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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권하는 책] 안녕 헌법





사실 이 책을 서평 대상으로 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자기가 쓴 책을 자기가 평한다는 것 자체도 이상하고 의도하지 않게 광고의 취지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라도 좋은 말을 아끼게 퇼 터이니 객관적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손에 든 데에는 나름의 핑계가 있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이 책은 차병직 변호사님, 윤재왕 교수님 그리고 내가 함께 집필한 것이지만 사실 공저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내가 쓴 분량은 극히 적다. 그러니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책을 평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찬반 논쟁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최근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난항을 거듭한 끝에 통과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교과부에서는 학생인권조례 무효확인의 소까지 제기하였다. 반대하는 주된 논거는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침해하고 동성애나 임신을 조장하며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너무나 많은 자유와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학생들에게 집회의 자유가 웬 말이냐는 것이다. 교권 침해나 동성애, 임신 조장에 대한 우려는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왜곡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자유와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헌법 공부 좀 하세요!

하긴 헌법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다. 법대에 진학하거나 법조인이 될 것을 꿈꾸지 않는 이상 평생 헌법 조문 하나 읽어 보지도 않고 생을 마감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헌법에 관심을가지고 큰 마음 먹고 서점에 들르더라도 베게 삼아도 좋을 만큼 두꺼운 수험서들에 압도되게 현실이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헌법 해설서가 있을 법도 한데 그 동안 없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래서 이 책이 만들어졌다. 평범한 사람들이 대한민국헌법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책 제목부터 친근하다.‘안녕헌법’

‘안녕헌법’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처음 대면했을 때 나누는 인사,‘헌법아, 안녕!’이 첫 번째 의미다. ‘과연 대한민국헌법은 안녕한가!’라는 염려와 고찰의 의미가 두 번째다.

“헌법에 첫인사를 건네듯 손을 내밀어 보자. 마음을 가다듬고 헌법을 읽는 순간 깜짝 놀랄지 모른다. 첫 번째 조문에서 바로 나 자신을 확인하게 될 테니까.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인이 나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국가기관도 내가 만들었다고 한다.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나를 비로소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 모르겠다. 나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선언에 이르면 어떤가? 지난 한 주 동안 세파에 시달렸던 나는 나의 본질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 않겠는가. 고달픈 일상은 피상적 현실의 한 장면에 불과할 뿐, 인간의 숭고함은 그런 사소함을 벗어난 곳에 깃들어 있다고 외치고 싶을 것이다”(헌법에 안녕이라고 말할 때, 제12쪽)

이 책은 헌법 조문을 하나하나 조곤조곤 설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조문별로 그 문언적 의미를 살펴보고 관련된 사건이나 이슈들, 그리고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판결도 함께 다루었다. 대한민국헌법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는 외국 입법례도 실었다.대한민국헌법은 최상위 법이면서 동시에 모든 법의 근원인 만큼 각 조문에 근거하여 탄생한 법령들도 소개했다. 무엇보다 시대와 괴리되거나 시대를 왜곡하는 내용의 헌법 조문에 대해서는 개정 방향까지도 담았다. 그러면서도 고담준론의 법 이론은 과감하게 배제함으로써 내용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막았다.    

예를 들어보자.

“직업의 자유는 어떤 직업이든 귀천이 없으므로 자기 능력과 사정에 맞는 직종과 직장을 자유롭게 선택하라는 그럴듯한 희망을 담고 있다. … 그렇지만 평범한 시민들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란,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찾아서 하라는 냉혹한 명령으로 들릴 것이다. 실제로는 그 배경에 자유 경쟁이란 무대를 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죽음 그 자체를 터부시하는 현실이 있는 한, 장의사나 화장장 사람들은 비참하다″ 일본에서 소설가로 데뷔하였다가 장례회사에서 시신을 염습하는 일에 종사했던 아오키 신몬이 그의 대표작 <납관부 일기>에서 한 말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제15조 직업 선택의 자유, 제120쪽) 

“노동의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고용의 증진에 노력하여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고 실업률을 줄이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며, 국가는 제공된 일자리로부터 노동자가 함부로 해고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야 한다. … 이러한 점에서 2007년에 제정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문제가 많다. 이 법은 2년 이하 근무한 노동자에 대해서는 제한 없이 해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제32조 근로의 권리, 제190쪽)

“사적 자치가 보장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노동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이는 헌법 제14조 제1항 강제노역의 금지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도 그러하다.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하지 아니하는 자를 윤리적,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다는 의미로 근로의 의무를 해석하는 이상 헌법에서 근로의 의무에 관한 규정은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같은 맥락에서 ‘근로’라는 용어는 ‘노동으로 바꿔야 한다. 근로는 말 그대로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인데, 모든 노동이 가치 있는 것이지 부지런히 일한 경우에만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제32조 제2항 근로의 의무, 제192쪽)

“언론 역시 각 매체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구체적인 재판 과정까지 문제 삼으며 법관의 독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법관의 독립이 비판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에 민주적 헌법국가에서 언론을 통한 비판은 사법부라고 해서 예외로 남겨 두어야 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특정한 재판 결과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진행 중인 재판의 담당판사 개인에 대해 이런저런 애기를 늘어놓는 것은 분명 법관의 독립에 대한 침해에 속한다”(제103조 법관의 독립, 제361쪽)

헌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쓴 책은 아니라서 학문적인 깊이가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이상 학문적인 깊이가 이 책의 무게를 가늠할 기준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이론적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법과 현실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잘 걸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차병직 변호사님의 유려한 글솜씨가 이 책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차병직 변호사님은 변호사(?)답지 않게 예술적이면서도 인문학적인 글 솜씨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면서도 지적이고 냉철하기 때문에 그가 쓴 책들은 독특한 향취를 뿜고 있는데 이 책은 그러하지 못하다. 윤재왕 교수님도 마찬가지다. 윤재왕 교수님은 법철학자로서 정교하고 이론적으로 매우 탄탄한 글 솜씨를 뽐낸다. 이 책에서는 약간 무디다. 어디 첫 술에 배부르랴. 이 책을 계기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더 많은 헌법해설서가 나오기를 고대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글 _ 윤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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