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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같은 것 아닌가- 국회의원 심상정

만나고싶었습니다_국회의원 심상정

 

“인생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같은 것 아닌가.”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어릴적 동요처럼 매스컴에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무관심했다. 혹여라도 신문에 나오는 날이면 언제나 ‘불법’이라는 단어, 그리고 시민들의 찌푸린 얼굴을 담은 사진들이 따라붙었다. 공무원, 국회의원, 기자들 누구와도 제대로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다. 현행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이른바 ‘집시법’에 따라 국회 앞 100m 밖에 마련된 단상에 오르면서 심상정은 생각했다. ‘국회의원이 단 한 명만 있었어도…’ 그리고 돌아온 선거에서 사람들은 그와 그의 동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는 ‘국회의원 심상정’이 되었다. 그로부터 2년이 넘게 흐른 어느 날 의원회관 713호실에서, 분주한 일정 속에서도 여유가 넘치는 표정의 그와 마주앉았다.

 

“국회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퇴행적 존재”

 17대 국회가 개원한지 2년이 지났다. 총 4년의 국회의원 임기 중 절반이 지난 셈이다. 국회가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 절반의 기간 동안 국회의 유명했던 의원전용 엘리베이터는 사라졌다. 의원들의 복장도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정치인 내지는 국회의원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심상정은 그 ‘국회의원’ 중 한 명이 아닌가. 국회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대번에 “국회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퇴행적 존재”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교섭단체 제도가 그러하다. 국고보조금의 배분에 있어 비례가 전혀 맞지 않다. 보조금의 절반을 두 당이 가져가고, 나머지 당들은 그 남은 몫을 나눠가져야 한다. 교섭단체를 가르는 기준은 다분히 자의적이며, 교섭단체들끼리 논의를 하는 모습도 부조리하다. 교섭단체를 꾸리지 못한 정당은 논의에 끼워주지도 않는다. ‘내것, 네것’이 모두 ‘내것’이 되는 것은 곧 조폭 논리이다.” 구성지게 이어지는 비판에 당황할 틈도 없이 그의 말은 계속된다. “그리고 입법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위법행위를 저지르는 모습도 역시 문제다. 관행들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국회의장단 선출 또한 나눠먹기 식이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수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박수대신 ‘잘했어!!’, ‘잘한다’와 같은 추임새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박수가 분위기를 띄워 정쟁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정말 코메디같다.”

 그의 비판은 정책활동에 소홀한 국회의원들을 향해 이어졌다.
“국회의원은 참 바쁘다. 여기저기 오라는 곳도 많고, 인사를 챙겨야 하는 곳도 많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정책활동에 신경을 못 쓰는 의원들도 참 많다. 결국 금권정치만 답습할 뿐, 구체적인 정책으로 판단이 이루어지는 정책정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시간이 없어서, 자기 지역구에 발송될 홍보물에 넣을 정도로만 발언하는 분들도 있다. 또한 법안을 발의할 때 하나의 법안으로 될 걸 쪼개서 하는 경우도 많고, 부칙에 넣어도 될 것을 본문에 삽입하기도 한다. 이름만 빌려주는 경우도 많다. 실제 의원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반영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물론 정책활동에 열심이신 분들도 많다. 국회의원은 선공후사, 공적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국민을 대변해야 한다. 단, 모든 국민이라는 말에는 함정이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모든 국민을 대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밥먹여 준다.”


그가 지적한 부분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젊은 층과 서민들의 정치무관심과도 맞닿아 있다. 심 의원은 시장에서 서민들로부터 “정치가 밥먹여주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정치가 밥을 먹여주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정치가 밥을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면, 왜 기업들이 차떼기를 하겠나. 차떼기, 박스떼기를 하면 나중에 항공모함만큼의 이익이 돌아오니까 하는 것 아닌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기득권세력의 정치를 유지시켰다. 정치란 곧 국민들의 세금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정치를 바꿈으로서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실현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법은 힘의 역학관계의 반영”
“입법권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


