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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이주와 난민

[이주] 도쿄에서 만난 이주인권 변호사 및 단체들 – 장서연 변호사

 


 


도쿄에서 만난 이주인권 변호사 및 단체들


 


서연 변호사


 


2008 1215부터 1219일까지 45일 동안 송현정 인턴과 함께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이번 방문은 도요타 재단의 지원을 받아 공감이 진행하고 있는, 한국필리핀일본 3국의 이주민 인권을 위한 변호사 네트워크 사업을 위해 일본 측 파트너를 만나기 위한 방문이었다.


 


이주의 흔적


 


이번 사업의 대상은 필리핀에서 한국, 필리핀에서 일본의 이주과정이지, 한국에서 일본으로의 이주과정은 사업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일본에서 만난 처음의 낯선 경험은 한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존재였으며, 일본인과 결혼하여 일본으로 이주한 한국계 결혼이민여성의 존재였다. 나는 막연히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계라고 한다면, 재일동포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가나카와시 노동조합(KCU) 사무실 벽에는 온통 노조 초창기 때부터의 조합원들 및 활동사진들이 붙어있었는데, 사진 속 조합원 상당수가 한국인 이주노동자였다. KCU와 한국인 노동자의 인연은 1989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한국에 진출하였던 한국 스미다가 한국공장을 정리하면서 팩스 한 장으로 전사원을 해고한 것이 발단이 되어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본에 원정투쟁을 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에 한국인 노동자들의 통역을 도와줬던 한국계 결혼이민여성인 마리아 히라마 마사코(한국명 방정옥)님은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한국인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직도 KCU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한국 역시 아시아의 주요한 이주 송출국이었다는 역사를 쉽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 온 이주 노동자들이나 결혼이민여성들을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차별하고 잔인하게 대한다. 심지어 중국동포에게 까지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사회 역시 현재 이주노동자의 상당수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일이백년 전에 일본에서 중남미로 이주해 간 이민자들의 후손들인데, 한국의 중국동포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주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고 역사가 있다. 시장경제의 세계화로 인하여 점점 나라별 자원의 불균형은 심화되는데, 여전히 사람의 이주만은 엄격히 통제하고, 그 통제를 통하여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 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만 착취하고자 한다. 이제는 우리도 공평정의에 대한 관점을 국적을 넘어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일본의 인권변호사들


 


공감에 들어와 변호사가 된지 2, 그 동안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여성의 문제들을 고민해 왔던 새내기 변호사로서 이주 및 난민과 관련한 활동을 많이 해 온 일본의 변호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


 


특히, 동경변호사회 외국인 권리에 관한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코다마 코이치 변호사의 경험과 활동들, 100여명의 변호사로 이루어져 있다는 일본의 전국난민변호단연락회의(전난연)의 존재는 공감에서의 나의 경험들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공감변호사이자 인권변호사로서 어떻게 활동을 해야 할지 고민을 더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방문에 만난 일본 변호사들과 단체들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1.       동경변호사회 외국인권리에관한위원회 (코다마 코이치 변호사)


2.       쇼고 와타나베 변호사, 도쿄퍼블릭법률사무소


3.       일본인필리핀인 아이들을 위한 시민네트워크(JFC), 국제이주기구 일본사무소(IOM)


4.       가나가와시 노동조합(KCU), SMJ 등과 정부부처 교섭현장


5.       일본난민지원협회(JAR)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일본에 출장 갈 무렵 조금 지쳐있었던 것 같다. 공감에서 일을 한지 이제 겨우 2.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향상을 위한 법제개선, 변화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이 앞으로도 크게 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작년 말 차별금지법이 좌초되고, 5년 전에 했던 출입국관리법 개정 주장을 아직까지 되풀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외국인에 대한 차별정서, 특히 불법체류자에 대한 혐오정서는 더욱 노골화되고 있고, 정권교체 후 탄력 받은 출입국의 비인간적인 단속과 구금들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정권교체 후 민주주의가 후퇴하였다고 평가를 받고, 여당을 포함한 보수당이 국회 의석수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마당에, 3-4년 동안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인권 향상을 위한 법제개선은 물 건너 간 것은 아닌지, 개악법들에 대하여 선방이나 잘하면 다행인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가사 우리가 원하는 개정법이나 제정법이 통과된다고 한들, 과연 그 법이 당사자들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회의도 들었다. 공감에서 몇 번의 작은 승리들, 승소한 사건들도 있었지만, 그 소송들도 당사자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삶을 변화시키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많았다. 이런 저런 고민들로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다시 내 마음을 붙잡은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20-30년 동안 한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과 단체들의 존재였다.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젊은 세대가 없는 것이 고민이라고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제 2년차인 새내기 변호사 입장에서 70세가 넘도록 현장에서 같은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의 존재는 커 보였다. 시작은 해변가에 모래성을 쌓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들이라고 평가 받았지만 20-30년이 쌓이면 분명 변화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생각지도 못한 곳에, 공감이 뿌려 놓은 씨앗들이 꽤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공감 일이라고 기꺼이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의 존재는 그 동안의 공감의 성과이자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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