버릴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나는 이미 살 만큼 살았다. 그러나 우리 후손을 생각하면 바닷가에 원전 더 짓고, 수명 끝난 원전도 더 돌리고. 그것 때문에 이렇게 송전탑 짓는 것을 어떻게 그냥 놔둘 수 있느냐’는 밀양 할머니의 외침에서 ‘공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글_하승수(변호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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