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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HIV/AIDS 감염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_장서연 공감 변호사

 
6월의 어느 화창한 토요일, 공감 인턴들과 함께 나비 모양의 날개를 등 뒤에 달고 피켓을 들고 청계천 거리를 행진하였다.

피켓에는 “정부와 국회는 에이즈예방법 정면 개정안을 즉각 통과시켜라” 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2007년 퀴어퍼레이드 중 동성애자인권연대가 ‘AIDS & Solidarity+’ “에이즈와 연대“란 주제로 준비한 퍼레이드 속에서였다. 그곳에서 ‘HIV/AIDS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과 여러 다른 인권단체가 함께했다. 도대체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에이즈예방법)에 어떤 문제점이 있길래.

얼마 전 종영한 ‘고맙습니다’라는 드라마가 HIV/AIDS 감염인에 대한 편견을 깼다는 호평을 받았다. 시청자들은 ‘봄이’와 그 가족들에 대해 연민을 느끼면서 호응하였고, ‘봄이’가 푸른도 주민들에게 HIV 보균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 이유 없는 따돌림과 내쫓김을 당할 때 안타까워하고 분노하였으며, 시청률도 꽤 높았다고 한다. 또 다른 편에서는 특급 호텔 프랑스인 요리사가 에이즈 감염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출국하였다는 SBS 뉴스 보도와 감염인 특히 감염외국인에 대한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며 호들갑을 떠는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수혈을 통해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초등학생인 ‘봄이’는 불쌍하고 용서가 되지만, 특급 호텔의 요리사인 ‘외국인’의 감염사실은 괘씸하고 용서가 되지 않나 보다. 전자가 비감염인의 ‘드라마’라면 후자는 감염인의 ‘현실’이다.

국내 감염인의 주요 사망원인 중 하나는 ‘자살’이며 이는 비감염인의 10배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가 감염인이 처한 현실을 짐작케 한다.

현행 에이즈예방법(감염인에 대한 인권침해적 요소를 개선하고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개정안도 마찬가지이다.) 및 출입국관리법은 감염인 및 ‘고위험군’이라 일컬어지는 성매매종사자, 동성애자, 외국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러한 이중적, 모순적 편견과 공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특정집단에 대한 강제검진, 역학조사, 외국인에 대한 강제퇴거 등 규정이 그러하다.

감염 외국인이 처한 현실

지난 달 공감 사무실에는 감염인 아버지라는 사람으로부터 급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자신의 아들 A는 중국동포인데 외국국적동포 취업교육 중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어느 날 보건소로부터 어머니와 같이 오라는 통보를 받고 보건소에 나갔더니 그곳에서 HIV 양성반응이 나왔다며 그 날 당일 바로 출입국관리사무소로 통보가 되어 보호실에 며칠간 구금되었다가 강제퇴거 당할 뻔 하였으나 자신이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통 사정을 하여 이주일 후에 출국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현재 풀려난 상태라는 것이다. 자신은 A의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A의 어머니와 몇 년 전에 재혼하여 함께 살고 있고, 아들인 A가 친모와 함께 살기 위하여 한국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강제퇴거 당하면 중국에는 A를 돌봐줄 가족도 없고 A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며 A가 강제퇴거 당하지 않을 방법이 없느냐는 내용이었다.

A씨의 사건을 지원하면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에게 A씨의 친모와 가족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고, A씨도 특별귀화신청 중인 점 등 사정을 참작하여 출국기한을 유예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오히려 나에게 ‘왜 중국 사람들을 도와주느냐’, ‘그 어머니도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남자와 결혼해서 한국국적을 취득한 것이지 한국 사람이 아니다. 나도 한국인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겠지만 외국인이고 감염도 한국에서 되지 않았는데, 국내에서 한국 사람과 성행위를 하다가 감염시키면 어떻게 되겠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출입국관리법에는 감염 외국인에 대한 강제퇴거를 출입국관리사무소장등의 ‘재량’으로 규정하고 있고 법무부는 감염인 인권을 고려하여 인도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체류를 허가하고 있다며 위 규정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무적으로 HIV/AIDS 감염 외국인은 체류의 목적이나 자격, 체류기간의 구분 없이 거의 대부분 입국금지, 강제퇴거 당하고 있다. 실제로 1988년부터 2006년 11월까지 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인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된 외국인은 총 538명으로 그 중 체류 및 국적취득자는 27명 정도 뿐이며 454명 정도가 강제퇴거 등 출국 조치되었다.

외국인 강제퇴거 규정의 위헌성

에이즈는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 아니다. 감염인이 입국하거나 체류한다는 사실만으로 공중의 감염 위험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HIV는 물이나 공기를 매개로 전파되지 않으며, 키스나 포옹, 변기를 같이 쓰거나 식사를 같이하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의 접촉으로 감염되지 않는다. 전염병예방법에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전염성이 1,2군 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3군 전염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나아가 다양한 의약품이 개발되어 HIV에 감염되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치료법을 유지할 경우 감염초기 시대와는 달리 에이즈 발병까지 20년 이상의 수명을 건강하게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다수의 유럽 국가에서는 에이즈를 법정전염병으로 규정하지 않고 만성질환 정도로 취급하고 있으며, 오히려 HIV/ AIDS를 ‘사회적 질병’으로서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는 정책을 마련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HIV/AIDS를 법정 전염병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출입국법상 전염병에 관한 입국금지 대상자를 전염병의 종별로 제한하고 있으며, HIV/AIDS를 출입국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 5급 전염병으로 분류하여 HIV 감염을 강제퇴거사유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2007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도 외국인 강제퇴거 등은 HIV가 외부에서 전염되는 질병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주어 외국인에 대한 차별 의식을 조장할 수 있으며, 국내 거주 감염 외국인이 검사를 기피하고 치료를 포기하게 하여 오히려 HIV/AIDS 관리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어 효과적인 예방정책을 위해서는 외국인이라도 감염 사실만으로 내국인 감염인에 비하여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였다.

이미 국제사회는 HIV/AIDS 감염을 이유로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공중보건 이론 근거는 없으며, 현행 국제 보건 규정에 따르면 국제여행에 허가를 얻어야 하는 병은 오로지 황열병 뿐이므로, HIV 감염 상태만을 가지고 이동 및 거주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해외여행자들을 상대로 HIV 검사를 하는 것은 차별적이며 공중보건의 명분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HIV/AIDS와 인권에 관한 국제 가이드라인”)

거주·이전의 자유는 오늘날에는 행복추구권, 인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인격형성의 자유 등의 성격도 갖는 다면적·복합적 자유로 파악되고 있다. 즉 거주·이전의 자유(해외여행의 자유)는 인간의 행복추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다양한 자연과 사람과의 교류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점에서 인격형성에 필요한 불가결한 기본권이다.

HIV/AIDS는 하나의 질병일 뿐이다. HIV 보균자도 AIDS 환자도 비감염인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치료를 받을 권리, 직업을 가지고 살 권리, 여행을 할 권리, 가족과 함께 살 권리가 있다. HIV 감염 사실만을 기준으로 행해지는 외국인에 대한 입국금지, 강제퇴거는 공중보건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 될 수 없으며, 헌법 및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금지하는 병력(病歷)에 의한 자의적인 차별이며 인권 침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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