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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감칼럼

한 여성 홈리스 만나기 / 내 인식과 규율을 또 찢으며_최현숙(구술생애사 작가)

1975년생 여성 홈리스와 1957년생 내가 만나가는 이야기다. 2020년 3월 이후 우리는 여러 자리에서 주 2회 정도 만나고, 약 3개월 전부터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매일 통화를 한다. 그녀는 내 구술생애사와 여러 글의 주인공이 되어주기로 했다.

2020년 어느 금요일 저녁 서울역 노숙인 아웃리치를 가는 인권지킴이 봉고 안에서, 그녀는 “며칠 전 진짜 빡 치는 일을 당해 112에 신고했다.”는 말을 했다. 차 안 모두가 알아들을만한 크기였고, 순간 조용해졌다. 아는 사람은 이미 그녀의 입을 통해 대략은 알고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말의 진행을 말려야 할지, 어떤 피해는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게 해온 사회구조에 지금 나는 공조할 것인지, 계속 말하게 했다가 혹시라도 다른 안 좋은 일들이 생길 수 있다는 내 염려는 쓸데없는 ‘보호’인지 쓸데가 있는지 등 여러 생각이 뒤섞이는 동안, 누군가 ‘그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 했고 나도 그 얘기는 따로 하자고 보탰고, 그러다가 내릴 때가 됐다. 나중에 따로 얘기를 나눴는데, 본인의 의지와 여성 활동가의 지원으로 일은 제대로 처리 중이었다. 가해자는 서울역에서 처음 본 남자였고, 현장은 그 남자 방이었다. 상황이야 여성 홈리스들에겐 드문 일이 아닌데, 그녀를 빡치게 한 포인트 때문에 내 머릿속 알전구가 화들짝 켜졌다. 원래는 신고할 생각이 없었는데, 깜빡 두고 나온 핸드폰을 찾으러 다시 가보니 “아니 씨발, 이 새끼가 내 핸드폰 주소록을 뒤지며 적고 있더라.”는 거다. 주소록 안에는 봉고 안 활동가들뿐 아니라 야학 교사와 학생(홈리스)들 연락처가 들어있다. 혹시라도 그 사람들에게 피해가는 일이 생길까봐 신고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며칠 후 다시 앉아 생각과 감정의 핀트와 맥락을 더 물었다. 어떤 피해만 으레 “수치심”이라는 단어로 질문되고 설명되는 것에 나는 이견이 많은데, 못 느끼든 안 느끼든 적어도 그녀에게 수치심 따위는 없었다. 수치심은 학습된 것이라는 걸 증명하는 사례 같아 일단 반가웠고, 나중에 혼자 생각이 이어졌다. 지적 장애가 원인일 수도 있다. 아니, 그 문장 말고 다르게 말해보자. 비장애인들은 “성폭력 피해에 대해 수치심 없음”을 지적 장애로 분류하는 근거로 사용하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비장애인이고 여성주의자인 나는, 수치심 역시 학습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녀의 “수치심 없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가? 지금의 내가 성폭력을 당하면 나는 수치심을 느낄 것인가?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라면 잠깐은 느낄 수 있겠지만 곧 방관한 그들에게 화를 내며 수치심을 털어낼 테고, 가해자에 대해 냉정하고 전략적으로 싸울 것이다. 나의 수치심 없음은 당당함이고 그녀의 수치심 없음은 지적장애로 분류하는 것은 누구에 의한 누구의 기준인가? 다른 성폭력 피해여성/남성들에게도 나는 공감을 위한 노력에 이어 수치심을 떨쳐낼 것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피해의 핵심은 수치심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그녀의 이야기로 내 기억 하나가 끄집어져 나왔다. ‘당했다‘는 표현은 당시의 장면에 담긴 여러 권력관계들(성별, 나이, 욕망, 자발성)을 알고 나중에야 붙인 해석이다. 이젠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당시의 정황을 옮겨보자면, 다섯 살 무렵, 세 차례 정도, 열세 살의 사촌오빠가 이불 속에서 내 보지 속과 겉에 손가락으로 장난질을 했다. 절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라는 말을 했으니 좋은 놀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나는 싫다고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피해자라는 생각도 느낌도 없었다. 십대 중후반 즈음 “당한” 거라는 걸 깨달았지만 그 때도 나를 피해자로 여기지는 않았다. 여섯 살 때든 십대 중후반 때든 그 이후든, 내게 그 일로 인한 수치심이나 상처, 낙인이나 자괴는 없다. 듣는 사람들을 골라가면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건, 쓸데없는 인간들 앞에 길고 효과도 없는 설명을 하는 노고를 생략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 일의 정체를 깨달은 때부터 분노는 있다. 그의 행동이 가해이자 범죄라는 분별로 인한 분노이며, 그런 사람과 그런 세상을 그대로 놔두지 않겠다는 분노다. 한편 나는 그 일로 여섯 살에 클리토리스의 쾌감을 알게 되었고, 자위를 일찍 시작했으며, 자위는 지금까지도 가장 자주 즐기는 내 성애다. 클리토리스의 쾌감은 나의 쾌락이자 욕망이어서, 상대가 있느냐 혹은 누구냐 등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내 성애의 핵심이다. 일반화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내게, 질은 생식기이고 클리토리스가 성기다. 성적 주체로서의 내 몸을 일찍 깨닫게 된 것은 여섯 살 이불 속 경험 “덕”이 크다고 나는 해석하며, 지금도 계속 재해석을 확장한다. 성애적 쾌락과 욕망을 내 몸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관점과 태도와 기획을 나로부터 출발하는 주체적 인간이 되는 것이며, 타인 역시 그들 각자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혹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도울 준비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충분히 닿으려면 내 길을 벗어나야 한다. 우선 내 언어를 넘어서야 하고, 계급에 대한 관점과 페미니즘도 또 찢어내며, 양심이니 상식뿐 아니라 질병과 장애에 관한 의학의 규정과 구분도 의심하면서, 법을 포함한 허다한 규범들이 누구를 위한 질서이자 보안인지를 더 뚫어지게 노려보아야 한다. 여성다움이 학습된 것이라면 어떤 피해자성 또한 학습된 것이라는 의심해야 한다. 그녀에게 섹슈얼리티는 좀 나은 잠자리와 한 끼를 얻기 위한 협상 수단이기도 했다. 임신은 그저 재수에 맡길 수밖에 없었고, 재수 없이 걸리면 낙태수술을 받았다. 꼭 한번 낳을까를 많이 고민했는데 키울 자신이 없었다. 세 번의 낙태수술 후 루프를 질에 넣는 피임시술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성폭력이나, 성매매라 할 것도 없는 ‘하룻밤’들에 대해 낙인이나 자괴 따위는 없다. 경우에 따라 분노가 있을 뿐이다.

