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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자문위 칼럼] 용산참사사건 항소심 재판부 판사님께




 


드디어 미공개 수사기록 2,000여 쪽이 공개되었군요. 제1심 재판 내내 검찰이 법원의 수사기록 열람등사허용 명령을 어기고 있었던 터라 항소심 재판부가 변호인단에게 미공개 수사기록의 열람등사를 허용해 준 것은 지극히 타당합니다.


 


새로 입수한 수사기록 2,000여 쪽에는 당시 서울경찰청 경비부장, 기동본부장, 정보관리본부장 등 강제진압 당시 경찰 핵심간부들에 대한 조사내용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 기록을 밤새 검토한 변호인단에 의하면, 경찰 지휘부가 2009년 1월 20일의 강제진압이 무리한 진압이었음을 부분적으로 시인하는 내용이 나온다지요. 예를 들어, 검찰조사에서 경비부장은 “현장상황을 잘 전달받았으면 중단도 시켰을 텐데 특공대원들이 어떻게든 작전을 성공시키겠다는 공명심에서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진술하였으며, 기동본부장은 “내가 결정권자였다면, 망루 안에서 시너를 투척하고 화**을 던지는 것을 보고받았으면 (작전을) 중지시켰을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망루농성에 가담했던 철거민 피고인들에게 적용된 죄명 중 가장 무겁고 논란이 되는 혐의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이니까, 당시 경찰의 강제진압이 적법하였는지 여부, 그리고 화재의 발생원인이 철거민들이 망루 안에서 던진 화** 때문인지 여부는 항소심 재판에서도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될 것입니다.


 


제1심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여 경찰특공대를 조기에 투입한 강제진압이 적법하였다고 인정하였으며, 화재의 발생원인에 대해서도 망루 안에서 철거민들이 던진 화** 불똥이 시너 등 다량의 인화물질에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였지요.       


 


외부에서 용산참사사건의 재판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이번에 공개된 2,000여 쪽의 수사기록에 담긴 내용을 검찰의 주장처럼 별 것 아닌 양 치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1심 판결을 보면, 남일당 건물에서 망루 농성을 한 철거민들이 ‘다량의 위험물질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언급됩니다. 이것이 경찰의 조기 강제진압이 적법하다는 제1심 판결의 기초가 되고 있지요. 그런데 2,000여 쪽 수사기록에 담긴 경찰 핵심간부들의 진술은 ‘철거민들이 그렇게 위험한 인화물질 등을 다량으로 소지하고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면 강제진압을 중지시켰을 것’이라는 내용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경찰 간부들이 자신들은 당시 상황을 잘 몰랐다고 발뺌하는 대목은 안쓰럽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들은 당시의 진압작전이 무리한 것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가 봅니다. 상황판단의 잘못이 누구의 책임이건 간에 강제진압이 적법하였다는 제1심의 판단이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려운 것 아닐까요?


 


경찰의 당시 남일당 건물 진압계획을 보면, 망루농성 중인 철거민들이 화**과 다량의 인화물질을 소지하고 있었음은 경찰 간부들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네요. 제1심 법원은 다량의 위험물질로 인하여 조기 진압이 필요하였다고 경찰을 옹호하였던 반면에, 정작 경찰 간부들은 철거민들이 다량의 위험물질을 가지고 강하게 저항하는 상황에서 진압작전을 무리하게 강행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다량의 위험물질로 인하여 철거민들과 진압경찰들에게 생명․신체의 침해의 위험이 크다면 현장봉쇄와 대화 및 설득이 우선되어야 하고 강제진압작전은 신중해야 한다는 점은 경찰비례의 원칙에서 누누이 강조되는 사항이지요. 아마도 진압작전의 경험이 많은 경찰 간부들인지라 그들은 당시의 강제진압작전이 비례성원칙에 위반된다는 점을 직감했나 봅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경찰 간부들의 위와 같은 판단에 대해 항소심 재판에서는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해 보았으면 합니다.


