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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1029 이태원참사# 공감칼럼# 재난

무심(無心)한 정부, 폭력적인 국가

명명(命名)한다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1029이태원참사’를 써야 할지, ‘1029참사’를 써야할지, ‘이태원참사’를 써야할지 고민하다가 ‘1029이태원참사’라고 쓰는 지금도, 세 용어가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 고민들을 담고 있다는 것을 고려 할 수밖에 없다.

10월 31일 행정안전부는 공문을 통해 시도별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도록 하면서 ‘참사’가 아닌 ‘사고’라는 용어를, ‘희생자’ 대신 ‘사망자’를 사용하도록 하고, 영정사진이나 위패는 생략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 합동분향소 설치에서 유가족의 의견은 시간상 어렵다는 이유로 묻지도 않았으며, 영정과 위패 없는 분향소 설치를 결정하고 난 후 설치 직전에서야 몇몇 유가족에게 의견을 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정작 당일에는 유가족들에게 합동분향소 설치 장소, 기간 등에 대해 개별적으로 알리지 않았고, 어떤 유가족은 합동분향소 설치에 대해 알지 못했다.

행안부는 합동분향소를 설치하면서 어떻게 하면 정부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지 단어 하나하나를 고심했다. 행안부는 ‘참사’가, ‘희생자’가 담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위패와 영정이 있는 분향소를 설치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미와 정확하게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특정 의도를 전달했다.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연히 발생한 사고였으며 대비할 수 없었으니 정부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

1029이태원참사 49재 추모제가 진행된 2022년 12월 16일도 마찬가지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종로에서 열린 윈·윈터 페스티벌 개막식에서 한없이 밝은 얼굴로 술잔을 구입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행동은 누구에게 어떤 시그널을 주었을까.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1029이태원참사에 보인 무심(無心)한 태도는 그 자체로 명확한 의미를 갖는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목놓아 외치는 유가족을 뒤로 하고, 대통령은 이번 참사를 사회적으로 애도하고 추모할 참사로 보지 않는다고 외친 것과 같다.

이태원참사에 관한 정부의 대응 전반에는 이러한 무심한 태도가 철저하게 깔려 있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에 대한 대응과 지원 어느 부분에서도 재난참사 피해자의 상황과 의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재난 상황에서 ‘희생자의 신원을 빠르게 확인하여 유가족에게 인도하는 것, 장례 절차를 지원하는 것, 유가족 모임을 구성하고 지원하는 것, 분향소를 설치하는 것 등’ 정부가 해야 하는 일들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마주한 유가족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었다. 따라서 참사 이후 유가족에 대한 지원은 해치워버려야 하는 행정적인 절차가 아니라 모든 순간마다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는 절차였다. 그리고 사회는 이를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라고 명명하며 법적인 권리로서 인정하여 지켜지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참사 현장에서부터 책임 있는 주체들 중 그 누구도 유가족과 생존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유가족에 대한 정보미제공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구급차에 동석하겠다고 한 희생자의 지인들 또는 생존자들이 많았으나 모두 동석을 거부당했고, 어디로 가는지 알려달라는 요구도 모두 거부당했다. 결국 이들은 택시를 타고 희생자가 탄 구급차를 뒤쫓아가며 희생자의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보 차단은 유가족에게도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용산다목적체육관에 도착한 가족들은 희생자에 대한 작은 정보라도 얻기를 바라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러나 현장 공무원들은 희생자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하거나 알려줄 수 없다고 회피하며 실종자 신고를 먼저 하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할 뿐이었다. 어떤 유가족은 기자에게서 희생자가 이송된 병원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자신이 알려주었다는 것을 말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공무원들에게는 ‘유가족에게 희생자에 대한 정보를 주지 말라.’고 하고, 유가족에게는 ‘가만히 기다려라.’라고 하는 지침이 있었던 것일까. 지침이 있었다면 누가 정한 것일까.

재난참사에서 정부의 일차적인 의무는 희생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장 빠르게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누가 이 의무를 손쉽게 저버렸는가. 희생자의 지인 중에는 신원확인을 위해 다목적체육관에 들어갔다가, 현장에 있던 책임자가 관계자 외에는 다 나가게 하라는 말을 한 후 쫓겨 나온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유가족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어느 책임자가 어떤 근거에 의해서 내린 결정이었을까.

 

신원확인 및 검시절차 

희생자들이 각 병원으로 흩어지고 유가족들이 각 병원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희생자의 모습은 이미 검시가 끝나고 탈의 된 상태의 모습이었다. 병원에 일찍 도착한 가족들은 의사가 희생자의 옷을 가위로 자르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그리고 검시 과정에서 잘라진 옷을 지금까지도 받지 못한 가족들도 존재한다. 경찰은 의사와 함께 검시를 모두 진행하고 난 후에 가족들에게 신원확인을 하게 했으며 신원확인 후 가족들로부터 검시 동의서에 확인을 받았다. 가족들은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경찰이 내미는 서류에 싸인을 했지만, 희생자의 몸을 살뜰히 살펴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남아있다고 한다. 왜 검시는 그렇게 빠르게 진행되어야만 했을까. 가족들이 오기를 기다려서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가족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검시 절차를 진행할 수는 없었을까.