그녀와 생애사 작업을 하면서, 그녀가 까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여러 대목들에 대해 어떻게 “그녀를 보호하며” 경험과 말을 드러낼지·공유할 지를 고민하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이는 청자이자 필자로서의 윤리인가 아니면 타인·사회의 윤리와 기준에 맞춰 그녀의 목소리와 경험과 느낌을 포장·가공·삭제하려는 오류·과잉인가? 내가 보호하려는 것은 그녀가 “나쁜 여자”, “폭력적인 여자“, ”범법하는 여자“, “더러운 여자“, ”일은 안하고 수급비나 교회 꼬지나 구걸로 얻은 돈으로 밥과 술과 담배와 무절제를 사는 여자“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염려이며, 그 염려는 수많은 ”정상성“에 갇혀 있다. 그녀는 정상과 비정상, 불법과 합법, 책임과 무책임, 나쁨과 좋음 등에 대해, 유연해서 흐트러지는 그녀 나름의 판단과 느낌들을 가지고 전략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재수가 없을 땐 법에 걸려들었다. 타인의 비난은 중요하지 않으며, 우선의 판단 기준은 대부분 생존과 당장의 필요였다. 그녀 자신의 생존과 필요 뿐 아니라 때로 그녀의 마음이 가는 누구들·대체로 자신보다 더 어려워 보이는 노숙하는 청소년들과 여자들과 장애남성들의 생존과 필요였다. 그들에 관한 구술에서는 마음도 말도 길다. 빵에서 만난 여성수감자들에 대한 구술도 결이 같다. 갑갑하다는 게 제일 힘들었지만 다른 면에선 빵이 차라리 나았다. 그 안에서 만난 언니 동생들과의 경험과 느낌도 대체로 좋다. 그녀의 마음이 많이 간 사람들은, 엄마와 함께 빵 살이를 하는 아가들, 그러다가 헤어져야 하는 엄마와 아가들이다. 만기를 채우고 나가는 그녀를 향해 흰색 티셔츠를 선물하며 “**야, 이제 나가면 다시는 여기 들어오지 말고 잘 살아라.” 라고 말해 준 한 언니의 말을 마음에 새겼고, 그 후로 최소한 빵에 들어갈 사고는 치지 않았다. 언니들에게서 자기가 필요한 법에 대해 많이 배웠다며 자신 있어 한다. 최근 서울역 술판에서 그녀가 가해자로 연루된 범법과 재판 진행에 대해, 1차 재판 전에 보였던 불안감과 달리 그녀는 안심하고 있다. 진행되는 상황을 보니 빵은 아니고 벌금이나 좀 나올 거란다. 범법이야 그렇다 치고 범죄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죄(罪)란 대체 무엇인가?

 

최현숙 / 구술생애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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