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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국제인권# 국제인권센터# 해외한국기업

우리는 이렇게까지 좋은 집이 필요하지 않다

모퉁이를 돌자 빨간색 지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눈에 봐도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똑같이 생긴 수백 채의 건물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가지런히 늘어선 모습이 오전 내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차창 양 옆으로 지나간 집들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댐 프로젝트의 주역들인 한국 기업들이 주민들이 원래 살던 집보다 훨씬 좋다며 자부하던 신규주거단지였다. 이 주거단지는 어떻게 해서 지어졌으며, 주민들은 어떻게 해서 신규주거단지로 이주하게 되었는가?

2018년 7월 23일 밤, 라오스 참파삭(Champasak) 지방 볼라벤(Bolaven) 고원에 지어진 세피안-세남노이(Xe Pian Xe Namnoy) 수력발전댐의 완공 직후 시운전을 위한 담수 중 보조댐 중 하나인 Saddle Dam D가 무너졌다. 저수지에 담겨 있다가 무너진 댐을 타고 넘어온 어마무시한 양의 물에 고원 밑 아타프(Attapeu) 지방 사남사이(Sanamxai) 지구에 있던 6개 마을이 휩쓸려갔다. 공식 집계로 71명이 사망 및 실종되고,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드높은 절벽 너머에 거대한 저수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생활을 이어가던 주민들의 머리 위로 하룻밤 사이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사고 이후 댐 붕괴 원인, 관계 기업들의 사전대비와 사후조치의 적절성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주민들의 구제를 위한 여러 활동들이 있었다. 라오스 정부의 위탁을 받은, 세계적 댐 전문가들이 참여한 독립전문가위원회는 2019년 초 댐 붕괴가 자연재해가 아닌, 설계 및 시공상의 하자로 인한 인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한국 대기업인 시공사는 즉각 반발하였고, 댐 붕괴 원인과 주민들을 제때 대피시키지 못한 책임에 대한 진상규명은 거기서 멈추어 있다. 임시막사에서 지내면서 기본적 의식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피해주민들의 처참한 상황에 대한 해결이 늦어지는 점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던 중 코로나19로 라오스 정부가 해당 지역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면서 피해 보상 및 복구 현황 파악마저 어려워졌다.

공감은 사고 직후 구성된 라오스 세피안ㆍ세남노이댐 사고 대응 한국시민사회TF에 참여해왔다. 한국시민사회TF는 2019년 1월 유엔 기업과 인권 워킹그룹에 진정을 했고, 같은 해 6월 OECD 한국 연락사무소(NCP)에 이의제기를 하였다. 약 1년에 걸친 심사 및 주선 끝에 NCP는 기업들에 이의제기자들이 제기한 쟁점에 관한 협의채널을 구축하여 지속적인 대화를 이어갈 것, 사고에 대한 피해복구 및 구호활동 내역, 피해주민들의 보상내용, 사고방지대책 등에 대해 이의제기자들에게 성실히 설명할 것 등의 권고를 하였고, 이에 한국시민사회TF는 관련 기업들과 한차례씩 면담을 했다. 해당 면담에서 한국 기업들은 주민들에 대한 피해보상을 거의 완료했고, 피해주민들을 위해 지어지고 있는 주거를 건설 중이고, 2021년 말까지 완공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세피안세남노이댐 붕괴 4주기를 앞둔 2022년 7월 22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4년이 지나도록 생존자 원상회복을 위한 진전의 부재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피해주민들의 피해보상 및 회복 현황을 직접 파악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이에 공감의 황필규, 박영아 변호사와 법무법인 지향의 신유정 변호사는 기업과인권네트워크 실태조사 일환으로 2022년 9월 10일부터  19일 사이 라오스를 방문하였다. 방문기간 및 그 전후 한국 기업 관계자, 현지 피해주민과 이장, 라오스에서 일하는 유엔개발계획(UNDP), UN Habitat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관계자, 태국에 사무소를 둔 국제 환경과 인권단체 활동가와 라오스의 법 전문가들과 만났다.

라오스로 떠날 때만 해도 피해 주민 대부분이 여전히 임시주거단지에 살고 있는지, 보상이 다 마무리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주된 과제라고 예상을 했었다. 그러나 현지에서 맞닥뜨린 상황은 달랐다. 기업들의 설명대로 신규주거단지는 완공을 거의 눈앞에 두고 있었고, 보상은 6가지 항목 중 한 항목을 제외하고 완료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는 주민들의 삶에 맞추어 지어진 원래 집이 규격화된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고, 키우던 가축 등 삶의 일부였던 것들 중 일부가 손해사정인이 산정한 “객관적” 현금가치로 환원되었음을 의미할 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전에 살던 곳은 강가였다. 고기잡이도 할 수 있고, 주변에서 식량을 구할 수 있었다. 지금 주변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A임시주거단지 거주 주민)

