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 공익법 교육·중개

[월례포럼] 소비가 아닌 관계, 공정여행

 숨 막히는 일상 속에 갇혀 사는 현대인은 탈출구를 찾는다. 여행 역시 탈출구 중 하나. 그곳에 가면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와 낭만을 만끽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렇게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여행하라』의 저자 임영신 작가와 함께한 7월 월례포럼은 조금은 불편한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임영신 작가는 묻는다. 우리가 현실로부터 탈출해 온 그곳이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당신의 웃음 너머에 있는 그들의 고통과 비참한 진실을 알고 있느냐고.

 


1. 당신의 웃음 너머




“포터는 짐 나르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들의 편안한 트래킹을 위해 포터들은 하루 3-4달러의 일당을 받으며 자신의 몸무게를 넘는 짐을 지고 히말라야를 오른다. 그들의 등에는 온갖 등산 장비들은 물론 파라솔, 벤치, 텐트, 가스통, 밥솥 등 상상하지도 못할 짐들이 얹혀있다. 히말라야에 올라가서 밥을 지어먹고, 파라솔 밑에서 우아하게 티타임을 갖고 싶다는 관광객들의 환상은 포터의 등에 새로운 짐으로 얹어진다. 포터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등짐의 무게는 노새가 질 수 있는 짐의 무게에 육박하는 50kg를 족히 넘는다. 250~300루피(약 4~5천 원)의 일당에서 밥값과 숙소비까지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포터들은 조금이라도 많은 돈을 집에 가져가기 위해 하루에 두 끼만 먹고 식당 바닥이나 창고에서 잠을 청한다. 고어텍스 등산복으로 중무장한 관광객들과 달리 포터는 폭우가 쏟아져도 비닐을 둘러 쓸 뿐이고, 등산화가 없어서 동상에 걸려 발을 절단하기도 한다.



 27살의 포터 시암 바아두르에게 고산증이 찾아왔을 때, 그를 포터로 고용한 여행자들은 그에게 비상금도 주지 않고 혼자 산을 내려가라고 했다.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된 시암은 구조센터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얼마나 많은 포터들이 네팔의 트래킹 코스에서 죽는지는 알 길이 없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외국인의 경우 그들의 죽음은 거대하고 대단한 것으로 보도되곤 하지만, 이 죽음들은 보도되지도 알려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함께 등반하는 관광객들, 그들의 리더마저도 그가 없어졌다는 것을 모른다.



 히말라야 관광객들에게 포터는 ‘관계’를 맺을 대상이 아니라 ‘소비’할 대상일 뿐이다. 일정한 비용을 지불한 이상, 그들의 삶과 인권은 관광객들에게 관심 밖의 문제가 된다. 포터들이 짐 나르는 도구가 아니라 고통을 느끼고 동상에 걸리며 고산증으로 죽을 수도 있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은, ‘관계’가 아니라 ‘소비’인 여행 속에서 이렇게 외면당한다.


 


“천국을 위해 삶을 내어준 몰디브 사람들”


 


 신혼여행지 1위, 꿈의 낙원이라 불리는 몰디브의 주민들은 여행객들의 꿈같은 휴식을 위해 삶의 터전을 내어줘야만 했다. 지난 35년간 몰디브를 독재하고 있는 대통령이 외국 자본과 손잡고 100여개의 섬을 팔면서, 어업에 종사하던 현지 주민들 대부분이 관광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UN의 보고에 따르면, 몰디브 주민 43%는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아동의 30%는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 머무는 여행자들이 하루에 쓰는 돈은 현지 주민의 한 달 월급에 달한다고 하건만, 그토록 많은 여행자들이 방문하건만, 왜 여전히 그들은 가난한 것일까?



관광객들은 몰디브에서의 달콤한 휴식을 누리는 데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돈의 대부분은 독재 정권과 외국자본에게 돌아가고, 독재를 공고화시키는 자금줄로 사용된다. 몰디브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광객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알지도, 알려하지도 않는다.


 


 


2. 새로운 여행을 위한 상상력




“서로를 깊이 존중하고 배우며, 그 만남과 머무는 시간이 공동체와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을 꿈꾸다”


 


 빨간약을 삼키고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온 네오처럼, 여행의 낭만 너머에 숨겨진 뼈아픈 진실들을 알게 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예전처럼 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고, 다시는 여행을 하지 말아야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답을 찾지 못해 당황하는 사람들에게, 임영신 작가는 여행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꿔야하는 문제라고 환기했다. 여행이 ‘떠남’이 아니라 ‘만남’이라는, ‘어디로’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라는, ‘소비’가 아니라 ‘관계’라는 시선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여행은 이미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글로벌 익스체인지는 여행을 통해 거대한 지구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여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해마다 12월에 파라과이의 공정무역 커피 농장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를 바탕으로 공정무역 캠페인을 벌여나간다. 또한 미국의 점령으로 고통 받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미국이 적대적 대외정책을 펴고 있는 이란과 북한, 쿠바 등을 넘나들며, 커튼 뒤에 가려진 사람들의 삶을 마주하고 점령의 실체를 증언하며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한편 평화의 배, 피스보트를 타는 사람들은 ‘관계맺음’을 통해 세계의 진실을 찾고 있다. 피스보트를 처음 시작한 것은 일본 와세다 대학 학생들로, 그들은 일본 정부가 한 일이 침략인지 진출인지 그 진실을 찾기 위해 아시아에 찾아가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천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피스보트를 타고 지구 일주 크루즈를 하며, 서로 문화와 역사를 교류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고와 보스니아, 파키스탄과 인도, 남한과 북한 역시 피스보트를 통해 만나게 된다. 그리고 경계를 넘은 만남은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앞서 살펴본 히말라야에서도 희망의 씨앗은 자라나고 있다.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트래킹 여행사인 쓰리시스터즈 여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전까지 여성이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성이 등산을 하면 재수가 없다고 여겨졌고, 여성 여행자 혼자 남성들 사이에서 등산하다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쓰리시스터즈는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여행사를 만들었다. 쓰리시스터즈의 활동은 여성 관광객뿐만 아니라 네팔 현지 여성에게도 희망이 되고 있다. 여성들이 교육도 받지 못하고 아무런 사회적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네팔에서, 2년 동안 여성들을 전문 가이드로 훈련시켜 자립을 돕고 있다.


 


 


3. 공정여행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일탈에 방점을 두는 여행이 아닌, 현지 공동체와의 만남과 관계맺음에 방점을 두는 여행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티베트 학살 사태가 일어났을 때 국내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시민단체가 아니라 티베트 여행 동호회였다. 티베트를 다녀온 사람들은 티베트를 잊지 않고, 팔레스타인을 다녀온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을 잊지 못한다. 여행을 통해 새롭고 일상적인 국제 연대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여행은 결코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은 생각의 전환만으로 시작할 수 있다. 히말라야 트래킹 상품을 선택할 때 포터들에게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트래킹 후 필요 없는 등산장비를 포터들을 위한 의류은행에 기증하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제주도 강정마을을 여행하면서 주민들의 식당에 가서 마을 상황을 듣고, 도지사와 정부, 해군에게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글을 보내보자. 새로운 여행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공감지기

연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