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 장애인권# 장애인차별

장애가 아니라 차별이 문제다

  대한민국 인구 20명 중 1명은 장애인이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보장을 위해 1981년 장애인복지법,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였고 2008년에는 UN장애인권리협약(CRPD)이 국회 비준을 통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 되었다. 대표적인 장애인 관련법의 연혁을 살펴보고 있자니 괜스레 2019년 4월부터 장애인권 활동을 시작한 내 이력이 더 짧게 느껴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법이 작동한 지 꽤 오래됐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분리된 채 살아가고 있으며, 차별은 보다 교묘한 형태로 이루어져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장애유아 보육과 교육이 분리돼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소관부처가 다른데, 가뜩이나 특수교육 제반이 부족한 상황에 장애아동 통합 보·교육을 위한 지원은 입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결국 아이들은 장애를 바로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고 분리된 환경에서 자란다.

 

  의무교육을 마친 장애인의 삶은 뭐가 다를까? 지역사회로 탈시설·자립하려고 해도 기존 시설종사자 거취 등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로 설켜 한 걸음 한 걸음 힘겨운 발걸음을 떼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고용상 차별은 어떨까. 대한민국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의 일할 권리와 의무에 대해 규율하고 있지만, 15세 이상 전체 취업자 비율(60%)에 비하면 장애인은 3명 중 2명이 실업상태(취업률 35%)다. 장애인 의무 고용 사업체의 장애인 고용률은 3%를 넘지 않고 의무 고용 기업의 이행률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46%). 취업한 장애인들은 그마저도 보호 작업장에서 최저임금에 훨씬 미달하는 임금을 받거나 차별을 경험한다. 사회적으로 장애인 노동에 대한 이해 부족과 왜곡된 인식이 방만하니 ‘현대판 노예’로 일컬어지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노동착취 및 학대 사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얼마 전에는 중증 장애인 동료 지원가 시범사업에 참여한 설요한씨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보낸 시설 밖 일상을 그린 영화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이 작사·작곡한 OST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라는 노래다. 장애인은 무사히 노인이 될 수 있을까? 2018년 기준 65세 이상 장애인은 120만 6,482명이다. 전체 등록 장애인 수 대비 2명 중 1명(약 46.7%)이 ‘노인’인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로비에서 진행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명애 대표의 65세 생일잔치 겸 기자회견이 생각났다. 장애인활동법 제5조 제2호에 따르면, 장애인활동지원급여를 받기 위해 65세 이하 즉, 노인이 아니어야 하는데,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의하면, 65세가 된 사람은 장애여부와 상관없이 법적 ‘노인’이 되어 장애인활동지원급여가 아닌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수급대상자가 된다. 문제는, 노인장기요양보험급여는 기존 장애인활동지원급여에 비해 1/3 수준(하루 최대 4시간)이어서 스스로 씻고, 먹고, 몸을 뒤집을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은 65세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생존까지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중증 장애인들은 65세 생일이 반갑지 않다.

 

 “당신은 차별주의자입니까?” 이 질문에 “네. 저는 차별주의자입니다”라고 대답하거나 또는 대답할 용기를 가진 사람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이 질문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불쾌해 하거나 모욕당한 기분을 느낄 듯하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차별’이 나쁘다는 것을 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저

 

  장애아동 보육, 교육의 입법-정책 담당자, 대중교통 사업자, 장애인거주시설 종사자, 탈시설지원법에 무관심한 국회의원, 장애인 의무고용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 중증 장애인 동료 지원가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고용노동부, 현대판 노예사건을 불기소처분 결정한 수사기관, 재정상 65세 이상은 일괄 노인장기요양보험급여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기획재정부 등 그 누구도 “네. 저는 장애인 차별주의자입니다.”라고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도 장애인을 차별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2020년 우리 사회 장애인 차별은 연대기를 작성할 수 있을 만큼 가히 무겁다.

 

  차이를 인정하면서 차별하지 않는 사회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장애인 당사자에게 묻지 않고 불필요한 도움을 주거나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차별일 뿐이다.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장애인과 함께 일하기는 곤란하고 최저임금 보장은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면 차별이 무엇인지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고 하면서 대중교통이 비장애인 중심인 것도 장애인 시설이 멀찍이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평행선은 좁혀질 수 없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하자. 모르면 물어보자. 장애가 아니라, 차별이 문제다. 멀리 떨어져서 형식적인 장애정책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먼저다.”라는 데서 우리 사회 평등선이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글_조미연 변호사

 

 

조미연

# 장애인 인권# 공익법 교육 중개

연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