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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여성인권# 이주여성

사장님의 불법촬영 범행 신고한 이주여성노동자 지원 사건의 결말 -117건의 추가 범행 발견 실형 선고, 하지만 피해자는 결국 출국

그녀가 일하는 공장의 화장실은 1개, 남녀공용이었습니다. 그녀는 평소 습관대로 볼 일 보기 전 물을 한 번 내리고 일을 보려다가 무심코 돔형태의 화변기 머리 안쪽을 보았는데, 거기서 검은색 장치를 하나 발견합니다. USB형태의 휴대용 소형 카메라였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지인의 도움을 받아 바로 경찰에 신고 했습니다.

그 날 화장실에서 불법카메라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발견하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면, 신고를 다시 취소했다면, 그녀는 예년처럼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5월 정도에 잠시 고국인 몽골로 출국했다가 몇 개월 뒤 이 공장 사장님의 재초청을 받아 한국에 들어와 사건이 발생했던 공장에서 일할 수 있었겠지요(관련 글 바로보기: 성폭력 가해 사장을 신고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그러면 몽골의 가족에게 생활비도 계속 보내고, 은행 빚도 갚고, 할 수 있었을 텝니다.

하지만, 그녀는 경찰에 신고 했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짧고도 긴 시간 사이, 그녀를 사무실로 부른 것은 ‘사장님’이었습니다. 애원인지 협박인지 알 수 없지만 무서웠던 말. “신고하지 말아라”는 사장의 말에 검은색 장치를 설치한 것이 사장님이라는 걸 알게 됐고, 현장에 도착해 문을 열어달라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공장을 나왔습니다. 그게 마지막 퇴근이 될 거라는 건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지난한 과정이 시작됐습니다. 경찰서에 가 변기에서 발견한 물건에 대해 진술했지만, 그 카메라에 촬영된 것이 무엇인지 알 방도는 없었습니다. 재입국 혜택을 위해 참아온 사장님의 숱한 성희롱과 성추행도 떠올랐습니다. 그것도 신고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경찰은 한 번에 한 가지 피해만 집중해서 이야기하라고 재차 말했습니다. 피해자국선변호사가 선임되었지만, 공감 소속 변호사가 피해자변호사 위임장을 제출하고 수사기록을 열람을 할 때까지 그녀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피해자변호사에게 사장의 카메라 구입 및 설치 사실은 확인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피해자가 카메라를 너무 빨리 찾아내는 바람에 “피해촬영물이 없다”는 이유로 불법촬영은 미수거나 무죄가 아니겠냐는 말을 했습니다. 사장은 간단한 조사 후 다시 공장으로 돌아갔고, 그녀는 공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무섭기도 했고, 이제 그 화장실 뿐 아니라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퇴사를 결정했고, 재초청을 통한 재입국 및 재취업 기회는 물거품이 됐습니다.

그녀를 지원하기 위한 연대체가 결성됐습니다. 공감도 그 일원이었죠.

공장에 있는 사장의 컴퓨터에서 추가 불법촬영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2004년경의 촬영물만 발견되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었습니다. 집이나 다른 장소에 있을 수 있는 저장매체에 대해 광범위한 수사를 요청하고, 상습적인 강제추행에 대해 형사고소를 준비했습니다. 몽골출신 상담활동가 두 분이 특히 애써주셨습니다. 그녀는 힘든 기억을 되 뇌이며 언론사를 만나 인터뷰에 응하고 부당한 상황을 알렸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 등으로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 조사를 받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재입국특례제도의 문제점을 바로잡아달라는 진정도 하였습니다.

경찰은 성적목적다중이용시설 침입죄와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미수 혐의에 한 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였습니다. 피해자변호사 의견서에 불법촬영 추가 범행을 밝히기 위한 적극적 수사 필요와 상습 강제추행과 관련한 간접정황들을 상술하여 검찰에 전달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재입국특례제도의 문제점 등에 적극 관심을 가진 검찰이 보완 수사를 명하면서 사건은 다른 국면을 맞이합니다.

그녀가 신고를 하고 7개월이 지난 10월 말, 불법촬영 미수로 끝날 뻔한 사건이 구속사건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보완 수사를 통해 2014~ 2015년 사이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촬영된 117 건의 불법촬영물(그리고 다수의 피해자)이 추가로 발견되었습니다. 강제추행 혐의도 추가되어 공소 제기되었습니다. 피고인(사장) 측은 불법촬영의 점은 반성하지만, 강제추행의 점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하다가 “피해자가 그렇게 오해했을 수 있다”고 인정 아닌 인정을 했습니다. 검찰은 장기간 이뤄진 디지털성범죄로 피해자가 다수인 점, 촬영된 신체부위, 사용자의 지위를 이용한 추행 등으로 보아 죄질이 좋지 않은 점을 들어 징역 7년을 구형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취업비자 기간 만료로 다른 사업장에서 일을 할 수도 없고, 기타 비자로 단시간 일을 하려 해도 화장실 이용이 두려워 포기해야 했습니다. 남편과 친정식구에게 숨기고 싶었지만 피해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몽골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야 하는 생활비, 갚아야 하는 은행 빚, 한국에서의 체류비와 몽골로 출국하기 위한 비용까지 감당하는 것이 막막했습니다. 한국에서 더 버티기는 어려웠고, 결국 한국을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가 출국하고 두 달 반이 지난 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정도가 지난 2월 중순 1심 판결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피고인 측은 피고인이 장기간 구금될 경우 피고인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다른 이주노동자들에게 재초정의 기회를 앗아가는 일이라며 선처를 구했습니다. 또 피해자의 퇴사는 자발적인 것이고 피고인이 어떠한 불이익을 준 적이 없음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피고인은 사용자의 지위에 있음을 이용하여 외국인 노동자인 피해자가 취업 및 입국혜택을 받기 위하여 계속 근무하여야 하는 궁박한 처지에 있음을 기회로 피해자를 추행”하였다고 인정하고 장기간 불법촬영 행위는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고, 피고인의 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이 마땅하다”고 평가하였습니다. 또 형사사건에서 다뤄지지는 않았으나 피해자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이 사건 범행 외에도 외국인 근로자를 희롱하였던 정황이 엿보인다”는 점을 피고인에게 불리한 사정으로 참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자백과 반성하고 있는 점, 초범인 점, 피해자와 합의에 이른 점 등이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되었습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형사합의가 양형에 미치는 강력한 힘을 또 확인하게 됩니다. 그녀는 이미 재취업의 기회를 잃었고, 경제적인 손해 뿐 아니라 심리적 상흔을 얻었습니다. 피해자변호사로서 합의 의사를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합의가 아닌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만류 했겠지만, 그녀에게 제시할 더 나은 선택지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합의에 응하였습니다.

피고인이 저지른 범죄의 대상이 된 수많은 피해자들 중 1인과의 합의일 뿐인데, 전체 범죄의 비난 가능성을 한꺼번에 낮춰버린 것은 아닌지, 그녀가 많은 것을 감수하고 버틴 지난한 1년의 과정이 이렇게 끝나버려도 되는 것인지, 허무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녀의 신고가 없었다면, 계속됐을 범행. 범행은 멈췄지만, 그녀의 한국생활도 끝나버렸습니다. 사건을 지원했던 연대체 구성원들의 진심과 미약하지만 실형 선고라는 결론이 그녀의 일상을 다시 세우는 힘이 됐길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이 사건은 피고인과 검사 쌍방 항소로 항소심이 진행 중입니다. 그녀는 한국을 떠나고 없지만, 사건을 계속 지켜볼 예정입니다.

백소윤

# 여성인권# 성소수자 인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