심 의원은 국회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법’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왔으며, 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입법자가 된 이후 법에 대한 생각이 혹여 바뀌었는지 여부가 궁금했다.
그는 “법은 절대선이 아니며, 힘의 역학관계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불평등한 사회의 모습은 법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입법, 해석, 집행이 정치의 본연의 역할”이라며 입법과정에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이해당사자가 어떤 법이 입법되는지 다 안다. 반면 우리는 2시간 정도만 공청회를 연다. 사실상 요식행위다. 15일 예고기간도 거의 이행하지 않는다. 양당 간사간 합의만 있으면 통과되는 것이다. 이런데도 ”누구를 위한 입법이다“라는 것은 사실상 국회에 근접한 거리에 있는 이들을 위한 입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은 차라리 친한 의원을 포섭하는 쪽으로 입법을 하려고 한다. 입법권 확립투쟁이 절실하다. 국회의원들을 친밀한 이웃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와의 협의과정도 필요하고, 검증된 법안에 대해 반대편에 있는 이해당사자와 진지한 검토를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조세개혁 관련 법안 등을 입법하려고 하는 이상 이해당사자와 협의를 거칠 수 밖에 없다. 물론 사실상 조용히 폐기된 경우가 많지만 (웃음). 민주노동당의 입법안들은 조용히 통과되지는 않는다.”

 

“경제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중요“
지난 10월 13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회의장, 2006년 국정감사의 첫날에 심상정 의원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신청한 증인들을 모두 철회했다. 심상정이 말한대로 “증인 채택 표결을 해도 부결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심상정 의원실이 수개월에 걸쳐 준비한 자료들은 모두 물거품이 됐고, 이날 많은 언론들은 심상정이 내쉰 한숨에 대해 보도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의 경제권력에 맞서 소수정당 소속의 심상정이 겪어온 난관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비단 입법부에서의 어려움 뿐 아니라, 소위 MOFIA(재무부의 영문약자(MOF)와 마피아를 합성한 단어로, 재정경제부를 마피아에 빗대어 부르는 말)로 불리우는 경제부처관료들과도 끊임없이 긴장관계에 있다. “경제사안과 관련해서 입법부는 ‘통(通)법부’라고 비아냥을 듣기도 하지 않나. 관료들이 만든 법안을 입법부에서 제대로 심사하지 않은 채, 무조건 통과만 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경제정책같은 경우에는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으면 관료들에게 늘 밀린다. 재경부 관료들은 소수기득권세력을 대변하는 게 신념으로 굳어진 것 같다. 또한 국회의원으로서 관료들이 제출하는 예산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진보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확장“
“진보의 개념에 대해 정운영 선생이 이렇게 정의했다. 버려야 될 것을 지키는 것이 ‘수구’이고, 지켜야 될 것을 지키는 것이 ‘보수’이며,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이 ‘진보’라고.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을 과감히 버리고, 비젼을 마련해야 한다. 진보란 백지에 색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두껍게 칠해진 것의 껍질을 벗기고 색을 없애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 진보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확장이다. 역사는 그러한 민주주의 발전과 실현을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

‘진보’라는 이미지가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진보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 해석이 분분하며 다양하다.  쓰이기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심 의원은 진보를 ‘실질적 민주주의의 확장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진보정치를 구현함에 있어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 그리고 350만 자영업자들이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강조하면서 현상을 보다 직접적으로 바라보고 정책을 제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장애인이동권이나 학교급식, 선택진료비, 주민소환제 등과 관련한 법안들을 주도하는 등 분투했고, 특히 올해 8월 통과된 전염병예방법 개정안 (내년 7월부터 만 6세 이하 아동은 보건소뿐 아니라 동네 병·의원에서도 B형 간염 등 필수 예방접종을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지금은 보건소에서만 무료 접종을 해준다.)은 서민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 일구어낸 성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성대중들의 의식화, 조직화가 중요“
한국사회에서 여성문제는 언제나 진보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심 의원은 심지어 “여성과 진보는 동의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여성의 사회진출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호주제 폐지가 확정되었을 때 “여성들이 판치는 시대가 됐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의 고위직 진출도는 미약하다. 실제로 노동부(2004년)가 종업원 1,000명 이상 사업장(354개)을 대상으로 여성 관리자를 조사한 결과 부장 1.4%(477명), 차장 3.6%(1706명), 과장 5.6%(6157명)를 차지했다. 또한 2005년 8월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9급 공무원은 48%가 여성이지만, 고위직 5급 이상은 8%를 넘지 못했다. 18만명의 여성근로자 중 88%가 비정규직인 것으로 드러나. 여성이 차지하는 지위의 양극화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17대 국회에서는 여성의원 비율이 13.1%로 처음으로 두 자리 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들이 양극화의 현실 속에 어려움을 겪는 다수 여성의 권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심 의원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17대 국회의원 중 여성의원의 경력을 살펴보면 교수, 변호사, 의사, 약사 등 소위 상류직업군 출신의 의원들이 많다.”며  “상층여성들이 출세수단의 하나로 국회의원에 출마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하는 다수여성을 대변하는 것이 취약하다.”고 말했다. 또한 “여성주의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기존의 정치문화를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정당이 이미지 정치의 일환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여성의 정치참여는 정치라는 벽을 깨고 진입했다는 것 자체에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17대 여성국회의원들이 일구어낸 성과도 많다.”고 하여 국회에서의 여성의원비율 증가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성소수자, 장애여성, 이주여성과 같은 개별활동에서의 연대를 위해 여성대중들의 의식화, 조직화의 실천을 강조했다.