국정조사에서 국회의원이 “피해자중심주의 원칙에 따라 신원확인 후 변사사실을 통지하고 검시를 진행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 질문하자, 김의승 증인은 (서울시 행정1부시장)은 “정확한 것은 아니나 상황의 흐름은 기억하고 있다. 검시를 위한 신원 확인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보이는데, 파악 후 답변하겠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에 대한 후속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국정조사에서 김의승 증인(서울시 행정1부시장)이 증언한 내용에 따르면, 서울시는 재난안전대책본부를 0시 30분부터 실질적으로 운영했고(어떤 일을 했는지 명확한 기록은 없다) 30일 2시쯤 1차 간부회의를 진행했다. 그 후인 30일 5시 43분에 희생자들이 다목적체육관에서 각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대다수의 가족들은 희생자가 이송된 병원에 대한 정보를 10월 30일 오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희생자에 대한 신원확인을 모두 마치고도 유가족에게 빠르게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검시를 진행한 후에 유가족이 희생자를 보도록 하는 지침’ 등이 서울시 간부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아닐까. 가족들에게 희생자 이송 정보를 늦게 알린 것은 의도가 있는 결정이었을까.

 

피해자들에 대한 경찰조사

유가족이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자마자 경찰은 유가족과 생존자를 대상으로 경찰조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연고지 장례식장으로 희생자를 옮기려고 하는 가족들에게 경찰조사를 받아야만 희생자를 인도할 수 있다고 하며 경찰조사를 진행했다. 참사 현장에서부터 희생자를 내내 지켜온 생존자와 유가족을 나란히 두고 경찰은 유가족에게 ‘이 생존자는 살았는데 희생자가 죽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유가족에게도, 생존자에게도 폭력적인 질문이었고 생존자는 경황이 없어 이의제기를 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참사 다음 날 경찰은 미성년자인 생존자에게도 찾아갔다. 경찰은 병원에 입원 중인 미성년자 생존자를 예고도 없이 찾아갔고, 보호자 동석도 없이 빈병실로 데리고 가 50분간 개별 면담을 진행했다. 보호자인 부모에게 어떠한 설명도 없었고 참여 여부도 묻지 않았다. 범죄 혐의도 없는 유가족과 생존자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일까. 이러한 경찰조사 강행은 어떻게 결정된 것일까. 경찰의 관행적인 판단인 것인가 아니라면 어떠한 의도가 개입된 것일까.

 

유가족의 연락처 공유 거부

재난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족이 모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임에도, 정부는 무엇이 두려운지 유가족이 모일 수 없도록 다른 유가족의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았다. 정부는 개인정보 문제로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정부가 가족들을 모이도록 지원할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개인정보 문제에 대해서 법제처에 의견제시를 구하거나 공개 브리핑을 통해서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순간을 마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그러나 정부는 유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한 브리핑을 단 한 번도 진행하지 않았다.

국정조사결과보고서에 의하면 개인정보보호문제에 대해서 행안부는 추후에서야 법제처에 법령해석요청을 하였고, 이에 대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유가족의 정보제공 동의가 있다면 다른 유가족들에게 연락처를 공유할 수 있음. 정보주체나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 목적 외 이용·제공 가능함.”이라고 답변하였다. 정부는 영정과 위패 없는 분향소를 설치하고, 유가족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법적인 검토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결국 개인정보보호를 내세운 행안부의 결정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서 사과하거나 설명한 바 없다. 누가 유가족의 권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 결정들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해야 하는가.

 

의도적인 무심함이 쌓여 폭력이 되기까지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유가족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무심함 그 자체였다. 정부가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절차들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유가족이 아닌 기자들과 대화하고 소통할 뿐이었다. 유가족에 대한 어떠한 적극적인 지원도 하지 않던 서울시는 유가족이 영정과 위패 있는 시민분향소를 서울광장에 차리자마자 행정대집행으로 대응했고, 유가족협의회를 지원하겠다고 하던 행안부 지원단은 이에 대해 방관했다. 정부는 이를 법치주의라고 하겠지만, 피해자의 권리를 짓밟는 법적 판단이 언제부터 법치주의라는 기치아래 이토록 무분별하게 용인되었는지 묻고 싶다. 유가족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의 무심한 태도들은 반복될수록 의도가 있는 행동이 되고, 의도가 있는 무심함은 폭력이 되고 있다.

유가족은 이 밖에도 무수한 의문들을 품고 있다. 국정조사에서도, 특수본에서도 진상규명의 핵심은 참사의 원인과 대응실패였으나, 가족들의 의문은 참사 이후 정부의 대응까지 뻗어 있고, 이 의문들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꼬리의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유가족의 의문점들은 국정조사에서 드러나지 조차 못했다. 유가족이 참사 이후 경험한 상황에 대해서 그 누구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정조사에서 재구성한 참사 당시 상황도 남아 있는 기록과 고위 관계자들의 답변을 통해서만 구성되었을 뿐, 생존자와 목격자, 구조자, 상인들, 참사 현장의 공무원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구성되지 않았다. 따라서 국정조사의 결과는 참사 당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으며 참사 이후 정부의 태도와 미비한 지원에 대해서도 유가족과 다른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하고 있는데, 국정조사로 충분했다고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하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들 곁에서,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끊임없이 외칠 자격만이 주어져 있다.

 

조인영

# 장애인 인권#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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