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과 부모님
오늘은 자랑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코로나 시기와 휴업 기간을 지나, 한동안 부지런히 현업 복귀 소식을 알렸습니다. 5년 만에 만난 지인은 최근 귀촌한 동생 덕에 알게 된 완전히 익은 과일 맛이 주는 즐거움이 크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먹는 이야기가 지속되었고, 저는 자랑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을 광역시로 편입된 지 얼마 안 된, 광역시의 경계 지역에서 자랐습니다. 지금은 아파트촌이 되었지만 그 아파트들이 그 때는 논과 밭, 과수원, 저수지였습니다. 저는 봄에는 나물을 캐러 다녔고, 산딸기 철에는 산딸기를, 앵두 철에는 앵두를, 포도 철에는 아는 과수원에서 완전히 익은 포도를 신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하고도 산딸기 철에 맞춰 집에 내려갈 정도로 저희 집에서는 주요 연례행사였습니다. 체력에 자신이 있으셨던 아버지는 매해 아는 과수원의 복숭아 수확을 한나절 도와주고 완전히 익어서 소위 상품성 없는 복숭아를 한두 박스씩 가져오셨습니다. 언젠가는 어부를 도와주고 살아있는 멸치를 한 박스, 언젠가는 사냥꾼을 도와주고 멧돼지고기를 몇 근 가져오셨습니다. 먹는 것에 관한 한, 저는 제가 상당히 귀하게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은 결국 제가 10살 즈음부터는 텃밭을 시작하셨습니다. 본업이 있으니 주로 주말에 온가족이 텃밭에서 밭일을 했습니다. 텃밭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농사는 전혀 목가적이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존 투쟁에 가깝습니다. 비료 없이 기른 감자와 고구마가 얼마나 작고 적은지, 과일에는 얼마나 많은 벌레가 생기는지, 잡초는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내가심은 작물들은 얼마나 쉽게 죽는지 말입니다. 더워서 상추가 녹아내릴까, 추워서 배추가 얼까, 가물어서 오이가 말라버릴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바림이 많이 불어서 고추대나 가지대가 부러질까 걱정했습니다.
텃밭농사를 엿본 딸의 입장에서 농사에서 제일 중요한 건 “때”였습니다. 솔직히 배추벌레 잡고 물주고 등교하는 게 그리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배추를 심은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어리고 약할 때는 하루만 배추벌레가 왕성히 먹어대면 배추는 죽습니다. 모종을 심고 자리 잡을 때까지는 매일 비가 적당량 내려주길 빌거나 매일 물을 줘야 합니다. 같은 이유로 (물 주러 가기 싫어서) 비가 적당히 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랬는지 모릅니다. 옆 밭에서 약을 쓰면 벌레들이 약을 안 쓴 우리 밭으로 우르르 몰리기 때문에, 옆 밭에서 약을 주기 전에 벌레들이 조금 먹어도 살아남을 만큼 키워둬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해에는 일찍 심었더니 얼어버려서 다시 모종을 사다가 뒤늦게 심었습니다. 그렇게 매해 농사를 망쳐가며(?) 하나씩 배워갔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지금도 텃밭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나름 경력 30년이 넘은 농사꾼이 되어 이제 제법 수확량이 됩니다. 농사가 잘 된 해에는 여기저기 선물을 줄 정도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부쩍 힘들어 하십니다. 노화로 인한 건강 문제도 있지만, 올 해는 너무 더워서 채소들이 다 녹아내렸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지난달에 허리를 다쳐서, 어머니는 이 달에 몸살로 앓아누우셨습니다. 말씀인즉슨, 기후위기가 제 부모님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많은 채소들은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해야 합니다. 고구마 같은 뿌리 작물들은 땅이 얼고 나면 캐기도 어렵고 소위 바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올 해는 9월까지 여름 같더니 최근에는 또 겨울 같아서, 사실상 수확 시기가 10월 한 달 정도로 줄어버렸습니다. 공들여 키운 작물들을 버릴 수 없어 부모님은 무리를 하셨던 겁니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기후위기가 이미 제 밥상에, 제 지갑에, 제 부모님께 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