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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성소수자# 차별# 차별금지법

성소수자 행사에 대한 대관 취소, 손해배상 책임 인정 –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한 차별은 위법행위, 그 자체로 손해 인정

학부 재학 중 기독교 학교 내에 성소수자 모임을 동아리로 만들어 볼려고 몸과 맘을 굴려본 적이 있다. 3월이면 여러 동아리 연합회 소속 단위들의 신입생 모집 현수막이 부러웠었다. 그래서 3층 정도의 학생식당 건물 길이의 현수막을 직접 그려서 걸기로 마음 먹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숨어서 몰래” 그렸다. 느지막히 어둠이 깔린 학생회관 옥상에서 열심히 숨어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몰래 걸고, 숨죽여 지켜봤다(사람들의 반응을). 재미있기도 했지만, 서러운 기억이기도 하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를 상영하려는데 학생처에서 허가가 안나서 총여학생회 이름으로 장소를 빌리거나 전공과 교수님께 부탁해 과 행사로 ‘포장을 다시해’ 상영기기를 빌린 적도 있다. 역시 서러운 기억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로부터 20년 정도가 지난 것 같은데 상황은 나아졌나? 2019년 첫 회사 생활(공감)에서 맡게된 업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의뢰한 법률자문이었다. 한 학교가 학내 성소수자동아리의 강의실 사용을 불허한 것에 대해 학생들이 인권위에 차별진정을 제기하였던 사건으로, 이것이 차별에 해당할 것인지를 검토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그 학교’였다.

 

성소수자들의 차별에 대한 적극적 문제제기

변한 게 있다면, 성소수자 개인, 모임, 단체는 이런 대우에 더 이상 가만있지 않는다. 퀴어여성네트워크는 제1회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를 열기 위해 2017년 동대문구체육관 대관 신청을 했다가 일주일 후 돌연 취소 통보를 받았다. 허가를 내줬던 동대문구 시설관리공단 측은 ‘민원이 들어온다’ ‘왜 성소수자 행사라고 말해주지 않았냐’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더니 결국 “천장 공사가 예정돼 있다”며 대관 취소를 통보했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가인권위에 차별진정을 하여 차별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차별행위도 불법행위에 해당해 손해배상청구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이어져 오던 차에, 해당 사안을 민사법정으로 가져가기로 결정을 했고 공감도 공동대리인단에 참여할 수 있었다. 동대문구, 구 시설관리공단, 개별 공무원을 피고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한 차별은 위법행위, 그 자체로 손해 인정

사건의 쟁점은 차별의 고의성(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하려는 고의로 대관을 취소한 것인지,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취소인지), 차별이 위법행위인지, 차별로 인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단체와 개인들이 직접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는지, 위자료 인정 시 그 범위 등이었다.

1심 법원은 대관 취소 사유가 합리적 이유가 없었다고 보아 대관 취소 행위가 위법하다고는 인정하면서도 원고들에게 손해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보아 전부 기각 결정을 하였다. 하지만 2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동대문구와 시설관리공단의 대관취소가 단지 근거 없이 이루어진 것만이 아니라 체육대회 예상 참가자들이 성소수자인 것을 이유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는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반하는 불법행위임을 분명히 확인한 것이다. 또한 원고들이 받은 손해에 대해서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을 이유로한 차별로 인하여 원고들이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권을 침해받은 것 자체를 손해로 보고, 나아가 원고 언니네트워크는 대관 취소로 결국 체육대회를 개최하지 못함에 따라 단체의 목적을 달성할 기회 박탈, 사회적 신뢰 저하 등의 손해도 입었다고 보았다. 손해인정과 함께 재발을 방지할 필요성 등을 인정해 피고들에게 총 9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언제까지 미룰텐가?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퀴어여성네트워크측은 이번 사건을 한 언론인터뷰에서 “이기는 경험”이라고 이야기했다. 단순한 공공시설 이용, 공간 대여, 행사 불발의 문제가 아니다. 숨어라, 숨겨라, 숨죽여라와 같은 말이다. 학습된 무력감은 평소 티가 안 나다가, 문득 삶에서 빛을 앗아간다. 그렇게 두지 않겠다는 구조 신호를 받은 기분이라 정신이 번쩍 든다. 원고들이 쏘아올린 이번 사건과 함께한 모두의 경험(피고도 법원도 좋은 경험삼아)을 통해 성소수자 단체나 개인을 상대로 한 차별 행정에 제동이 걸릴지 지켜볼 일이다. 2021년, 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에 대해 사회적 해악을 끼친다며 법인설립허가를 거부했다. 행정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서울시인권위원회의 시정 권고가 이어졌지만, 서울시측은 성소수자인권증진이라는 사업목적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반박했다. 이어서 2022년 서울시는 서울 퀴어문화축제조직위의 서울광장사용 신청에 대해 답하지 않고 있다. 7월 16일 광장을 열기 위해 1인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언제까지 빛을 되찾기 위해 누군가 소송을 결심하고, 거리에 나서야 하고, 끼니를 굶고도 웃거나 울어서 넘길 일로 취급해야 하나? 차별금지법을 통해 쏘아올려질 수많은 빛을 더 절실하게 기다리는 요즘이다.

 

[관련기사] 경향신문 ‘이기는 경험’을 쌓다 ··· 성소수자 여성들, ‘체육관 대관 차별’ 동대문구에 승소하기까지

 

백소윤

# 여성인권# 성소수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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