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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종차별

인종차별 철폐운동이 콜럼버스 동상으로 향하는 이유_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

미국 미네아폴리스에서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철폐운동의 한 줄기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 6월 9일,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한 공원에서 1,000여명의 시위대가 모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을 끌어내려 호수에 던졌다. 다음날 아침 보스톤에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이 머리가 사라진 채 발견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미국 미네소타 주청사 앞에서 시위대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을 끌어내렸다. 밧줄에 목이 매여 바닥으로 끌어내려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다. 왜 이들은 콜럼버스 동상을 향하고 있는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흔히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로 불린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한 1492년 10월 12일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기념일로 지정되고 축하되었다. 미국의 경우 1937년 대통령의 선포로 ‘콜럼버스의 날’을 연방공휴일로 지정했다.1) 그의 이름을 딴 도시와 학교가 세워지고, 콜럼버스 동상을 비롯한 기념비가 미국 전역에 세워졌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난 그의 ‘용맹함’은, 미국이라는 ‘신대륙’에서 ‘척박한’ 땅을 일구는 개척정신을 북돋기에 모범적인 사례였을 것이다. 그렇게 미국은 많은 사람에게 ‘기회의 땅’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듯 알았던 콜럼버스에 의한 대륙의 ‘발견’과 ‘정착’에 관한 이 지식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콜럼버스를 추앙하는 역사에 반대하는 운동은, 지식이 객관적인 진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콜럼버스의 ‘발견’은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던 원주민에게 ‘침략’이었으며, 유럽인들의 ‘정착’은 원주민에게 ‘학살’과 ‘추방’이었다. 학살의 역사를 소상히 모르더라도, 미국사회가 그동안 아메리칸 원주민을 고립시키고 배제시켰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상식처럼 알고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부당하다고 여기며 분개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렇게 오랫동안 침묵하고 방관할 수 있었을까?

‘미개한’ 땅을 ‘개척’한 ‘백인’의 ‘진취성’이 미국의 역사를 설명하는 서사라면, 그 자체로 미국 역사는 백인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역사해석에 동의한다면, 우리의 시선 역시 백인 중심의 관점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백인의 시선으로 콜럼버스를 영웅으로 칭송하고 백인이 아닌 이들을 미개하게 바라본다. 원주민에 대한 학살과 고립과 배제의 역사에 침묵하고, 그들은 그런 대접을 받을만하다고 여긴다. ‘노예’로 잡혀오고 팔려온 흑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흑인의 지적능력을 의심하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라며 역시 그들의 ‘미개함’으로 억압적인 지배와 통제를 정당화한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은,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거부당한 이들의 존엄함을 깨달으라고 외친다. 생명이 소중하다니 너무 당연하지 않냐며 흑인의 생명만 소중한 게 아니라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맞받아치는 사람들을 향해, 왜 그 당연함이 흑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는지 질문한다. 그리고 같은 정신으로, 미국 땅에서 역시 오랜 기간 그 당연함이 허락되지 않았던 또 다른 집단인 원주민과 연대한다. 단지 ‘흑인’을 위해서 혹은 ‘원주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등’을 위해 백인우월주의에 맞서 싸운다. 한 영상에 나온 흑인여성의 절규처럼, 이들은 “복수”가 아니라 “평등”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2)

동시대에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운동은 한국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으로 향하는 시위대의 메시지는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향한다. 익숙했던 지식을 의심하라고, 백인의 시선이 아니라 흑인과 원주민을 비롯한 소수자의 시선에서 이 세계의 역사와 현실을 다시 돌아보라고 안내한다. 한국 땅에서 함께 살고 있는 수많은 이주민에게 향하는 차별적 태도 역시 지배와 정복의 세계사를 정당화하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그 지배와 정복의 시선으로 특정 인종·민족이나 출신국가의 사람을 ‘미개하다’고 규정하고, 이들을 함부로 대하면서 무시하고 배제해도 괜찮은 것처럼 여기기도 함을 뼈아프게 돌아보게 한다.

오늘날 미국의 많은 주와 도시들은 ‘콜럼버스의 날’을 대체하여 ‘원주민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최근 오하이오주의 콜럼버스시에서는 도시명을 바꾸자는 청원이 제기되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어떤 인물인가?” 한국에서 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이 질문은 그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삶과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이 질문이, “나는 어떤 시선으로 이 세계를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밝히도록 만든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이 무너지는 지구 반대편의 광경이, 우리의 감추어진 인종주의를 들추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1)  The Editors of Encyclopaedia Britannica, Columbus Day, Encyclopædia Britannica, 2017. 2. 17., https://www.britannica.com/topic/Columbus-Day (2020. 6. 22. 방문).

2) Police: Last Week Tonight with John Oliver (HBO), 2020. 6. 7, https://youtu.be/Wf4cea5oObY (2020. 6. 22.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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