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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부자 인터뷰] 지금 보이는 것은 생각보다 가깝다- 고은아 기부자님

 




 


 


이번 주도 나름대로 잘 살아내었다는 안도감과 주말을 앞둔 묘한 설렘이 함께 밀려오는 금요일, 딱 그만큼의 편안함과 두근거림으로, 고은아 기부자를 만났다.



 


 


기부란 ‘자기가 임의로 책정한 조세’다


 


“공감을 알게 된 건 아주 자연스러워요.” 공감을 알게 된 경로와 기부를 결심한 계기를 물었더니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제가 연수원 33기인데, 우리 기수 때 공감이 처음 만들어졌거든요. 연수원 내에서도, 공익 활동을 과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담당하는 변호사 업무에 대한 고민들이 많았고, 공익 활동을 전담하는 변호사 그룹에 대한 필요성을 알고 있었어요. ‘직접 참여를 하지 못할지라도, 옆에서 좀 도와는 줘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들은 다들 하고 있었죠.”


 



고은아 기부자는 정기기부 외에 특별기부도 한다. 열심히, 지속적으로 공감을 후원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녀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손발이 오그라드는 건데”라며 말문을 연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나는 직접 참여를 하진 못하지만 수고한 친구들한테 도움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고…… 이건 연수원 시절에 처음부터 생각했던 부분이라 오히려 생각보다는 소홀한 면이 많아요. 그냥 한 달에 얼마씩 내다가, 연말에 소득정산 할 때 ‘아차!’ 싶고 ‘어이쿠 부족했구나!’ 하면서 조금 더 하는, 그 정도 수준이고. 아마, 아직까지 공감의 살림살이(규모)가 크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 기부란 “자기가 임의로 책정한 조세”다. 내가 하는 영역의 상당 부분이 국가에 의해 보조가 되고 유기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조세를 내는 것과 같은, ‘부담금’의 의미이다. 그녀는 “제 소득이 창출된 것은 물론 제가 하는 일에 의한 것이지만, 거기에는 직·간접적인 네트워크에 의한 ‘다른 사람들의 기여’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렇다면  나 말고 사회가 나에게 기여한 부분에 대해서 부담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조세율을 자기 멋대로 책정할 수 있고, 사용처에 대해서도 자기가 판단할 수 있으니 좋고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또한 “기부는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도, 그냥 베푸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라며 ‘나에게 기여된 것에 대한 것’임을 강조한다.



 


 


변호사로서 기부를 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변호사 강령에 보면, 변호사들은 1년에 일정한 시간을 공익 활동에 쏟도록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부분은 ‘최소한이죠.” 그녀는 변호사들은 변호사법이나 변호사회 규칙에 적혀있지 않더라도 공익 활동에 어느 정도는 할애를 해야 될 의무가 있는 것이고, 자신도 그런 의무 중 일부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자기조세’로서, 다른 변호사들도 마찬가지로, 서로 (비록 직접적 ․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희망이다.”




그녀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였고, 기자 생활을 하다가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다소 특이해 보이는 이력을 두고,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잇는다. “제가 85학번이거든요. 이제는 별로 안 좋아하는 말이기는 한데, 486이라고 흔히 그러잖아요? 그런 시대적 환경 상 경력이 독특할 순 있어요. 그런데 경력이 독특한 것과 사람 자체가 ‘버라이어티’한 것은 다르죠. 그 때는 흔히 그러하듯이 학생운동을 하고, 잠깐 현장도 경험하고, 기자 생활을 하게 되고. 이런 것들이, 나름대로는 굉장한 ‘모범생’인 삶을 살았던 거예요. ‘사회과학 공부를 하고, 세미나를 하고, 활동을 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현실을 고민하고. 그러면서 논리적으로 봤을 때 옳다고 한다면, 스스로에 대해서 합리화시키지 않는 이상은, 내가 아는 그대로 행동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거죠. 지금 보면 독특할지 몰라도, 그 때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흘러갔어요.”



