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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부자 인터뷰] 꿈을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 최선주 기부자님






고등학교에서 만난 지적장애를 가진 내 친구 승철(가명)이는 항상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는 밝은 친구였다. 그러나 승철이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장애를 이유로 승철이가 다가가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기 일쑤였다. 또한, 학교의 축제나 체육행사에서도 승철이는 언제나 ‘보호대상’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에 있어야만 했다.



 


“어려운 일이니까 승철이는 안 돼…”, “다칠 수도 있으니까 승철이는 안 돼…”



 


한 조사에 의하면 많은 사람이 장애인을 단순히 시혜와 수혜의 피동적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구분 짓는 것은 울타리 속 승철이처럼 결국 그들과 우리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장애인권의 보장은 장애인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하면서 함께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뙤약볕 아래 값진 땀을 흘리며 희망을 일구어 가는 어유지동산 그리고 최선주 기부자와의 만남을 통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 꿈을 가꾸는 사람들의 일터 ‘교남어유지동산’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어유지리.


 


그 이름처럼 평화로운 어유지동산에 들어서자 주변을 둘러싼 초록의 물결과 은은하게 퍼지는 허브향이 마음을 맑게 해주었다.



 


‘교남어유지동산’은 장애인의 자립적 삶을 추구하며 그들이 직접 흙에서 키워 믿을 수 있는 제철 친환경 농작물을 판매하는 곳이다. 우리가 만난 최선주 기부자는 어유지동산에서 판매, 홍보 등 전반적인 살림을 맡고 있다.



 


“우리 기관은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이 자립하여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요. 그들과 함께 어울려 땀 흘리는 곳이라고 보면 돼요. 나에게도 직장이고! 그들에게도 직장이지요! 막연히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흘린 땀만큼의 대가를 주는 것 또한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농사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뙤약볕 아래서 이루어지는 육체노동일 뿐만 아니라 농작물에 지속적인 관심과 시간을 부어야만 하는 까닭에 비장애인이 하기에도 많이 고되다. 그런데도 굳이 농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땅을 밟고, 씨앗을 심고,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풍성한 열매를 맺어 수확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장애인들이 직접 꿈을 담아 가꿈으로써 그들에게 심리적, 정신적인 안정을 주는 직종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사실 장애인 작업장이라고 하면 갇힌 공간에서 단순한 작업을 떠올리는데, 어유지동산은 열린 공간, 열린 환경에서의 생활을 추구하고 있지요.”



 


어유지동산을 소개하는 최선주 기부자의 모습에서 그녀의 깊은 애정과 직접 수확하는 농작물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어유지동산의 친구들에게서 그녀가 말한 열린 마음과 여유가 무엇인지 전해졌다.





 


#. 행복의 절반 ‘친구’



 



지금의 최선주 기부자를 있게 한 첫걸음은 뇌성마비장애인과 영아를 돕는 봉사활동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두근거림을 느꼈고 그 순간 ‘내 꿈으로 삼아도 되겠다.’라는 확신을 했다고 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장애인을 직접 만지고 쓰다듬는 일 자체가 저에게 희열을 느끼게 했어요. 졸업하고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겠다고 꿈을 가지게 된 이유죠. 그렇게 진정한 행복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고, 지금은 어유지동산의 친구들과 8년째 함께 걸어가고 있어요.”



 


사실, 어유지동산에서 복지가로서 삶을 시작했을 때에는 가족의 반대, 재정적인 문제, 자기 생활의 부재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펼쳐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원동력을 ‘우리 친구들’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내 마음이 행복하고 풍족하기에 이 삶을 계속 이어갑니다. 우리 친구들이 뙤약볕에 앉아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많은 것을 보고 배워요. 사실 처음 이곳에 오는 몇몇 친구들은 경제관념도 없고, 가족의 의미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부딪힐 때도 많이 있었죠. 그런데 여기서 함께 일하며 서로의 땀을 닦아주면서 가족의 의미를 알아가고, 직장생활을 하며 받은 월급을 통해 자립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엄마가 딸을 시집보내는 것처럼 감격스러우면서 뿌듯한 감정과 보람을 느껴요.”




 


#.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우리나라에 ‘장애인의 날’이(매년 4월 20일) 지정된 지 서른 두 해가 지났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애를 편견과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회의 불편한 시선에 대해 장애인들은 말한다. “장애는 ‘불편함의 차이’에 불과하다.”



 


“전 세계의 인구 중 장애인이 10% 정도예요. 저는 장애를 가진 한 명이 아홉 명의 몫을 떠안고 태어나서 다른 아홉 명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홉 명이 장애를 가진 한 명의 짐을 조금씩만 나눠 들고 도와준다면 그 한 명이 아홉 명 속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쉬워질 거라고 믿어요. 저도 우리 친구들을 통해서 내가 이렇게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느끼고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해요.”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누구나 장애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장애를 차별이 아닌 차이로,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는 것과 같이 장애도 단지 약간의 불편일 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최선주 기부자는 어유지동산에서 만들어가는 작은 기적들을 이야기했다.



 


“우리의 목표가 지역사회에 나가서 비장애인과 어울려 함께 사는 건데 처음 친구들이 자립할 때 집을 사기 위한 돈이 있는데도 집값이 하락할까 봐 우리 친구들에게는 팔지 않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나 첫 자립이 이루어지고 7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 친구들의 순수한 모습을 이웃 분들이 알게 되면서 인식이 크게 변했어요. 덩치만 크지 인사성 밝고 애교가 많은 친구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친구들은 귀한 사람들이지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최근 장애인을 나타내는 영어표현으로 기존의 ‘the disabled –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아닌 ‘the differently abled –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사용한다. 전자가 장애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장애를 차별적인 것 아니라 단지 차이를 가진 것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장애인의 남다른 능력을 주목하고 있다. 어유지동산의 친구들은 세상이 가진 차별과 편견을 바꾸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 나눔이 나눔을 낳는 세상




최선주 기부자는 넉넉하지 않은 봉급에도 공감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 지원기관과 세네갈 어린이에게도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그녀에게 나눔은 ‘내 마음’이다.



 


“기부를 하면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것을 얻어요. 공감의 기부를 통해서 공감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더 많이 얻어가는 것을 느껴요. 마찬가지로 내 나눔을 받은 친구들이 또 다른 친구들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이 커지는 것에 보람을 느끼게 되지요.”



 


나눔이 나눔을 낳는 모습을 보며 아주 작은 정성과 사랑이지만 다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믿는 그녀는 기부를 통해 더욱 건강한 세상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나눔을 통해서 모두가 건강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눔을 받는 친구들도 건강해지고 저도 건강해져서 모두가 기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이요. 그런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의 자리에서 많은 사람과 친구를 맺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행복을 나누는 어유지동산과 그곳에서 만난 최선주 기부자에게서 희망의 씨앗이 자라는 터전을 볼 수 있었다.



 


어유지동산에서 재배되는 농작물은 대형상점에서 판매하는 농산물처럼 예쁘거나 깔끔하게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못생기고 투박하다. 하지만 세상 그 어떤 먹거리보다 건강하고 신뢰할 수 있다. 사회가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에 맞지는 않지만,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어유지동산의 농작물들처럼 어유지동산의 친구들 역시 내 눈엔 그 누구보다 건강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글_ 이채호(공감 15기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