“정부한테 신규 농경지 2헥타르를 받았다. 그런데 거기에 기업이 하는 농장이 생겼고, 정부가 1헥타르 당 연 100만 키프(약 10만원) 받을 수 있는 임대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였다. 농장은 농약을 많이 쳐서 머리가 아파 거기서 일을 못한다.” (A임시주거단지 거주 주민)

“정부가 집을 준다니까 영구주거단지에 들어가지만 마음속으로는 원래 살던 데로 돌아가고 싶다.” (A임시주거단지 거주 주민)

“2023년부터 기업이 피해가구들이 신규로 받은 땅을 개발하기로 되어 있다. 주민들은 임대료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고, 기업은 투자하는 방식이라 한다.” (신규주거단지 이장)

“원래 집은 생활방식과 필요에 맞추어 지었는데 새집은 규격화되어 있고, 생활방식에 맞지 않아 불편하다.” (신규주거단지주민)

“새로 받은 경작지는 기업과 2년 임대계약을 체결했다. 1헥타르 당 100만키프를 받는 내용이다. 그것도 다 받지 못했고, 올해 임대차계약이 만료된 상태여서 직접 경작을 하고 있다. 카사바를 심었는데 아직 수확을 못했다. 임대보다는 직접 경작을 원한다.” (C임시주거단지 주민)

“전의 집은 주변에서 물고기도 잡고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많았다. 주변에서 다 해결할 수 있어서 기름값 들 일도 없었다.” (C임시주거단지 주민)

“주민들 생계 이어가는 게 중요한데 그런 게 해결이 안되고 있다.” (신규주거단지 주민)

“예전에는 집 주변에서 생계를 많이 해결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집 하나만 있다. 무얼 하려면 멀리 나가야 하고 집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다.” (신규주거단지 주민)

“집은 좋은데 라오스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맞지 않다. 이렇게까지 좋은 집이 필요 없다.” (신규주거단지 주민)

라오스는 농경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인구의 상당수는 논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한다. 하룻밤 새 집과 농경지를 잃은 사남사이 지구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과 만나기 위해 끝없는 논이 이어지는 흙길을 한참을 달렸다. 길가에 있는 집들은 텃밭과 논에 둘러싸여 있었고, 소와 닭, 개와 돼지들은 자유롭게 풀을 뜯으며 돌아다니거나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바둑판 모양으로 가지런히 구획된 대지 위에 같은 모양의 집들이 도미노처럼 이어진 신규주거단지와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주민들의 얘기를 듣고 나니 차이는 더 명확해졌다. 이들에게 집과 일터, 사는 곳과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곳은 원래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생계와 생존을 논과 강 등 집 주변 자연에 의존해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반면 신규주거단지는 원래 우림이었던 곳을 개간하여 마련된 허허벌판과 같은 대지 위에 지어졌고, 주민들에게 배정된 것은 집, 그리고 집 주변 사각형 모양 약간의 대지 정도여서 말 그대로 집과 주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원래 농경지에서 일하려면 5-10km를 경운기나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치솟는 기름값에 비용도 비용이지만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생활방식 자체가 바뀐 것이다.

원래 농경지를 스스로 복구할 수 있었던 주민들은 상황이 그나마 나았다. 물살을 정통으로 맞아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마을 두 곳은 4년이 지나도록 원래 농경지에서 물이 빠지지 않아 복구되지 않고 있었다. 정부는 신규 경작지를 배정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우림을 벌채해서 마련한 땅이어서 논농사를 지을 수 없고, 상품작물인 카사바 또는 바나나 재배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마저도 정부가 주민들로 하여금 기업에 임대하여 임대료를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정책을 고안하여 확산시키려는 것으로 보였다. 한편, 카사바와 같은 상품작물을 연속적으로 심을 경우 땅이 기력을 잃어버려 수확량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기업이 카사바를 2년간 재배한 후 땅을 주민에게 돌려준 사례는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했다. 어쨌든 간에, 신규경작지가 주민들에게 지속가능한 생계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세피안 세남노이 댐 프로젝트는 한국의 대기업과 공기업이 투자를 하고, 시공을 하고, 댐 운영을 담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적개발원조(ODA) 명목으로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이 투입된 사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피안 세남노이 댐 프로젝트는 결국 수몰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원래는 댐과 아무런 관련이 없던 주민들까지 이유 없는 강제이주를 당해야만 했고,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생활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유일한 생계수단마저 박탈당한 상황이다. 공적개발원조의 최대수혜자가 과연 누구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아니면 “대외경제협력기금을 통한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이 당연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물을 것도 없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한 것일까.

박영아

# 국제인권센터# 빈곤과 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