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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시각장애인# 장애인인권# 정당한편의제공# 차별

바꾸지 아니할 이유가 없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이중 부정(二重否定)은 ‘한번 부정한 것을 다시 한 번 부정하여 긍정을 나타내는 일’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긍정보다는 완곡하거나 강조된 긍정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해서 판결문에서는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일상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일상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분명 ‘바꾸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해 제목으로 이중 부정을 써봤습니다. ‘무엇을 바꾸어야 하나?’라는 설명을 위해서는 공감이 지원한 사건의 이야기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당사자가 공감을 찾아오게 된 것은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이 주관하는 국가 공인 ‘노인요양보호사’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으로 ‘대독과 대필’을 신청하였다가 ‘거부당한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사자는 시각장애인입니다. 등록된 장애 정도는 ‘경증’이지만, 의사 진단에 의하면 한쪽 눈은 명암만 구분할 수 있고, 다른 쪽 눈의 시력은 0.04 이하여서 사실상 ‘중증 시각장애’에 해당하며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대독과 대필’이 필수입니다.

선천적으로 무수정체인 당사자는 확대한 문제지를 제공받거나 시간 연장만을 통해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를 읽고, 정답을 표시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결국 대독과 대필을 제공받지 못한다면 사실상 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시원은 관련 지침 상 ‘대독과 대필’은 ‘중증 시각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으로 규정되어 있기에 ‘경증 시각장애인’으로 등록된 당사자에게는 ‘대독과 대필을 제공할 수 없다’라고 회신하였습니다. 의사진단서 제출에 의한 예외인정 가능성이나 이의절차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었습니다.

사실상 장애 정도는 ‘중증’임에도 불구하고 등록된 장애가 ‘경증’인 상황도 답답하지만, 그럼에도 당사자는 지금까지 정규 교육과정이나 다른 자격시험 등에서 ‘대독과 대필’을 제공받아왔기에 더욱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고 결국 공감에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편의’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실질적으로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 등을 고려한 편의시설·설비·도구·서비스 등 인적·물적 제반 수단과 조치를 말합니다.

공감은 국시원의 ‘대독과 대필 제공 거부 행위’는 당사자가 사실상 시험에 응시할 수 없도록 하는 중대한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는 점, 거부 행위의 근거인 관련지침은 당사자의 실질적 장애 특성 등을 고려한 예외사유나 이의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지 않아 정당한 편의제공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며, 여기서 비롯한 문제는 비단 당사자만의 사례가 아니라 반복될 수 있는 사안인 점 등의 문제에 공감하고, 화우공익재단,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 긴급진정을 준비하며 당사자가 정당한 편의를 제공 받아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권리를 구제하고, 향후 유사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이후 당사자 면담, 대책회의, 진정서 작성, 의사진단서 발급 등 필요한 작업을 차례대로 진행하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경증 시각장애인에게는 대독, 대필을 제공할 수 없다’고 답변했던 국시원에서 지난 3월 시험 응시를 위해 당사자가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제출한 정당한 편의제공 신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당사자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다만, 공감은 관련지침이 바뀌지 않았다는 현실을 돌아보며 향후에도 유사한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고민을 이었습니다. 결국 진정서를 작성하며 검토했던 내용을 담아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국시원에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문제 개선을 위한 지침개정 등을 요구하였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국시원은 현행 지침 및 정당한 편의제공 관련 문제를 인식하였으며 향후 지침전반을 검토하여 개선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다만, ‘언제까지, 어떻게 개선하겠다’라고 특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마음을 뒤로 하고, 공감은 국시원이 관련지침 상 예외인정 사유나 이의절차에 대한 내용을 ‘바꾸지 아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공에 흩뿌려지는 표현으로 사라지지 않고, 실질적 개선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계속 지켜볼 예정입니다. 함께 지켜봐주세요. 고맙습니다.

조미연

# 장애인 인권# 공익법 교육 중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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