 


경찰은 강제진압작전을 감행할 것인지 여부, 그리고 어떠한 진압방법을 동원할 것인지 여부 등을 결정하는데 많은 재량을 가지고 있지요. 필경 그 재량권 행사의 적법성을 논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비례성원칙을 준수하였는가 여부일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항소심 재판부 판사님들께 무엇보다 아래 두 가지 점을 강조하고 합니다. 제 생각에, 이 두 가지는 강제진압의 적법성을 판단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제이나 제1심 재판에서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첫째, 망루농성과 같은 점거농성의 경우에 경찰은 우선적으로 농성이 행해지는 건물의 주변에 시민의 통행을 제한하는 조치를 통해 인근 시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그러한 가운데 농성자들이 농성을 풀 수 있도록 충분한 대화와 설득을 시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 비소로 강제진압이 시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용역회사 직원들이 농성 철거민들을 자극하도록 방치하였으며, 그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철거민들의 화**이나 벽돌 등의 투척이 있었을 뿐이지요. 이미 재개발 지역 철거민들의 망루농성을 접해 본 경찰로서는 철거민들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가하지 않고 현장을 봉쇄한다면 얼마든지 대화의 여유를 갖고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점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용산 사건에 경찰이 차분한 접근을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좀 더 면밀하게 따져 보았으면 합니다.


 


둘째, 워낙 급박하게 전개된 진압작전이기는 하지만, 경찰특공대원들의 1차 진입과 2차 진입의 과정을 구별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1심 판결에 나타난 사실관계를 보면, 경찰은 남일당 건물 옥상을 장악하고 철거민들이 모두 망루 안으로 피신한 상태에서 경찰특공대원들이 망루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다가(이것이 1차 진입입니다) 일단 건물 옥상으로 철수한 것이 2009. 1. 20. 07:10경이고, 망루 안으로 다시금 본격적으로 진입한 것(이것이 2차 진입입니다)이 1. 20. 07:18경입니다. 2차 진입을 앞두고 경찰컨테이너로 망루를 찍어 누르는 등의 공격도 있었지요. 제가 의문을 갖는 것은 1차 진입시도 때 철거민들이 경찰특공대원들을 향해 화**을 던지고 이로 인해 망루 안팎에서 크고 작은 불길이 일어나기도 하였는데 그렇다면 경찰은 이미 망루 화재의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고 망루를 화염에 휩싸이게 만든 2차 진입은 좀 더 신중했어야 마땅하지 않나 하는 점입니다. 이미 건물 옥상을 경찰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에서 철거민들은 망루 안에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었지요. 극렬한 저항이 예상되고 화재의 위험도 충분히 인지한 마당에 과연 그토록 무자비하고 성급하게 2차 진입작전을 시도할 필요가 있었을까 너무나도 큰 의문이 듭니다. 아마도 저의 짐작이지만, 경찰간부들의 고백은 특히 이 대목의 진압작전이 비례성원칙을 위반한 것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강기갑 의원의 발차기 사건이 세간의 화제네요. 이 사건에서 법원은 공무집행의 적법성을 엄격히 심사하는 태도를 취했고 이는 지극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법원이 공무집행방해죄의 재판에서 공무집행의 적법성에 대해 형식적 요건만 충족하면 공무집행이 적법하다는 식으로 공권력에 대해 너무 관대했던 것은 아닐런지요. 국가공권력 행사의 위법 여부에 대해 엄격한 정당성 기준을 가지고 심사해야 하는 것은 법원의 당연한 책무일 것입니다. 용산 사건처럼 무고한 인명이 희생된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해야겠지요.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의 횡포로부터 시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하여 정립된 원칙입니다. 서민에게는 법치주의의 잣대를 혹독하리만큼 적용하면서 국가공권력의 횡포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판단한다면 진정한 법치주의 국가가 아니겠지요.


 


힘없는 서민에게 국가공권력의 이름으로 테러를 가하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는 심정에서 글을 썼습니다. 인권의 수호자로서 법원의 합리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참, 화재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글_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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