 

심상정과 그의 동지들
심 의원은 임기 첫 해인 2004년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해 거액의 손실을 입은 사실을 밝혀내 ‘여야가 뽑은 2004 최고 국회의원’ ‘정치부 기자가 뽑은 올해의 정치인’ ‘초선 의원이 뽑은 2004 베스트 의원’ 등에 선정됐다. 이듬해에는 삼성그룹의 2세 편법증여사실을 추궁해 이른바 ‘삼성저격수’로 주목을 받았다. 또한 최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심 의원이 의혹을 제기해온 부분이다. 이처럼 심 의원의 화려한 행보에는 묵묵히 일하는 소수의 보좌진들이 있었다. 진보진영의 부동산전문가로 불리우는 손낙구 보좌관,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이채환, 임수강 보좌관 등을 비롯해 총 8명의 보좌진들이 심상정 의원과 함께 해왔0다. 심 의원은 이들과의 호흡에 대해 “동지적 관계”라는 단 한마디로 표현하며 그들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남은 임기동안 심상정 의원실은 부동산 정책, 한미 FTA 문제 등에 주력해 나갈 계획이다.

 

흔들리며 피는 꽃
심상정은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인터넷 ‘진보누리’ 사이트에 ‘보수정치의 얼음을 깨뜨리는 4만 당원의 못이 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의원 경선에 나서면서 던진 출사표였다. 이 글에서 그는 “퉁겨나가지 않는, 휘어지지도 않는 날카로운 못이 되어 한 치의 흔들림없이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25년의 노동운동 인생동안 그는 3년간의 금속노조 사무처장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실무자로서 현장에 서 있었다. 노동현장에서의 25년, 그 짧지않은 세월동안 그는 거리에서, 책상에서, 때로는 감옥에서 얼굴에 얕고도 깊은 주름을 하나씩 그려나갔다. 사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시민, 민중운동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자기희생을 필요로 한다. 특히 자본권력과 거리감을 두어야 한다는 ‘도덕성’의 관점에서 볼 때, 많은 갈등에 빠질 수도 있다. “활동가 분들은 역사발전의 주체인 민중의 편이며, 도덕적 자부심과 열정을 가지고 어떠한 기회와 혜택도 거부한 채 살아간다는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자기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질적 혜택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있으면 그것을 택하는 것이다.” 도덕교과서에서나 듣던 말이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 하는 순간, 그가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내뱉는다.
“인생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같은 것 아닌가. 누가 더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길에 대한 선택, 스스로 주체적인 삶,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고 결정하는 것은 그 무게에 대한 답이다.“ 시인 도종환이 노래한 것처럼 그는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줄기를 곧게 세워왔다. 그리고 석양이 붉게 물드는 여의도에서, 흔들리면서도 꽃은 조금씩, 그렇게 피어나고 있었다.

 

 

글_ 이상현 인턴

취재_ 이상현, 이영주, 이정선 인턴, 전영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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