 


그녀는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말을 인생의 지표로 삼고 있다며, “남는 건 사람밖에 없어요.”라고 부연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는 사회’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그녀. 그녀의 소망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는 생각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바라다



 


기부자로서, 혹은 변호사로서 공감에 바라는 점은 없을까? “지금 잘하고 있고, 칭찬도 많이들 하시던데…….” 하고 망설이다, 공감에 대한 진심어린 마음을 내민다. “사람들은 변호사를 ‘산다’고 표현해요. 이 말에는, 첫째로는 변호사를 사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뜻이, 둘째로는 변호사들은 돈에 의해 움직인다는 식의 좋지 않은 생각이 담겨있죠. 그리고 변호사를 살 돈이 없다는 문제가 있겠고요. 그래서 변호사에 대해서 안 좋은 생각을 가졌던 분들이, 공감에 와서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은, 공감 변호사님들이 사건 경험이나 업무량 측면에서 다른 변호사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단지 ‘우리 편이 되어주는 변호사’가 아니라 업무수행능력에서의 전문성을 같이 고민해서 ‘돈 주고 사는 변호사보다 더 낫구나!’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해요.”



 


더불어, 젊은이들에게는 “의도적으로라도, 지금 내가 있는 데서 한 발짝 물러나서 사고의 폭을 넓혀보려는 생각, 만약에 내가 다른 길을 간다고 하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고 전한다. “대학 교수인 친구가, 한 번은 강의 중에 학생들의 모험 의지가 어느 정도나 되나 설문조사를 해봤대요. 그런데 그 결과가 아주 극단적이라 깜짝 놀랐어요. 사고방식 자체가 위험을 회피하고 안전을 선호하는, 모험을 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던 거죠.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우리 교육제도 자체가 굉장히 경쟁적이라 어렸을 때부터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만회하기 힘든 구조니까요. 영어로 표현하면 ‘second chance’가 주어지지 않으니 위험 회피적일 수밖에 없게 되죠. 그래서 사고의 폭도 좁아지고요.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고민들을 좀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러지 않으면 지금 갖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봐요. 지금 있는 데서, 그냥 주어진 대로, 마치 끌려 다니며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겠죠.”



 


 


말하다


 



인터뷰를 마치며, 인권과 법에 대한 정의를 요청하였다. 예상 밖의 참신한 비유에 한 번 놀랐고, 세심한 설명에 두 번 놀랐다.


 


인권이란? [상수원]이다!



 



“인권을 천부인권이라 하여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만, 현실에 와 보면 재산권이 인권보다 위에 있는 경우도 많고, 오만 것에 다 치이죠. 너무 자연스럽게 생각하다 보니까 또 너무 자연스럽게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 물처럼 자유롭긴 하지만 상수원을 지키듯, 인권도 최소한의 우리가 지켜야 할 영역으로 봐서 그 한도 내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법이란? [자동차 사이드미러]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고 얘기하지만, 법은 생각보다 가까워요. 그렇다고 해서 법이 아주 안전하다거나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지는 않죠. 그런데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지는 않는 그것이 어떻게 보면 가장 현실적일 수도 있어요. 자동차 사이드미러에 보면 ‘지금 보이는 것은 생각보다 가깝다’고 쓰여 있잖아요? 그러나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에 있는 것을 보여주되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고, 그 크기도 실제와는 다르기 때문이죠. 사이드미러로 보지 못하는 ‘사각’이 있듯 법 역시 아직은 부족한 점, ‘사각’이 굉장히 많아요.”


 


 



가장 당연한 것이 가장 특별하다!


 



고은아 기부자는 그녀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별로 ‘재미없는’ 사람이다. 살아온 과정 역시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달변이되 꾸밈이 없고, 모든 질문에 진지하고 논리적으로 답하면서도 소소한 웃음을 주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녀가 정말 자신의 표현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만 살아왔다면, ‘가장 당연한 것이 가장 특별한 것’이리라.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면, 원작 소설에 비해 그 ‘맛’이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터뷰 내용을 기사화하고 있으려니, 어쩐지 ‘불후의 명작 소설’을 ‘설익은 영화’로 내어놓는 것 같아 부끄럽고 안타깝다. 하여, 글 구석구석에 새겨두고 싶은 한 마디―지금 보이는 것은 생각보다 가깝다!



 


글_12기 인턴 김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